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가지 행복한 생각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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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군은 잠들기 전에 만화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보통의 하루 일과 마무리 행사이다. 그래서 코난 아범은 디즈니에서 나온 애니메이션을 다운로드 받아서 코난군 전용 넷북 컴퓨터에 다수 저장해두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1953년작, <피터 팬> 을 보여주었는데, 주인공이 고만고만한 어린이들이라 그랬는지, 코난군이 무척 재미있어하면서 감상했다. 한 며칠 내내 저녁마다 <피터 팬> 을 반복해서 보고, 그 다음에는 2002년에 속편 격으로 제작된 <리턴 투 네버랜드> 도 보여주고, 그 이후에는 2008년작, <팅커벨> 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리턴 투 네버랜드> 는 왠지 모르게 우울한 분위기가 영화 내내 흐르고 있어서 어른인 내가 보아도 오리지날 피터 팬 보다 흥미가 떨어졌고, <팅커벨> 은 바비 인형 냄새가 나는, 너무나 여자아이 취향을 따르는 분위기인지라 빅보이 코난군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오늘 저녁에는 코난 아범이 새로이 다운받은 1991년 스필버그 제작 실사 영화 <후크> 를 보여주었는데, 코난군은 극장식 소파에 앉아서 팝콘을 먹으며 시작부터 끝까지 제대로 감상을 했다. 

저녁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한숨돌리며 코난군 옆에 앉아 나도 함께 영화를 보았다. 예전에 한국에서 비디오 테잎을 빌려다가 보았던 기억이 아련히 되살아나면서 로빈 윌리엄스의 감동적이고 인간적인 연기가 새삼 반가웠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나 <아담스 패치> 같은 인간적이고 따스한 영화의 단골 주인공인 로빈 윌리엄스는 잘 생기지도 않았고 우락부락한 남성미가 있지도 않지만 참으로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그래서 좋은 배우이다.

<후크> 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자신이 피터 팬 이었음을 잊고 살던 아빠 역할을 연기했는데, 네버랜드에서 꼬맹이 아이들을 거느리고 두목노릇을 하며 온갖 개구쟁이 짓을 하는 모습이 코난군에게 강력히 어필했나보다. 나중에 로빈 윌리엄스가 “단 하나의 행복한 생각 (one happy thought)”을 떠올리고 날 수 있게 되었을 때 의상이 피터 팬 옷으로 바뀌자, 코난군은 그제서야 이 영화가 며칠 간 즐겨보던 만화 영화 <피터 팬> 과 관계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더욱 집중해서 영화를 즐겼다.

“엄마, 왜 이제 아빠가 피터 팬이 되었어? 왜 이제 플라이 해?”

하고 묻길래, “응, 기분좋은 생각을 하면 날 수 있게 된대” 하고 대답했더니, 다시 코난군 묻기를,

“코난군 지금 ‘히히'(기분이 좋다는 그 만의 표현이다) 하는데 왜 안날아?” 한다. ㅋㅋㅋ

단 하나의 행복한 기억만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행복한 기억만으로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40 여 년 살면서 날듯이 기뻤던 때가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면 그럭저럭 남들과 다름없는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도 몇 번의 happy thoughts 이 있다.

재수끝에 가고싶던 대학에 합격했던 날…

몇 년간 주경야독하며 지원했던 미국 대학원에서 어드미션을 받던 날…

유학와서 첫 기말시험에 100점 만점에 101점을 받던 날…

나혼자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남자친구가 알고보니 그도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된 날…

그리고 그 남정네가 코난 아범이 된 것…

취직이 되었을 때와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코난군이 걸음마를 하고, 이유식을 먹고, 말을 하고, 기저귀를 떼고…

이 모든 것들이 하늘을 나는 듯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다.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코난군을 보며, 언제 이렇게 컸나, 이제 제법 말도 잘 하고 엄마랑 영화를 같이 보면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그러고보니 이전보다 지금이 항상 더 대견하고 행복한데…

그런데 왜 이런 행복한 생각은 일단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만 머릿속에 떠오르는걸까?

바로 어제만 해도 새삼스레 다시 하는 입덧때문에 괴로워서 놀아달라 조르는 코난군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오늘 아침만 해도 몸이 천근만근이라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는데…

오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내일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강의준비만 하면 되는 스케줄이 잡히고보니, 입덧도 가라앉는 듯 하고, 어제부터 오늘 내내 소홀했던 코난군에게 미안한 마음과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넘쳐난다. 

이렇게 늦은 밤에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남길 여력도 다 생긴다.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원효대사와 영화 <후크> 의 로빈 윌리엄스가 내 생각 속에서 어우려져 짬뽕 한 그릇이 된다…

(아직도 짜장면과 짬뽕이 먹고싶은 나의 입덧은 지속중이다.)

2011년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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