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4

미국대학원 박사과정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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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더러 부지런한 성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나는 참 게으른 사람이다. 하늘이 도왔는지, 게으르긴 하지만 심하게 낙천적이기도 하다. 내가 낯선 나라에 와서 무사히 공부도 마치고 직장을 잡고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게 된 데에는 게으르면서 낙천적인 내 기질이 큰 몫을 했던 것 같다.

부지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게으른 이중성… 예를 들면 이렇다.

다음 수업내용 예습을 하기위해 백 페이지씩 영어로 된 책과 논문을 읽느라 고생했단 이야기를 저번에 썼었다. 그러나 남보다 월등한 성실성으로 몇 년 간, 단 한 페이지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고는 쓰지 않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꾸 읽다보니 꽤가 나서 어떡하면 짧은 시간 안에 보다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는지를 궁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학술논문을 읽다보니 어느정도 그 얼개 (아웃라인)가 보였다. 맨 첫머리엔 연구를 시작한 배경과 당위성, 그 다음엔 비슷한 주제로 선행된 연구물들의 요약, 연구를 진행한 방법과 연구 대상에 대한 설명, 연구 결과, 그 결과를 분석 정리한 내용, 그래서 결론. 대부분의 학술 논문이 이런 형식으로 씌여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다음 주 수업 내용이 유아기 언어발달에 관한 것이고, 그 주제와 관련된 학술논문 다섯 편이 수업전까지 읽어가야 할 과제라면, 다섯 편을 모두 꼼꼼히 읽는 것은 정말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학생의 방법일 것이다. 게으르고 날라리 기질이 농후한 나는, 그 중에 한 두 편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머지 논문은 머리와 꼬리만 읽거나, 시간이 나면 선행연구요약 (영어로는 Literature Review라고 한다) 부분을 더 읽었다. 그러면 대략 다음 수업 시간에 토론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짐작이 되고, 또 그 주제에 관해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전반적인 동향도 파악이 되었다. 토론 수업 중에 내가 꼼꼼히 읽은 논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열심히 토론에 참여하고 (내 생각을 이야기함), 대충 읽은 논문을 토론할 때에는 마치 나도 다 읽고 아는 양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면, 누가 봐도 나는 그 수업의 예습을 잘 한 학생으로 보였던 것이다.

집안 살림을 할 때도 이런 잔머리를 굴리곤 하는데, 청소를 하기 싫으니 평소에 집을 어지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과자 봉지를 식탁위에 두지 않고 바로 쓰레기통에 넣는다든지), 온 집안을 매번 청소하기가 힘드니까 눈에 잘 띄는 곳 -카펫 보다는 마루바닥-을 우선적으로 치우고, 대신에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것을 각잡아서 차곡차곡 놓아두는 것으로 청소를 마치곤 한다. 그러면 가까이서 들여다보지 않고 전체적으로 휙 돌아보면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 나기 때문에, 우리집은 언제 봐도 깨끗하다며 불시에 방문한 사람들이 나를 부지런한 사람이라 칭찬해주는 것이다.

낙천적인 성격…

다시 말하자면, 죽이되든 밥이되든 누룽지가 되든 상관없이 그냥 해보는 거다. 잘 되면 죽이나 밥이나 누룽지를 먹을 수 있고, 안되면 말고.

내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은 나보다 겨우 세 살이 많은 젊은 여교수님이셨다. 하지만 일에 대한 욕심도 많고 명석한 두뇌와 대단한 추진력으로 많은 연구기금을 끌어오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동시에 여러 개 운영하시면서 학생지도 역시 명쾌하게 잘 하시는 분이었다. 

게으른 성격의 내가 그런 교수님을 다른 분들과 비교분석해보고 내 지도교수로 삼았을 리는 당연히 없다. 박사과정 입학한 첫 학기에 임시로 지정된 지도교수님이 공교롭게도 그 분, 프릿쳇 선생님 이셨는데, 내가 마침 그 분에게 첫 번째 지도학생이라서 한 번 잘 지도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으셨던 것 같다. 걸핏하면 나를 불러서 이 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해보게 다음주까지 문헌연구를 해오라고 하시거나, 저 학회에 가서 발표를 할 수 있도록 이 프로젝트를 맡아보라고 하시곤 했다. 

내가 찾아다니며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해본다는 것은 게으른 내 성격과도 맞지 않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무언가를 나혼자 시도한다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지도교수님께서 하라고 시키신 일은 학생으로서 또 월급을 받는 조교로서 꼭 해야했기에 따박따박 일을 해서 데드라인에 늦지 않도록 해다바쳤다. 

그러니까 내가 한 것이라고는 주어진 꼭 해야만 하는 일을 기한에 맞추어 마친 것밖에 없다. 논문을 쓰라면 논문을 쓰고, 발표를 하라면 발표를 하고, 무슨 상인지 장학금인지를 신청하라면 신청서를 쓰고 그렇게 했을 뿐이지, 이 논문이 게재가 안되면 어쩌나, 발표를 하다가 영어가 꼬여서 망신을 당하면 어쩌나, 내 주제에 우수조교상이 무슨 말이며 장학금은 언감생심…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죽이되든 밥이되든 아무것도 안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수가 좋아서 되면 장땡이 아닌가. 

지도하는대로 잘 따라오는 내가 기특했던지, 선생님은 자꾸만 자꾸만 더 많은 일을 시키셨고, 또 나는 그걸 꾸역꾸역 해냈다. 그 때 다른 과, 혹은 다른 지도교수님 밑에서 나보다 편하게 지내는 -일은 훨씬 적게 하면서 같은 액수의 월급을 받는- 대학원생 조교들이 솔직히 부러울 때도 있었다. 내 수업 따라가랴, 학부생 강의하랴, 논문 연구 진행하랴 바빠죽겠는데 지도교수님이 시키신 일도 기한에 맞추려니 힘들기는 했지만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어린이집 교사할 때 뼈빠지게 일하고 겨우 백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았는데, 그에 비하면 편하게 일하면서 등록금은 한 푼도 내지 않고, 다달이 천 오백 달러 (그 때 환율로 계산하면 거의 백 팔십만 원이 넘었다) 나 되는 월급을 받고 있으니 오히려 괜찮은 직장생활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프릿쳇 선생님과 4년의 시간을 보내고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졸업하기도 전에 학술지에 논문 몇 편을 개제하고 수많은 학회발표를 한 업적이 쌓여있었고, 무슨무슨 상과 장학금 수혜자라며 동네 신문에 기사가 나고, 학교 건물 벽에 금박으로 이름도 새겨넣는 영광이 내 것이 되어있었다.

게으르고 낙천적인 나는 지금도 고백한다…

나는 그냥 시킨대로 했을 뿐이라고…

내가 이렇게 되도록 사주(?)한 프릿쳇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그냥 운명이었다고…

2011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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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진

안녕하세요. 유아교육으로 미국 대학원에 진학을 하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우연하게 소년공원님의 블로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많고 여쭈고 보고 싶은게 있어요. 실례가 안된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가능하시다면 메일 부탁드립니다. jjjjjinah@gmail.com

소년공원

마방진 님, 찾기 어려운 이 곳까지 와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아교육과 미국 대학원 유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니 더욱 반갑구요.

여기에 댓글로 구체적인 질문이나 궁금한 점을 올려주시면 제가 이메일로 답장 보내드릴께요.

그럼 다음 댓글 기다릴께요.

소년공원 올림

마방진

소년공원님, 설레이는 연말과 새해를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셨는지요? 

사실 저는 블로그에 답글을 남긴 후 메일이 없으시길래 너무 바쁘셔서 제 답글을 못보신 줄 알고 바보같이 메일만 기다렸었네요. 댓글로 남기셨을 줄 알았다면 한번 쯤 블로그에 다시 방문 해 볼 껄 그랬습니다. 한 학생의 사소한 댓글에도 이렇게 친절히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마지막학기를 남겨둔 유아교육과 학생입니다.졸업을 하면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두가지 인데요. 

첫 번째는, 서점가서 대학원 진학에 대한 책을 찾아보고, 학교홈페이지도 들어가면 유아교육과라고 명칭이 적혀져있지 않고 보통 교육학과라고 되어있던데 미국은 유아교육과가 교육학과속에서 세분화되어 연구되어지는지 궁금합니다. 

두번째는, 어느 대학원을 갈 지 고민할 때..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이(저는 학비입니다..) 다를텐데요.  소년공원님께서는 예전에 대학원을 진학준비를 하시던 때에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서 대학원을 결정하셨었는지 궁금합니다. 소년공원님의 경험을 듣게되면 제가 앞으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 지 큰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아서 실례될 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질문을 남깁니다. 

그럼 이메일 기다릴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소년공원

마방진 님, 지난 주에 이메일 보내드렸는데 받으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