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1

산후조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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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처음 3주 동안은 아기도 산모도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바깥 외출은 물론이거니와, 외부인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하고, 산모들은 무시무시한 산후풍을 막기 위해 찬물에 손도 담그지 말지어다… (산후조리복음 1장 1절 말씀)

아무리 건강하고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출산 직후에는 몸을 사리고 충분히 쉬어야 한다… (우리 엄마, 내 친구들, 그 외의 수많은 사람들 말씀)

위의 말씀들을 가슴에 새기며 나름대로 충분한 휴식을 하느라고 했지만, 지난 4주 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남들이 보기에 뜨아~ 하고 경악을 금치못할 일들을 많이 한 것 같다. 하지만 내 수준에서는 할 수 있는 만큼의 조리를 했다고 생각하므로, 그 경과를 기록해보려 한다.

처음 일주일:

출산이 싱거울 정도로 수월하게 진행되는 바람에 2박 3일 동안의 입원 기간이 지루할 정도였다. 아기를 낳은 날 오후에 홈페이지에 출산기를 올려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많은 산모들이 꺼려한다는 샤워와 머리감기, 얼음물 마시기 등의 활동을 출산 직후부터 했으며, 친절한 이웃들이 끓여다준 미역국 보다도 병원에서 주는 햄버거와 미국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도 했다.

영민이가 황달로 입원했을 때는 병간호를 하느라 몸이 고되긴 했었다. 게다가 영민이도 나도 모유수유가 익숙지 않아서 허리가 새우등이 되도록 꾸부리고 젖을 먹이느라 고생을 했지만, 그건 남편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한국에서 친정 엄마가 오셨다한들 내 대신 해주실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그 다음 일주일:

대체로 모유수유 때문에 나는 영민이와 따뜻한 아기방에서 24시간 지냈으나, 간간히 아랫층에 내려가 커피를 내려 마시기도 하고, 남편이 강의가 하루종일 있는 날은 내가 식사를 챙겨먹고 설겆이도 했다.

이 때도 고마운 분들이 미역국과 반찬을 해다주셨는데, 감사히 잘 먹긴 했으나, 남편이 끓인 미역국이 사실은 가장 내 입맛에 잘 맞았다. 마산 시댁에서 보내주신 산모용 미역이 부드럽지만 흐물흐물하지 않고 국물이 제대로 우러나는 상품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빨래와 부엌일을 하면서 지하실 사우나 공사 마무리를 하느라 분주했고, 또 틈틈히 아기 목욕이며 기저귀 갈기, 트림 시키기, 안아서 재우기 등의 육아를 도왔다.

이 기간 동안 학교 일은 바바라 선생님과 대학원생 조교가 대신 처리해주고 있었는데, 전화나 이메일로 강의가 잘 되었는지, 기말 시험과 숙제 진행에 차질은 없었는지 매일 확인을 했다. 모유수유만 아니면 학교에 달려가서 내 손으로 학기말을 마무리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출산 후 세번 째 주:

이때부터 나는 하루종일 집안에 머무는 것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불고기와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그러다 어질러진 부엌을 청소하기도 했다.

하루는 남편과 영민이를 대동하고 학교에 나가서 성적처리며 밀려있던 일을 하기도 했다. 학술지에 제출했던 논문 하나가 수정하라고 돌아와서 공동저자인 버지니아텍 교수님과 함께 논문 수정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거 잘 되서 꼭 게재되어야 하는데…)

순한 영민이 덕분에 남편과 함께 사우나도 즐기고, 영화도 보고 그랬다. 요즘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선 왜그리 짜장면 먹는 장면이 많은지… 이 버지니아 산골에서 짜장면은 엄두도 못내지만, 지난 번에 사다놓은 짜짜로니를 자주 끓여 먹었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콜라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매운 제육볶음이며 김치도 가리지 않고 먹었다.

내가 이렇게 먹은 음식을 시시콜콜 나열하는 이유는, 산모가 저런 음식을 먹고 모유를 먹이면 아기에게 엄청나게 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산모의 인체구조는 아마도…

   산모의 입 –> 산모의 식도 –> 산모의 유두 –> 아기의 입

이런 것인가보다.

나는 생물 과목을 좋아하고 열심히 배웠으므로, 인간의 소화와 대사작용의 원리를 제대로 알고 있고, 또 인체의 무한한 잠재력와 자연치유력을 믿기에, 음식을 따로 가려 먹지 않았다.

그리고 네번 째인 지난 주:

나보다 더 세심하게 영민이를 보살피는 남편과, 아빠에게 안겨있기를 더 좋아하는 영민이 덕분에, 혼자 학교에 나가서 하루종일 일을 하고 오기도 했다.

영민이 방의 서쪽으로 난 창에 햇살이 너무 밝아서 재봉틀질로 이중 커텐을 만들어 달기도 하고, 홈페이지에 영민이 사진을 올리기도 하면서, 이제는 산후조리가 아니라 겨울방학을 제대로 즐기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만하면 내 기준으로 충분히 쉬고 놀았지 않은가…

아직 남은 3주 간의 방학 기간을 더욱 알차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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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와우~~ 역쉬 보영이 답습니다!!
맞아,,산모가 된다고 확신하면 아이에게도 절대 해 될게 없다는데 나도 동의!!
잘하고 있습니다.. 계속,,즐기면서 건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