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1

파파게노와 타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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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의 남자 주인공은 타미노와 파미나 두 사람이다. 타미노가 파미나를 구출하기 위한 시련의 과정에서 파파게노는 양념역할을 하는 유쾌하고 단순한 새 사냥꾼이다. 파파게나는 파파게노가 늘 꿈꾸는 그에게 걸맞는 완벽한 아내감이고.

잘 생기고, 용감하며, 사랑을 위해 어떠한 시련도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남자, 타미노가 남편의 별명으로 더 어울릴 듯 하다.
내 남편 김양수는, 눈이 크고 얼굴이 자그만하면서, 하여간 잘 생겼다.
그의 인생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닥쳐도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고, 늘 쉬지 않고 노력하며,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간다.
그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좀 더 잘 듣기 위해서, 얼마 안되는 월급을 아껴 육 백여 장이 넘는CD 콜렉션을 소장하는가 하면, 좋은 오디오 기기와 스피커를 갖기 위해 중고물품 판매 리스트를 탐색한다.
테니스는 또 어떤가.
조금이라도 더 잘 치기 위해서, 책도 읽고, 유명한 선수들의 플레이를 열심히 보고, 심지어 자신의 스트로크 자세를 비디오로 촬영해서 분석하기까지 한다. 실력 좋은 파트너와 경기하면서 그로부터 한 마디의 조언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일을 함에 있어서 그는, 누가 보거나 알아주는 것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가장 좋은 결과를 얻으려 한다. 실험 물리를 하는 그에게 좁은 실험실에서 만 보를 걸어다니며 새벽 두 세시까지 레이져 기계를 다루는 것은 전혀 고역이 아니며, 보다 나은 실험을 위해 스스로 장비를 고치거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것도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의 사랑?
그건 굳이 여기서 말로 다 표현하기 벅차므로 생략…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파파게노는 나라는 인간과 많이 닮아있다.
언제나 유쾌하며,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싫어하며, 고난이나 시련 앞에선 마음껏 괴로워하고, 두려움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도 많아서, 새처럼 가볍게 날아서 이 산 저 산을 종횡무진하는가 하면, 마술피리와 한 셋트인 마술 벨을 연주하며, 청아한 테너 톤으로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
나역시, 심각하고 진지하게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고민거리가 있어도 잠시 후엔 그 고민을 울랄라 버전으로 바꿔서 금새 유쾌 모드로 돌아간다. 이런 성격은 내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라, 어떻게 좀 바꿔 보려해도 어쩔 수가 없다.
유년 시절, 또래 여자아이들이 <들장미 소녀 캔디> 에 열광하고, <엄마찾아 삼만리> 를 보며 눈물 흘릴 때, 나는 맨날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일라이자에게 골탕먹는 캔디가 답답했고, 찾아가는 곳마다 엄마의 소식을 모르거나 먼 곳으로 떠나갔다는 이야기를 삼만 리 여행 동안 들어야 하는 마르코의 이야기에 억장이 무너졌다. 나는 우헤헤에~헤 하는 딱따구리 만화나 비뚤빼뚤 아기공룡 둘리 만화가 늘 좋았다.
그림, 피아노, 노래, 글쓰기, 학교 공부, 뜨개질, 요리… 남들 하는 것은 다 조금씩 할 줄 알고, 때로는 칭찬까지 받지만, 그렇다고 내세울 만큼 열정적으로 잘 하는 것은 없다. 그냥 이것저것 그때그때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해볼 뿐이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재주는 많은데 노력을 안해서 그 재주를 ㅆㅓㄲ히고 있다’며 아쉬워 하시기도 했었다.
그래도 마침내 천생연분을 만나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단다…던 파파게노처럼, 나역시 얕은 재주 몇 가지를 스스로 즐길 줄 알고, 이런 나에게 걸맞는 인연을 만나서, 재미난 일을 밥벌이로 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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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두 분한테 정말 따악~맞는 아이디를 고르셨어요. 환상의 커플에 걸맞는 멋진 아이디예요. 아이디보다 더 멋진 두 분의 삶에 저희 가족도 함께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된 인연에 감사하며~~*^^*

파파게나

어머나, 글 올린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새 읽으셨군요.

요즘 방학이라고 일을 하는지 노는지 분간이 안되게 널럴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글도 자주 올리고 있어요.

이러다 개강하면 발등에 불이 떨어지겠죠? 소화기 하나 미리 마련해 두고, 놀 수 있을 때 소중한 인연 관리 잘 하면서 즐겁게 지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