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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타군은 코난군과 동갑내기이고 위로는 열 살 많은 누나가 있는 씩씩하고 마음씨 고운 소년이다.

코난 아범과 겐타군의 아빠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는데, 어쩌다보니 둘 다 미국에 정착해서 살게 되었고, 그 집은 늦둥이를, 우리집은 늦은 결혼과 더 늦은 출산으로 아이들 끼리도 친구가 된 것이다.

이제 만 세 살인 두 소년은 여러모로 비슷하기도 하고 많이 다르기도 하다.

아빠의 남성스러움을 많이 닮은 겐타군은 아기였을 때부터 덩치가 크고, 먹성도 좋으며, 웬만한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대범한 성격이었다.

반면에 코난군은 여자아이로 오해받을 정도로 곱상한 외모에다, 입이 짧아서 엄마를 고민하게 하고,  겐타군에 비하면 조심성이 많고 얌전한 편이다.

두 아이의 공통점은, 누가 뭐래도 세 살 먹은 남자아이의 표준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휘력이나 기저귀 떼기, 수면습관 등등의 개인차는 있지만, 두 아이 모두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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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군과 겐타군 두 돌이 되어갈 무렵에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 뜻밖으로 겐타군의 부모로부터 양육의 어려움을 전해듣게 되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사소한 것으로 짜증을 내는 일이 자주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떡볶이 떡이 너무 커서 잘라달라는 부탁에 엄마가 세 조각으로 잘라주었더니 “왜 세 조각으로 잘랐느냐”며 화를 내고 울었다든지 하는 것이다.

겐타군 부모님의 밝고 온화한 성품을 잘 아는데다, 누구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가 짜증을 낼 만한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심히 궁금했다. 보통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아이가 욕구불만의 표출로 떼를 부리고 심술을 내는 것이 흔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답이 나왔다.

겐타군은 에릭슨의 발달단계 중 자율성 대 수치감 (autonomy vs. shame and doubt), 그리고 주도성 대 죄책감 (initiative vs. guilt) 단계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미운 네 살> 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끔찍한 두 살, Terrible Two> 이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보통 자율성을 쟁취하고자 노력한다. “내가 내가”, “내 꺼”, “아니야”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이유도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스스로 이룬 성취감을 만끽하기 위한 것이다.

에릭슨의 이론에 의하면 그 자율성이 처음에는 수치감을 동반하다가 만 세 살이 지나면서 수치감은 죄책감으로까지 발달한다. 즉, 내가 음식을 혼자 떠먹고 싶은데, 아직 어설픈 손놀림 때문에 음식을 흘리면 처음엔 챙피하지만, 나중엔 흘린 음식을 치우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과 함께 자신에 대한 자책까지 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아이의 생각하는 능력이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겐타군의 경우에는 열 살 많은 누나 덕분에, 성취욕구가 남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생각된다. 엄마 아빠는 어른이니까 그렇다치고, 누나는 자기랑 같은 급의 인간인데, 누나는 두 발 자전거도 안넘어지고 잘 타고, 달리기도 엄청 잘 하고, 힘도 훨씬 세다. 거기다가 생각하는 능력이 많이 자란 겐타군의 머리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은데, 도무지 아빠 엄마가 그걸 허락하질 않는다.

예를 들자면, 장난감 자동차 (이지만, 실제로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아서 운전하는 것) 를 많이 몰아봤기에 엄마의 미니밴도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안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질 않는 것이다.

이렇듯 삶의 순간순간마다 맞닥뜨리는 좌절감 때문에 겐타군은 짜증을 부리는 것이다.

이런 아이를 돕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이의 좌절감을 이해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니가 부모가 없어? 좋은 장난감이 없어?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하고 맞짜증을 내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아이가 경험하는 도전과 좌절을 기억해야 한다.

“왜 아이스크림을 열 개 먹으면 안되지? 난 다 먹을 수 있는데?”

“부러진 장난감 로봇 다리를 왜 아빠가 끼우면 들어가는데, 내가 하면 안되지? 분명히 아빠가 하는 그대로 했는데?”

“왜 내가 그린 엘모는 눈알 한 개만 그리면 나머지 눈알을 그릴 자리가 없어지지? 엄마는 안그런데?”

어른이 무심히 보기엔 말도 안되는 요구, 혹은 기껏해야 어린아이다운 발상이다 싶지만, 그것이 이 나이 또래 아이에게는 크나큰 좌절인 것이다. 마치, 우리 어른에게 있어서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못지 않게 큰 어려움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아이의 좌절감을 충분히 실감했다면 이젠 그것을 만회할 기회를 줄 차례이다.

아이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어주고,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을 주면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 아이가 더욱더 자라기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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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 두 소년

나는 어른이 되고난 이후 힘든 일이 생기면 어렸을 때를 회상하곤 한다.

만약 지금 돈이 없어서 힘들다면, 지갑속에 500원짜리 동전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 돈이면 그 때 군침흘리며 쳐다만 보던 핫도그를 열 개 사먹을 수 있는 돈이야.’ 동네 분식점 진열장 앞을 군침을 삼키며 지나치던 열 살 먹은 아이에게 핫도그 열 개를 사먹을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얼마나 부자인가!

직장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라면, 학생시절 단체기합 받던 일을 떠올린다.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혹은 그렇게 큰 잘 못도 아닌데… 걸핏하면 손바닥을 맞고 무릎을 꿇고 벌청소를 했던 일에 비하면… 오늘 일이 힘들긴 했어도 벌청소는 안해도 되잖아?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흔히 거꾸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아이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참 고달픈 일이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어른이 되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요즘 애들은 좋은 세상에 태어나 버르장머리가 너무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어쨌든 어리다는 것 그 하나 만으로도 그들의 십자가는 충분히 무겁다.

2011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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