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점심에 남편의 동료교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다. 그 집은 남편은 미국인이고 부인이 중국에서 미국유학와서 만나 결혼한 경우인데, 부인의 외모가 흡사 푸근한 한국인 아줌마 같아서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인상이다. 게다가 내가 만든 김치를 무척 좋아해서 전에도 두어번 내 김치를 나누어준 적이 있다.
이 날 초대받아갈 때에도 내가 담근 배추김치와 물김치를 가지고 갔다. 우리 말고도 초대된 가족이 더 있는데 그늘 모두 내가 만든 김치, 혹은 진짜 한국사람이 만든 진짜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더 큰 통에다 많이 가지고 가자는 남편을 만류시키며, 요만큼만 담았다. 이제 곧 김장을 할 예정이니까 맛있게 만든 김장김치를 나눠주려고 계획했기 때문이다.
제프 교수네 집에 모인 가족은 모두 네 가족이었는데, 모두 즐겁게 이야기하고 웃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우리 아이들은 제프 교수의 딸인 메간 언니가 잘 데리고 놀아주어서 나는 모처럼 홀가분하게 어른들끼리만 수다를 즐길 시간이 생겼다. 메간은 푸근한 엄마 대신에 백인인 아빠를 많이 닮아서인지 참 예쁘고, 피아노에 소질이 많아서 아직 중학생의 나이에 시향과 협연도 하는 실력이라고 한다. 예쁘고 상냥한 메간 언니야를 졸졸 따라다니며 잘 노는 둘리양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제프 교수네 현관을 둘러싼 화단에는 예쁜 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중에 자세히보니 관상용 화초가 아닌, 식용작물이 많았다. 열무 이파리가 빨간 (제라늄이던가?) 꽃 사이에 흐드러져 있는 모습이 그렇게 예쁜 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다 ㅎㅎㅎ 물망초 꽃인가? 했던 길쭉하고 나란히 줄서있던 이파리는 부추였고… ㅋㅋㅋ
생김새처럼 인심도 좋은 안주인은 열무를 마구 뽑아서 가지고 가라고 나누어 주었다. 대만계 미국인 올리비아는 이걸 어떻게 요리해 먹는지 물었고, 메간 엄마와 나는 침을 튀기며 이건 김치도 만들어먹을 수 있고, 멸치 넣고 된장 넣고 끓여서 먹어도 되고, 볶아 먹어도 되고… 하면서 아줌마 수다를 떨었다.
곧 김장을 할 예정이지만 열무 이파리가 어찌나 크고도 부드럽게 아삭하던지 탐이 나서 비닐봉지로 두 봉다리나 꽉꽉 채워 얻어왔다.
깨끗하게 씻어서 담아보니 큰 대야에 한 가득이다.
무척 뽀얗고 야들야들한 무는 꼭 메간의 얼굴색과 닮았다.
소금을 뿌려서 하룻밤 재워두고…
다음날 일어나 계획에 없던 김치담기가 시작되었다.
풀을 쑤어두고 고춧가루를 물에 개어두었다.
김치 양념으로는 이렇게 단촐하게만 넣었다.
푸드 프로세서에 모두 넣고 간편하게 갈았다.
양념을 이렇게 김치통에 넣고 잘 섞어서 잠시 덮어두었다. 바로 버무리는 것보다 양념이 조금 쉬면서 맛이 잘 어우러질 시간을 주는 것이다.
열무 이파리와 뿌리도 건져서 물기가 빠지도록 조금 기다려주고…
김치통에다가 바로 버무리니 아까운 양념이 이 그릇 저 그릇으로 옮겨다니며 묻혀서 버리는 일없이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설거지도 줄일 수 있어서 일석이조이다.
상온에 하루이틀 두어서 폭 익힌 다음에 재료를 협찬해준 제프 교수네 가족에게 답례로 보내고, 친한 이웃과도 나누어 먹을 예정이다.
2014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