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이라는 배우는 여자인 줄 알았고, 김윤석이 구린내 물씬 풍기는 꼰대 선생님으로 출연한다길래, 지레 짐작으로 흙빛 우울한 영화일 줄 알았다.
문제 청소년으로 자랄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불우한 환경에 처한 “얌마 도완득” 이의 생활을 밝게, 그러나 깊이있게 보여주었다.
영화가 하도 재미있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원작은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소설이라고 한다. 그 책을 읽어볼 기회가 올지 안올지 모르지만, 짐작컨대 얄개전 21세기 버전 같은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완득이가 킥복싱을 열심히 연습하고 시합에도 나가지만, 너무나 뻔하게도 주린 배를 안고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다거나, 매니저를 자청한 여자친구와의 사랑이나, 무능력한 장애인 아버지와의 화해를 이루기 위한 비장한 각오로 시합에 임한다거나, 그래서 시합 초반엔 심하게 얻어맞다가 막판에 결정타 펀치 한 방을 제대로 날려 챔피언이 된다거나, 하는 진부한 클리셰가 없었던 점이다.
그냥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시합에서 신나게 두드려맞고 지는 모습을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그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한 수단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보다는, 그냥 그 운동 자체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다.
시합에서 지고 링 위에 뻗어누운 완득이에게 킥복싱 싸부님은, 그래도 이 시합에서 버텨내었으니 동네 랭킹 3위라며 어깨를 툭툭 쳐준다. 상대편 선수도 유쾌하게 웃어준다.
아마도 판에 박힌 클리셰 메이커 강제규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상대방 선수는 틀림없이 비열한 반칙을 써서 시합의 전반부를 이겨가고 있었을 것이고, 시합 막판 즈음에 장애인 아버지나 필리핀 출신 엄마가 달려와서 링 위에 쓰러진 완득이를 눈물겹게 응원했을 것 같다. 그리고 완득이의 의식 속에는 똥주 선생님의 주옥같은 격려말씀과, 일등만 하는 공부 잘하는 여자친구가 예쁘게 웃으며 속삭였던 손발 오그라드는 대사와, 그동안 필리핀 혼혈아로서 받아온 숱한 서러움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장면을 연출했을 것이고, 이야아~~~압! 하고 혼연히 떨치고 일어나 최후의 일격을 가해 마침내 위풍당당하게 챔피언이 되고, 그 이후로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 해피엔딩, 이런 식이 되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진부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아서 참 좋았다.
단 한 가지 비현실적인 요소, 그러나 재미있었던 설정은, 넙대대하고 꼬질꼬질한 똥주 선생님이 알고보니 부잣집 외아들의 신분을 숨기고,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사회사업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쩐지… 경찰에 구속되고, 학생들 가르치는 실력도 별로 없고, 자습시켜놓고 졸기나 하는 선생이 용케 해고당하지도 않고 잘 버틴다 했더니, 아마도 아버지 빽 덕분이었나보다.
화려한 장미가 그려진 깔깔이를 입고 말끝마다 “씨**놈” 이라는 욕을 입에 달고 살던 주인집 아저씨가 화가라는 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고, 영화의 마지막을 재미나게 장식해주었다.
2012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