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5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시루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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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갑자기 뜨끈뜨끈한 시루떡이 먹고싶어졌다. 아마도 임신 때문에 먹고싶은 음식 리스트에 변화가 왔나보다 생각하고, 조리법을 검색해보았다. 우리 동네에서 떡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손으로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초반 재료 준비부터 난항이었다. 떡 만드는 법을 올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쌀가루를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라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 방앗간이 있다면 거기서 직접 떡을 사먹으면 되지, 일하는 임산부가 조상님 제삿상이나 개업식 고삿상 차릴 것도 아닌데 뭐하러 방앗간에 가서 쌀가루를 빻아오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푸드 프로세서가 있었다. 찹쌀을 하루종일 불렸다가 건져서 갈아보니 방앗간에서 간 것만은 못해도 그런대로 쌀가루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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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프로세서로 갈아 만든 쌀가루

팥고물 보다는 노랗고 고소한 콩고물이 맛있을 것 같아서 코난아범이 두유 만들어 먹으려고 사둔 대두 (메주콩) 를 훔쳐 썼다 ㅎㅎㅎ

그런데 콩을 삶아서 푸드 프로세서로 갈았더니 물기가 많아서 고물이 축축한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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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물의 나쁜 예

그래서 두 번째 다시 만들 때는 찜솥에 콩을 찌고, 또 한나절을 물기가 마르도록 소쿠리에 널어 말리기까지 했더니, 첫번 것 보다는 물기가 줄었지만, 설탕을 넣고 버무리니 금새 다시 질척해졌다. 아마도 고물에 설탕을 섞지 않거나, 시루에 앉히기 직전에 설탕을 넣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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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물의 아주 좋은 예는 아니지만 먼젓번 보다는 나은 모습

사기충천해서 만든 첫번째 시루떡은 사실상 완전 실패작이 되어버렸다. 집에 고운 체도 없거니와 귀찮기도 해서 쌀가루를 체에 내려쓰지 않았고, 콩고물이 너무 질척해서, 결과적으로 찜솥의 뜨거운 증기가 떡을 골고루 익히지 못했고, 그래서 솥이 탈 때까지 쪄도 떡이 제대로 익질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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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떡의 나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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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세미 두 개를 말아먹고도 시커멓게 남은 탄 자국. 식초를 넣고 잠시 끓이면 아주 쉽게 벗겨지는 것을 진작에 알았어야 하는데…

82쿡 게시판에 실패작 시루떡을 올렸더니 음식솜씨 좋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쌀가루를 체로 두 번 내리고, 솥에 앉힐때도 체로 한 번 더 쳐주고, 어떡하든 쌀가루가 뭉치지 않도록 세심하고 섬세하게 떡을 앉혔다.

“떡” 하면 어쩐지 대충 막 만들어도 되는 음식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상 떡이라는 음식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세심한 손길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일줄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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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로 친 쌀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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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실리콘으로 된 시루덮개 라는 것을 쓰거나, 날 콩을 깔아서 수증기의 수분이 직접 떡에 닿는 것을 최소화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중 찜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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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고 섬세하게 켜켜이 앉혀놓은 떡

또한, 가마솥으로 쪄내는 정도의 강한 화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종일관 가장 센 불로 찜솥을 가열했고, 밀가루 반죽으로 솥뚜껑을 밀폐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그러나 뚜껑 안쪽에 맺힌 수증기가 떡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천이 뚜껑 밖으로 나와있는데다, 이중찜솥의 구조상 밀폐를 하는 것이 여의치가 않아서 그냥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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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뚜껑을 감싸듯이 보자기를 씌우면 뚜껑에 맺힌 물방울이 떡에 직접 떨어지지 않아서 더욱 맛있는 떡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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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없어진 밀가루 반죽. 냉장고에 두었다가 수제비나 칼국수를 끓여먹어야겠다.

처음 만든 떡은 찌는 과정도 실패를 했지만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단맛이 지나치게 강했더랬다. 그래서 이번에는 설탕의 양을 줄이고, 25분간 강한 불로 찐 다음 15분간 아주 약한 불에 뜸을 더 들였다. 그리고 조심조심 설레이는 마음으로 떡보자기를 펼치니…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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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떡의 좋은 예

속을 갈라보니 골고루 잘 익었다.

단 한 가지 흠이라면, 푸드 프로세서로 간 쌀가루의 입자가 방앗간 가루만큼 곱지못해서 약간은 거친 느낌이 들었는데, 이건 내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코난아범은 제분기를 하나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지만, 일 년에 몇 번이나 떡을 해먹는다고 굳이 그렇게까지 하랴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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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까지 잘 익은 시루떡

접시에 담아서 시식을 해보니 바야흐로 내가 먹고싶었던 바로 그 맛의 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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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이틀에 걸친 시루떡 만들기 대장정을 마치고 부엌 설겆이를 하고나니, 또한번 인간승리의 쾌감을 느낀다.

소쿠리며 양푼이며 온갖 살림살이가 다 동원되었는데…

늬들도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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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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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공원

아참, 그리고 재료의 양과 조리시간을 적어두어야지.

찹쌀 6컵 + 설탕 6큰술 + 소금 아주 소량

대두 3컵 + 설탕 1컵 (내가 참조한 원래의 레서피는 1.5컵을 넣으라고 되어있는데, 1컵만 넣어도 달았다. 다음에는 설탕의 양을 더욱 줄이거나 아예 넣지 않고 만들어볼 요량이다.)

꼭 기억해야 할 점:

쌀과 콩을 한나절 이상 불려야 함

푸드 프로세서로 쌀을 갈 때는 반으로 나누어서 갈아야 함

(그렇지 않으면 기계에 과부하가 걸리기도 하고 가루가 곱게 갈아지기도 어려움)

불린 쌀은 다시 한나절 이상 건져서 물기를 많이 빼야 함

콩고물을 위한 콩은 절대 삶지 말고 찔 것

반드시 쌀가루를 체로 쳐서 덩어리가 지지 않도록 조심

강한 불에 25분 찌고, 아주 약한 불로 15분간 뜸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