2024-07-20

바람둥이의 최후: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감상문

Loading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얼굴 반반하고 인물값하는 처녀 롤라와 그에 걸맞게 핸섬한 투리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투리두가 군대에 간 사이에 롤라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알피노에게 시집을 가고 만다.

군대에서 돌아온 투리두는, 실연의 아픔을 또다른 사랑으로 달래보려고 마을 처녀 산투짜와 약혼을 하지만, 색기가 좔좔 흐르는 롤라는, 못생긴 산투짜에게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했는지, 남편의 출타를 틈타  투리두를 꼬셔낸다. 요약하자면 유부녀가 성실한 남편 몰래 이젠 남의 약혼자가 된 옛사랑과 바람이 난 것이다.(고얀 것 같으니라구!)

잘생기고 과거가 있는 약혼자 때문에 마음 고생 깨나 하던 순진한 처녀 산투짜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마침 집으로 돌아오던 알피노도 이른 새벽에 자기집 근처를 지나던 투리두를 본다. 가증스런 투리두는 주막집을 운영하는 어머니를 위해 와인을 구매하러 출장중인 것으로 알리바이를 꾸몄던 것.

때는 바야흐로 부활절. 성스럽고 흥겨운 동네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괴로운 마음 하나 가득 안고 산투짜가 투리두 엄마네 (마마 루시아) 주막집으로 갔다가, 거기서 알피노와 맞닥뜨리게 된다.

알피노: 아지매, 새로 들인 와인 한 잔 주소!
(여기서 와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상한 술이라기 보다는 동네 아저씨들의 영원한 음료, 막걸리 정도의 분위기로 느껴진다)

마마 루시아: 우리 아들이 아직 안돌아와서 새로 들어온 건 없다안카나

알피노: 머라꼬요? 내가 오늘 새벽답에 우리 집 근처에서 투리두를 밨는데예?

마마 루시아: 야가 지금 무신 소리를 하노?

산투짜: 쉿! 어무이, 고마 아무 말씀 마이소

뭔가 이상하다는 듯 갸우뚱거리며 알피노가 떠나가자 산투짜가 마마 루시아에게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고, 어머니는 성스러운 부활절에 이 무슨 망칙한 일이냐며 놀란다.

나중에도 나오지만, 여기서 마마 루시아는 마음이 괴로운 사람, 절박한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 속내를 고백하고, 위안을 간구하는 대상… 이를테면 성모 마리아 내지는 인고의 어머니 상을 대표한다.

모두가 부활절 미사를 위해 교회로 향하지만 마음이 괴로운 산투짜는 홀로 주막집에 남아 울고, 어머니도 혼란한 심경을 달래려 교회로 간다.

울고있는 산투짜 앞에 나타난 뻔뻔한 투리두는 시치미를 뚝 떼고 출장에서 돌아온 척 하다가, 추궁하는 산투짜에게 짜증을 낸다.
(좌우지간 반반한 것들은 꼭 인물값을 하더라니… 물론 나는 예외! ^__^)

좋게 말하면 착하고, 솔직히 말하면 답답한 산투짜는 그래도 투리두를 원망하기 보다는 괴로운 자기 마음을 달래어 달라고 부탁할 뿐인데, 투리두는 매정하게 뿌리치고 주막을 나서다가, 불여시 같은 롤라와 마주친다.

열받은 산투짜가 롤라에게 어쩌면 임자있는 남자를 꼬셔내느냐고 한 마디 하자, 롤라는 얄미운 비웃음으로 응대하며 또 투리두를 유혹하여 둘이 다정하게 교회로 간다.

억장이 무너지는 산투짜 앞에 알피노가 나타나고, 홧김에 그에게 모든 사실을 꼬질러 바친다.

“엄마야, 내가 우짤라고 그랬을까, 인자 큰일났네!” 하며 산투짜는 미사가 진행되는 교회로 가서 다정한 두 불륜 남녀를 엿보며 괴로워하는 가운데 유명한 곡 <아베마리아>가 인터메조로 연주된다.

–잠시 곁길로 새서—

오늘 이 오페라를 보게 된 이유가, 사실은 저 노래를 듣고 싶어서였다.
피아노로 마스카니의 <아베마리아> 를 연주하다가, 예전에 봤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가 생각이 나서 레이저 디스크를 틀었는데…

내 기억엔 분명히 플라시도 도밍고가 아리아로 불렀던 것 같은데, 아무리 탐색 버튼을 눌러도 도밍고가 나오는 장면에서 그 노래가 없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처음부터 다 듣기로 하고 앉았는데 남편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은 모처럼 격조높게 오페라 감상중이라고 했더니, 예전에 둘이서 함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를 볼 때 내가 졸았다며 놀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가 음악감상 하다가 졸기나 하는 사람으로 보이나? 아니라고 박박 우기며 전화를 끊었는데… 그 때 졸긴 졸았었나보다…

<아베마리아> 는 투리두도, 산투짜도, 마마 루시아도, 그 누구도 부르지 않았던 거다. 그냥 <인터메조 신포니코> 라는 곡으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했을 뿐…

내 악보에는 떡하니 제목도 있고, 가사까지 우리말과 이태리어로 나와 있어서, 아리아일 것이라고 단정했었나보다.

아베마리아 은혜로우신 성모시여
어둠속에 방황하는 이 몸을 인도하여 주소서
크신 자비를 베푸사 성모시여
이 세상 근심으로, 눈물로써 지내는
부질없는 이 몸을 돌아보소서
아베마리아
아, 내 마음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이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주옵소서

바람둥이 투리두가 회개하며 부르기에 딱 좋은 노랫말 아닌가…
아니면 배신의 괴로움을 담아서 산투짜가 부르던가…

–좌우당간에 다시 원래 길로 돌아가서—

미사가 끝나고 마을 사람들이 동네 광장에 모여 와인을 마시며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 투리두와 롤라는 또 서로 은밀한 수작을 걸며 먹고 마시고… 난리가 났다. 뭐? 와인의 톡 쏘는 거품이 사랑의 즐거움과 같다고? 놀고 있네 놀고 있어.

그러다가 열받은 알피노가 나타나서 투리두와 결투를 하기로 한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투리두는 마마 루시아에게 가서 자기가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면 산투짜는 곁에 아무도 없는 외토리가 되니, 부디 산투짜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며 결투 장소로 떠난다.
(짜슥… 진작에 정신 차릴 것이지… 죽으러 가는 마당에 약혼녀랍시고 챙기기는…)

마마 루시아는 바람둥이 아들 때문에 며느리감한테 면목없는 입장이 된 것에 이어, 이번에는 죽으러 가는 아들과 눈물바람으로 작별을 한다. 두 사람 모두 마마 루시아에게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투리두는 결국 알피노의 칼에 죽음을 맞이한다.

오페라 작품으로서 <카발레리라 루스티카나> 는 귀족적이고 신화적인 인물 중심을 탈피해서 서민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내가 보고 들었던 음반은 1982년에 Philips 에서 제작된 것으로, 플라시도 도밍고가 출연하고, 오페라 무대가 아닌, 이탤리 시골 마을에서 영화 형식으로 촬영된 것인데, 배역은 좀 마음에 안들어도, 역시나 도밍고의 미모(!)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