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큰 유아교육 관련 협회가 있다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Education of Young Children). 그리고 그 협회는 각 주마다 산하 협회를 두고 있으며, 각 주 협회 아래에는 또 지역별 하위 협회가 여러 개 있다. 미국 땅이 워낙 넓고, 각 주정부마다 다른 세부 교육 지침이라든지 교육기관을 관할하는 법규가 다 다르기 때문에 유아교육 협회도 이렇게나 많고 위계적인 체제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미국 전체 협회에서 매 년 미국내 대도시를 번갈아가며 연례 학술회를 개최하는 것처럼, 버지니아주 협회에서도 해마다 2-3월 중에 적합한 날을 정해서 버지니아주 안에 있는 도시를 돌아가며 학회를 연다. 이번에는 로아녹에서 그 학회가 열리는데, 그 학회를 개최하는 모든 일을 내가 살고 있는 뉴리버벨리 지역의 협회가 맡아서 하는 차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우리 학교 봄방학 기간과 학회 기간이 맞물려서, 내가 참여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다. 그렇지만, 두 아이를 돌보며, 남편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일은 봄방학이라고 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남편의 봄방학은 지난 주였다), 아침에 바쁘게 등교/출근을 시켜놓고 로아녹으로 운전해서 왔다갔다 하자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바쁜 듯 하다. 게다가 학회를 개최하는 일만 돕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내 연구 발표도 해야 하고, 또 우리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집 설립위원회를 대표해서 홍보하는 부스를 마련해서 돕는 일도 해야 하다보니, 저녁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먹이고 씻기고 하는 일을 남편이 해야하게 생겼다. 지난 주 봄방학 기간 동안에도 바쁜 나를 대신해서 애들 보느라 방학같지도 않은 방학을 보냈는데, 이번 주에는 출퇴근을 하면서 또 애들 당번이 되었으니…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학회의 시작은 오늘 목요일이지만, 어제 수요일 낮부터 학회장으로 선정된 호텔측 담당자들과 회의를 해서 세부사항을 점검하고, 저녁 늦게까지 천 이백 개의 가방을 싸는 일을 했다. 학회 참석자가 천 백명 정도 되고, 또 뒤늦게 등록하는 사람들 숫자까지 대략 천 이백 명이 참석하는 큰 모임인데, 등록자들에게 나눠줄 프로그램 안내 책자며, 후원받은 물품과 개인 소지품을 소지하는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학회 로고가 찍힌 가방을 주문해서 맞추었는데, 그 가방 하나하나 마다 일일이 책자와 물품과 안내팜플렛 같은 것을 넣는 일을 한 것이다. 넓다란 호텔 회의장 안에 커다란 테이블을 한가운데 길게 배열해놓고 사람들이 둘러서서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처럼 한 가지 물품을 넣고 옆으로 보내면 다음 사람이 또다른 물품을 넣어서 옆으로 보내고 이런 식으로 일을 했는데, 어쩌다보니 나는 가방 귀퉁이에 달린 작은 주머니에 크로거에서 협찬받은 생수병을 끼워넣는 일을 하게 되었다. 서너시간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보니 손이 아프기는 하지만 요령이 생겨서 마치 생활의 달인에 출연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
학회가 진행되는 나흘동안 내가 맡은 일은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하고, 등록업무를 돕는 것이 주요 업무이다. 자원봉사를 8시간 이상 한 사람들에게는 하루치 등록을 무료로 해주는 규칙을 정해둔지라, 40여명이 되는 자원봉사자들이 제 시간에 제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무료등록증을 발급하는(이라고 써놓고, 이름표에 스티커를 붙여준다 라고 해석한다 🙂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둘리양의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인 크리스티는 하루에도 서너명이 넘는 특별 초대손님과 그들의 강연을 담당하는 일을 맡아서 집에도 못들어가고 아예 학회가 열리는 호텔에서 머물면서 밤낮없이 일을 하고 있고, 우리 동네 대형병원 부설 어린이집 원장인 케런은 전체 학회를 총괄하는 어마무지한 업무를, 이웃 커뮤니티 칼리지 유아교육과 교수인 바니는 학생 회원들을 위한 모임을 담당하고 있으며, ….. 중간 생략…. 여남은 명 남짓한 이 지역 유아교육 관련 인사들이 2년 전부터 준비하고 일해온 것이다.
늘 하던 학교 일을 벗어나, 화려한 호텔에서 잘 차려입고 잘 먹고 (학회 준비위원이라서 등록을 비롯한 각종 연회 행사 참가비도 다 무료라는 사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일을 하다보니, 바쁘기는 해도 즐겁고 재미있다.
다만, 매일 저녁 애들을 돌봐주는 남편에게 미안하고, 엄마 얼굴 보는 시간이 줄어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2014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