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부터 박사과정 대학원까지 기나긴 학생 시절을 보내고 이젠 교수가 되어서 더이상 시험과 성적표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을 줄 알았지만… 교수가 되고서도 해마다 학과장으로부터 받는 평가가 은근히 사람 긴장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매 해 새 학년이 시작하기 직전에 Faculty Annual Report (줄여서 FAR 라고 부르는 교수연간보고서) 를 학과장에게 제출하면 학과장은 그걸 점수로 환산해서 평가기록을 남기는데, 이게 꼭 성적표 같은 형식이다.
A, B, C 대신에 Outstanding, Above Expectation, Meet Expectation, Below Average 로 나뉘는데, 강의, 연구, 봉사 분야별로 5점 만점에 얼마, 그래서 총점 얼마 이렇게 최종 성적이 나온다.
그 성적을 바탕으로 테뉴어도 받고 조교수에서 부교수, 정교수로 승진도 하게 된다. 경제사정이 좋았던 시절에는 연봉도 그 점수에 비례해서 올려 받기도 했다.
올해 보고서는 지지난 주가 제출마감일이었고, 오늘이 바로 학과장 평가 초안이 나오는 날이다.
무려 40 여 명에 가까운 교수들의 성적을 단 일주일 동안에 매기느라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을 불쌍한 우리 학과장 샌디 선생님.
그래도 그건 남의 사정이고 나는 내 사정이 더 급하고 초조하다.
조금 전에 내 보고서에 빠진 서류가 있는 것 같다며 샌디 선생님이 이메일을 보내셨다. 이차저차 해서 어디어디 페이지에 그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답장을 보내놓고 나니,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내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잘 잡히질 않는다.
지난 얼마간 샌디 선생님이 내게 보여준 다정함과, 학교 안팎의 여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열심히 일했다는 떳떳함을 고려해보면 내 점수가 나쁘지 않을거라 짐작하지만, 그래도 니 점수는 몇 점! 하고 숫자가 쾅 박혀서 나오는 성적표라는 것은 사람을 아주 긴장하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가 있다.
테뉴어를 받고나면 이 긴장감이 조금은 덜해지려나…?
9월 25일 현재
강의, 연구, 봉사 모든 부문에서 outstanding 점수를 받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도 공연히 며칠간 마음 졸였던 것이 어리석은 짓이었을까?
암튼 작년보다도 더 높은 점수를 받았고, 학과장으로부터 테뉴어 심사 후보 중에서 아주 훌륭한 성적을 받아온 편에 속한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올 해에는 쓸데없는 조바심이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뭔가 진취적으로 새로운 업적에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