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학기에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대학원생을 위한 야간 강의가 있고 매일 낮 시간에는 학부생 강의가 있다. 코난 아범은 월화수요일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의를 하게 되었다.
원래 여름학기 강의는 원하지 않으면 안해도 되지만, 연봉과 별도로 추가 벌이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어차피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으니, ‘집에서 놀면 뭐하나’ 하는 생각으로 여름 학기 강의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화요일과 목요일은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아홉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라서, 오후 다섯 시 무렵에 아이들을 픽업하고, 집에 데려와서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하는 일을 코난 아범이 혼자 다 해야 한다. 요즘 한창 뺀질거리며 말을 안듣는 개구쟁이 코난군과,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우렁차게 울어대는 둘리양을 동시에 씻기고 먹이고 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코난 아범도 하루종일 강의를 하고 퇴근한 터라 많이 피곤한 상태이다.
그래서 월요일 저녁에는 다음날 코난 아범이 혼자 서바이벌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도록 정신없는 상황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김밥이 제격이다.
코난군도 김밥을 잘 먹는 편이고, 또 우리 부부의 도시락을 싸기에도 편리한 음식이다.
그래서 김밥을 여덟 줄 말았다.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로만 준비하다보니 내용이 조금 부실하지만, 그래도 영양을 고려해서 현미를 섞어 밥을 짓고, 집에서 만든 단무지를 사용했다.
살림경력 10년이 넘어가니, 이젠 재료의 양을 가늠하는 것이 능숙해서 이렇게 여덟 줄을 말고 나니 남거나 모자람없이 재료가 딱 맞아 떨어진다. 개수대에 얌전히 들어앉은 빈 그릇은 밥과 재료를 담았던 것이다.
어른이 먹을 것과 아이가 먹을 것을 구분해서 썰고…
내일 점심에 먹을 것은 도시락통에, 저녁에 먹을 것은 접시에 담았다.
가운데 경계선을 기준으로 뒷쪽은 코난아범의 저녁밥, 앞쪽은 코난군의 저녁밥이 될 예정이다.
밥을 하고난 솥에는 누룽지가 노릇노릇하게 생겼는데, “누룽지 있음. 물부어 끓여드세요.” 하고 메모를 붙여두었다. 부엌 살림에 서투른 코난아범이 언제고 구수한 숭늉이 먹고싶을 때 직접 끓여먹으라는 의도이다. 뒤에 보이는 시계가 월요일 밤의 도시락 준비 시각을 알려준다.
싱크대 위에 줄을 선 도시락 가방
코난 아범의 내일 도시락은 김밥과 양배추 샐러드, 그리고 콜라를 넣었다. 함께 넣은 초코 우유는 코난군을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서 집으로 오는 동안에 코난군에게 먹이기 위한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출출함을 달래기도 하고, 제법 더운 날씨에 바깥놀이를 하느라 땀을 흘린 아이의 갈증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사진만 찍고 양배추 샐러드는 다시 냉장고 안으로 돌아갔다. 내일 아침에 잊어버리지 말고 다시 도시락 가방으로 옮겨 넣어야 한다.
이것은 둘리양의 도시락이다. 모유를 짜서 젖병에 담아서 냉장보관했다가 보냉가방에 담아 어린이집에 가지고 가는 것이다. 보통 180 밀리리터 (6온스) 짜리로 두 병씩 보내는데, 아직 두번째 병이 덜 찼다.
마지막으로 내 가방. 점심으로 먹을 김밥과, 모유를 펌핑하고 보관하기 위한 도구들, 그리고 물병이다. 모유를 먹여서 그런지 갈증을 자주 느끼는데다, 세 시간씩 강의를 하다보면 목이 아파서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모유를 한 번 더 짜서 젖병에 옮겨 담고, 펌프와 부품은 설거지를 해서 잊지 말고 내 도시락 가방에 넣어 가야 한다. 코난 아범의 샐러드도 잊지 말고.
자, 그럼 내일을 위해 이제 그만 굿 나잇!
2012년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