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사범대 학장님이 주시는 연구기금을 동료교수 캐티, 섀런과 함께 신청해서 받았는데, 그 돈으로 유치원 어린이들의 아이패드 놀이와 학교 성적 향상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지난 1월에 전미유아교육연합회 학회에 발표를 하겠다고 신청서를 낸 것이 통과되어 디즈니월드로 유명한 올랜도 플로리다에 지금 와있다.
학회발표 신청을 할 때만 해도 둘째 아이는 상상밖의 일이었기 때문에, 남편과 내 스케쥴을 봐가면서 코난군과 다함께 가족여행을 즐길 수도 있겠다 하고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임신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왔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조금 아쉽다.
미국에서는 임신 초기, 중기, 후기 (first, second, last trimester) 의 세 단계로 구분하는데, 정상적인 임신이 대략 40주 이므로 각각의 단계는 13주 정도가 되겠다.
첫번째 트리메스터는 입덧을 비롯한 임신 초기 증상으로 임산부의 몸과 정신이 힘든 경향이 있고, 유산의 위험성도 높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단계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마지막 트리메스터는 몸이 많이 무거워지고 조산의 가능성 때문에 역시나 조심해야 하고, 견디기 만만찮은 단계라고 한다.
이에 반해 두 번째 트리메스터는 아직 몸이 많이 무거워지지도 않았고 입덧은 끝난 시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매우 건강하고 편안하다 하겠다. 심지어 내 주치의는 “임신의 신혼기” (honeymoon of pregnancy) 라고 이름짓기까지 했다. “그 때가 한창 좋~~을 때다!” 하는 말이다.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돌보며 바쁘게 살다보니, 그리고 두 번째 임신이라 조금 무심해진 탓에, 지금 내가 정확하게 임신 몇 주 차인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음 주에 정기검진을 가면 의사가 어련히 상기시켜주지 않겠나 싶어서 굳이 달력을 들춰가며 세어볼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마도 대략 두 번째 트리메스터의 막바지에 도달했지 짐작한다.
지난 번 임신일기 에서 유난히 호들갑을 떨며 과도하게 몸조심을 하는 임산부의 태도와 그것을 부추기는 장삿꾼들의 상술을 비판한 바 있다. 또 한 편으로 생각하면, 시간이 많고 마음에 여유가 많아서 쓸데없는 걱정과 조심을 하는 것도 주요한 원인이지 싶다.
요 얼마간 임산부로서 나의 생활을 보면 그닥 모범적이지 못했다. 왜냐? 먹고 살기가 바쁘니까!
요즘 우리 학교 사범대 전체가 곧 있을 재인증평가심사 준비 때문에 무척 분주하다. 그리고 다음 학기 등록을 위한 학생 상담이 줄줄이 있었고, 중간고사 성적처리를 해야 했고, 내일 있을 학회 발표준비도 해야 했고, 코난군이 열나고 아파서 며칠간 어린이집을 결석했고, 학회 참석차 며칠간 학교와 집을 비우게 되니 그에 대한 준비 (사실상 밑반찬 한 가지 못해놓고 왔지만서도 마음의 준비라는 것도 은근히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 등으로 참 많이 바빴다.
그 와중에, 이 음료가 카페인이 들었나 안들었나 확인한다든지, 공항검색대의 엑스레이 조사량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행가방을 들고 내리고 하면서 태아에게 무리가 가지나 않을지 걱정한다든지, 노트북 컴퓨터를 무릎에 올려놓고 작업을 하다가 전자파에 노출될까 염려한다든지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자면 살 수가 없다. 아니, 신경쓰고 걱정해봤자 안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자연의 섭리가 훌륭한 것이 바로 이렇다.
입덧이 심할 때는 커피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려서 마실 수 없었고, 어지러워서 컴퓨터 화면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기가 힘들었다. 그 때 정황으로는 플로리다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학회 발표를 한다는 것이 까마득하게 힘든 일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그 시기에는 그러한 일을 하려해도 할 수 없는 몸상태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태아와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몇 주가 더 지나고 몸이 지금보다 더 무거워지면 무거운 짐을 들고싶어도 들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므로 그 때에 가서 조심하면 될 것이다.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리해서 거스르지않고 자연을 따르는 것, 그것이 가장 훌륭한 태교이자 임신유지 자세라고 믿는다.
2011년 1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