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은 욕쟁이 천재

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은 욕쟁이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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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대통령 선거 결과로 인한 멘탈붕괴를 셀프 치유 하기 위해서 동서양의 고전을 읽겠노라 다짐했었다. 고전을 독서의
주제로 삼은 이유는, 수 백년, 혹은 심지어 수 천년 동안 살아남은 사상/철학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옳은 것이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서의 시작과 동시에 인터넷 포탈 싸이트, 특히 한국의 정치 사회면 기사를 읽는 것을 끊었다.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서
즐겨가는 요리싸이트는 완전히 끊을 수가 없었지만, (82쿡 건강 게시판에서 내 생애 마지막 다이어트 라는 프로젝트를 몇 달째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모처럼 짬이 나는 주말 오전에 아이들은 소파에서 놀고, 나는 식탁앞에 앉아서 컴퓨터가 아닌 책을
펼쳐놓고 아이들 놀이를 감독하고 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

참 이상한 것이, 컴퓨터로 인터넷을 보고
있을 때는 아이가 불쑥불쑥 다가와서 말을 거는 것이 귀찮게 여겨졌는데,  책을 – 그것도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는 중용을 – 읽고 있을 때는 누가 말을 거는 것이 귀찮게 여겨지기 보다는 오히려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고, 옆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 남편에게 방금 읽은 귀절을 이야기해주고 나누는 것이 참 좋았다. 이번 독서를 기회로 해서, 보다 많은 고전을
읽고, 아이들에게도 독서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남편과 독서토론도 더 많이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은 욕쟁이 천재

암튼, 공자의 말씀을 그 손주인 자사가 적었다고 전해지는 중용 을 도올 김용옥이 해설한 책이 중용, 인간의 맛 이다.


소 공부가 몸에 밴 우리 엄마는 사서삼경과 성경등 동서양의 최고 인문철학서적을 그냥 읽는 것으로는 모자라서, 원어로 필사하기를 수
십 번을 하셨고, 지금도 이른 새벽이면 기상해서 몸을 단정히 한 후에 쓰시고 계신다. 내가 한국에서 엄마와 함께 살 적에는 가끔
엄마가 사서삼경의 좋은 글귀를 직접 읽고 해석해주시기도 했지만, 온통 한문으로 가득한 그 책을 내가 직접 읽을 엄두는 감히 내지
못했다.

그런데 도올 김용옥 선생님 덕분에 그 어려운 책을 이리도 쉽게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게 되고, 또
마음깊이 새기며 실천하겠노라 다짐하게 되었으니, 그를 그저 욕쟁이 괴짜 천재 라고 치부해버려서는 안되겠다. 그는 진정 겸손한
천재이며, 세상 모든 현상과 철학을 통찰하고 소화하여 나같은 보통사람들에게 사람으로서 어찌 살아야 하는지 바른 길을 알려주는,
인류의 지도자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아무래도 이 글을 마친 후에 그에게 팬레터 한 통을 손으로 정성껏 써서 보내야 할 것
같다 🙂

방대하고 위대한 중용의 내용을 열악한 나의 지성으로 간단히 몇줄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저 새로이 배운 것이나 내 마음 깊이 깨달음을 주었던 것 중에 몇 가지만 기록해두려 한다.


용, 그 어감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중용의 자세를 지켜라, 중용의 도를 깨달아라” 하는 말을 오용하고 있는 것을 도올은 개탄했다.
중용은 중간이 아니다. 흰색과 검정색이 다 옳으므로 회색을 유지하겠다 하는 것은 중용과는 전혀 다른, 회색분자 혹은 기회주의자의
변명일 뿐이다.

중용이란, 내 일생 동안 한 시도 한 순간도 끊임없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내 스스로 을 이루는 것이다. 남더러 뭐라뭐라 할 필요없이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중용을 실천하면 이 세상은 요순임금 시절보다 더 살기좋은 세상이 될 것이며, 기독교 불교 같은 믿음 없이도 탐욕과 전쟁, 부정과 불의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중용을 부단하게 실천하는 (=능구,
久)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식과 색의 중용을 단 삼개월이라도 지속해보라고 공자가 권했다고 한다. 내 생애 마지막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나는, 삼개월 동안의 오후불식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한다. 하지만 어려우니 노력해야 하는 법. 이 책을 다 읽은
기념으로 오늘부터 공자님 다이어트, 오후불식 을 시작하려 한다. 문자 그대로 오후 내내 불식하는 것은 내 일과 생활에 지장이
있으므로, 내 형편에 맞게 조정하여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다음날 아침까지 간식이나 야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오후불식을 실천하려
한다.

“중용은 적당한 가운데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나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데 있다 (p. 124)” 하고 설명하면서 변 과 화 의 차이점을 설명한 대목도 참 좋았다. 다이어트를 예로 들면서,
80 킬로그램의 뚱뚱한 사람이 식사량을 줄여서 한 달만에 10 킬로그램을 뺐다면 그것은 변 의 단계이다. 그것은 누구나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 즉 패러다임의 근원적 변화를 이루려면, 근원적으로 생활습관과 성격, 인격구조를 바꾸어 1년이나
2년 정도의 시간 동안에 50 킬로그램으로 체중을 낮추는 것이어야 한다.

이 얼마나 흘륭한, 21세기를 살아가는, 비만이 되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귀에 쏙쏙 들어오는 비유와 설명인가!


요현상이 금방 찾아오는 단편적인 다이어트를 해서 일시적으로 체중을 줄이려고 하지말고, 평소의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바꾸어 일생토록
보기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신체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도올은 또 말하기를 “입으로만 느끼는 맛이 아니라
똥구멍(원문에 정말로 똥구멍이라고 썼다 ㅋㅋ) 으로도 느끼는 좋은 맛을 추구하라”고 했다 (p.118). 이는 식생활 개선에 큰
조언이다. 당과 지방이 많아서 달고 고소한 입에 느끼는 좋은 맛의 음식만이 아니라, 뱃속에서 소화되고 배설하기까지 내내 편안하고
좋은 느낌을 주는 음식, 즉 식이섬유가 많고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는 뜻 아닐까 짐작한다.


렇게 쓰고보니 제목에 인간의 “맛” 이라는 말도 들어가고 해서 마치 도올이 다이어트나 식생활 개선을 위한 건강서적을 쓴 것
같아보이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아니하다. 도올은 많이 알려진 대로,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했을 뿐 아니라, 한의사
면허도 있고 한의원을 직접 운영한 적도 있다. 그의 필체는 어지간한 서예가보다 훌륭하고, 중국어와 영어를 한국어만큼 사용할 수
있으며, 그의 독서량은 내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할 것이다.

그런 훌륭한 도올이 젊은 날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고 깨달아 지금의 도올이 되게 만든 구절이 바로 중용 제 26장 지성무식 장 이라고 한다. 지성무식, 지성은 쉼이 없다, 지극한 성-중용의 실현-에는 쉼이 없다, 라는 뜻이다.

이 말은 나에게도 큰 지침이 되었는데, 어찌보면 이것이 바로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인 듯하다. 또한 현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 사는가? 불교철학, 기독교 신념, 실존주의 철학, 등등 모두가 조금씩은 다른 이유를 대면서 왜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했지만, 지성무식 이 말이 나에게 가장 명쾌한 답을 준다.

내가 사는 이유는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죽어서 천당이나 극락에 가려고 사는 것도 아니다.  내 삶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 쉬지 않고 노력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끔은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기가 막히는 꼴을 보면서도, 정말 착한 사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일을 보면서도, 정말 더럽고
치사한 일을 당하면서도, 그래도 죽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타락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성 을 이루기 위함이다.


지막으로 내 마음에 남았던 구절은 “은오이양선, 인간의 추한 면은 덮어주고 좋은 면은 잘 드러내어 격려해준다 (p. 137)”
였다. 순임금이 몇 천년이 흐른 지금에도 추앙받는 흘륭한 임금인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추한 면 (악 이 아니라 오 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도올이 설명했다. 사람의 악을 덮어주는 것은 범죄은닉이기 때문이다) 은 굳이 들춰내지 않고 오히려 덮어주고 눈감아주었고,
모든 이에게 잠재된 좋은 면을 잘 발현하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에게 참으로 좋은 조언이었다. 한 학기에 20-30명 되는 학생들을 한 강의실에서 가르치다보면, 무심코 저
학생은 똘똘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 저 학생은 게으르고 잔꾀만 부리는 못된 학생, 이렇게 분류하기 쉬운데, 중용의 도를
이루려면 그 못되고 게으르고 머리 나쁜 학생조차도 자신에게 숨겨진 좋은 면을 발현하도록 내가 도와주고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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