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1

금 밟기 – 선생님의 영역, 부모님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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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민이네 유치원에서는 각 반마다 부모모임 (PARENTS SOCIAL) 을 하느라 분주하다.

영민이가 있는 블루룸은 지난 수요일에 부모 모임을 했다.

모임이라봐야, 각자 집에서 한 가지씩 가지고온 음식을 나눠먹고, 다른 가족들과 인사하고, 선생님들의 안내말씀 듣기 등이 전부이다. 미국 사람들 모임이 늘 그렇듯, 못오는 사람은 못오고, 온 사람들도 그저 편하고 자유롭게 웃고 이야기하고, 궁금한 건 물어보고, 아는 건 대답해주고, 뭐 그런 식이었다.


주요 안건이라면, 블루룸에 미디어 테이블이 낡아서 새 것으로 사야하는데, 원장이 책정한 금액으로는 지금 있는 것과 꼭 같은 모델을 살 수밖에 없는데, 부모들이 160불만 더 보태주면 배수구가 달려서 물을 이용한 놀이까지 가능한 좋은 것으로 구입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교실 한 켠에 둔 그릇에 5-10 달러씩 기부해 주시면 고맙겠단다.


media table.jpg

여러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디어 테이블 사진 첨부 ^__^


그 밖에는, 업데이트된 가족사진을 교실에 붙여두게 보내달라, 이제 날씨가 더워지고 있으니, 여벌 옷을 짧은 소매로 바꿔서 비치해두라, 등등, 선생님들의 안내가 있었다.


학부모 측에서는 한 엄마가 묻기를, 요즘들어 아이가 “셧업” 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타일러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참고로, 미국에서 셧업 이란 말은 “아가리 닥쳐” 정도의 아주 무례한 말로 쓰이고 있다.

선생님이 대답하기를, 최근에 블루룸 교실에서 아이들이 유행어처럼 그 말을 자주 하는데, 언어 습득과정의 한 단계 – 남의 말을 따라하기 – 이므로, 너무 과잉반응을 보이지말고,  짧게 “그건 나쁜 말이야” 하고 충고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부모모임 끝!


한국적인 시각으로 보면, 너무도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 모임이다.

꾀죄죄한 청바지 차림의 부모나,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학부모를 대하는 선생이나, “학부모회” 같은 이름과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모임 이후로 학부모들은 유치원 복도에서 마주치면, “하이~ 아무개 엄마” 하고 알아보고 인사할 수 있고, 호주머니에 잔돈푼이 있으면 교실 선반에 놓인 그릇에 기부할 것이다. 선생님을 만나면, 내가 만들어온 샐러드를 맛있게 먹어주던 모습이 기억나서 친근감이 들 것이고, 내 차림새가 초라한 날에도 스스럼없이 다른 학부모나 선생님에게 먼저 인사를 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제는 바이올렛룸의 부모모임이 있었다. 바이올렛룸은 월수금 혹은 화목요일에만 하는 반일제 프로그램인데, 두 그룹 통털어 스무명 정도의 어린이가 등록되어 있고, 올해에는 한국인이 다섯, 인도인이 서넛, 중국인이 둘, 기타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또 서너 명되는, 아주 다국적 반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과 부모들 대부분이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되어서,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물론 인도 아이들과 부모들은 예외겠지만서도.


그래서 바이올렛룸 교사들이 궁리를 하다가, 부모모임에 나를 초대했다. 한국어 통역도 해주고, 한국인 부모들의 미국 유치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와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영민이가 유치원을 마칠 시간에 시작하는 모임이라, 영민이를 데리러가서 영민이와 함께 한 시간 정도 더 머물면 되는 것이라,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스무명 조금 안되는 전체 인원 중에 부모 모임에 참석한 집은 미국인 두 가족밖에 없었다.

요즘 대유행하고 있는 STOMACH FLU (감기로 인한 장염) 때문에 모임에 오지 못했을 수도 있고, 다른 볼 일이 있어서 빠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여태껏 만나본 한국인 학부모들의 성향을 고려해보면, 아마도 – 최소한,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었다는 한국인 학부모들은 – 언어 장벽에 대한 두려움과 “학교”나 “선생님”에 대한 조심스럽고 어려운 태도 때문에 일부러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을거라고 짐작한다.


체벌하는 교사를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하고, 학부모가 교사의 멱살을 잡는 일이 벌어지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생각이 어딘가에 남아서, 학부모들이 교사를 만나는 것에 대해 주눅이 들어있는 것 같다. 

게다가, “선생이 알아서 할 일”, 또는 “교권”, 이런 생각이 학부모가 편하고 자유롭게 학교에 드나들고, 교사와 의사소통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 같다.


어쩌면, 많은 학부모들이 스승의 그림자를 밟는 것과, 사방치기 놀이에서 금을 밟은 것을 한 맥락으로 이해하는지도 모르겠다. 혹여 실수로라도 선생님의 영역을 밟아서 죽는 것에 준하는 (금 밟으면 죽는다 ^_^) 무례를 범하지나 않을까 조심하다보니, 수평적인 인간관계 형성이 어렵게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어제 모임에 불참한 다섯 아이들의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를 예쁘게 봐달라고 부탁하고 싶으세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선생님에게 근사한 선물을 하려고 하세요?

아니면 유치원에 갈 때, 내 자신이나 아이를 비싸고 좋은 옷으로 포장하세요?


영어가 어려워서, 유치원 교실에 써붙혀둔 메모를 안읽으세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도 선생님에게 물어보지 않으세요?

영어가 어려워서, 선생님에게 오늘 하루 우리 아이 어떻게 지냈는지 안물어보세요?


실수할까봐 조심하는 마음을 던져버리고, 편안하게 선생님을 대하세요.


내 생각과 계획대로 선생님에게 잘보이려고 하지말고, 선생님의 계획은 무엇인지 물어보세요. 비싸고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보다도, 교실에 필요한 자료 협찬 – 휴지말이 속심 모은 것, 헌 테니스 공, – 이 더 필요하고 고맙다고 얘기하실 겁니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어려우면 미리 집에서 사전을 찾아서 글로 쓰세요.

  ‘오늘 하루 우리 아이가 잘 놀았나요?’

  ‘어제 늦게 잠이 들어서 아침밥도 못먹고 유치원에 갔답니다. 간식을 충분히 먹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제 말씀하신 부모모임 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무얼 준비해야 하나요? 통역을 해 줄 제 친구를 데려와도 되나요?’


선생님이 못알아 들으시면 글로 쓴 것을 보여주세요.

당신의 후진 영어 발음을 비웃기보다는, 당신의 아이 교육에 대한 관심과 노력에 찬사를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그 엄마들을 만나게 되면, 솔직히 말해서 위에 쓴 것처럼 조언해 줄 자신이 없다.

그래서 여기에 글로 쓰는 것이다… 나도 참 소심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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