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내가 다니는 대학교는 추수감사절 방학을 일주일간 길게 하는 반면,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은 수요일부터 주말까지가 방학이었다. 그래서 월요일과 화요일은 아이들없이 어른들만의, 진정한 의미의 휴가였다.
아이들이 함께 있으면 티비도 어린이 채널 고정, 편안하게 차 한 잔 마시며 책 한 줄 읽을 시간이라곤 없이, 아이들이 해달라는 요구를 들어주며, 짜증이나 칭얼거림을 달래주며, 그렇게 지내다보면 주말이 주말이 아니고 방학이 방학이 아닌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 없는 진정한 방학을 누려보자며 남편과 나는 극장에 가서 인터스텔라 영화를 보았다. 아이맥스 극장에서 보아야 더 실감난다지만, 우리 동네 아이맥스 극장은 아직 공사가 덜끝나서 (내년 1월 중에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냥 일반 극장에서 관람을 했다.
물리학 박사인 남편조차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어렵다고 하는데, 하물며 유아교육 공부밖에 안한 나에게 블랙홀의 중력은 너무나 강해서 시간조차 천천히 흐르고, 블랙홀의 주위에는 빨려들어가는 별빛이 고리 모양으로 보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과학적 이론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그런게 있어” 하고 넘어가는 영화의 배경 정도일 뿐이었다 🙂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과학의 신비나 물리학 이론 같은 것이기 보다는, 가족간의 사랑이나 극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이기심…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쓰인 과학적 배경이 여느 유치한 공상과학 영화 (예를 들면, 인디펜던스 데이) 에서 나오는 것처럼 너무나 유치하고 근거없는 설정이 아니라, 무척이나 과학적 사실을 제대로 끌어다가 차용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모처럼 어른 수준에 맞는 영화를 아이들의 방해없이 감상하고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수요일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복닥거리는 “그들만의 방학”이 시작되었는데, 보지도 않으면서 티비에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시끄럽게 틀어놓고, 아래윗층으로 나를 끌고 다니면서 이 게임을 하자, 저 책을 읽어달라, 안아달라, 우유달라 쥬스달라, 동생이 뺏어간다, 오빠가 괴롭힌다… 이런 북새통에서 사흘을 버티고나니, 더이상은 집안에 머물러 있기가 싫어서 토요일에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보러 나갔다.
집안에 있는 것보다, 바깥으로 나가면 아무래도 아이들의 시선이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쉽고, 집안을 장난감과 음식으로 어지르는 것도 예방할 수 있고, 심지어 식사까지 내 손으로 준비하지 않고 사먹을 수 있으니, 여러 모로 내게는 피난처가 되는 셈이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저 어린이가 볼 수 있는 만화영화라길래 표를 사서 들어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겨울왕국의 제작팀이 만든 만화영화라고 한다. 어쩐지 등장인물의 모습이 조금 닮아보인다 싶더라니…
만화의 배경은 무척 일본스러운 미국의 대도시 (샌프란시스코의 풍경과 많이 닮은) 였고, 주인공 소년은 아예 이름조차 일본식 이름의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일본식 이름이 “히로” 였는데, “히어로” 처럼 들려서 주인공의 이름으로 잘 어울리고, 또 거기에서 빅 히어로 식스 라고 하는 자기네들의 팀 이름을 유도해 내었으니 작명 센스가 괜찮은 듯.
미쉐린 타이어의 마스코트를 닮은 듯 풍선같아 보이는 로봇은 이제껏 보아온 공상과학만화영화의 로봇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고, 중력자기장을 이용한 텔레트랜스포터와 그 안에서 길을 잃은 박사님의 딸 이야기는 마치 인터스텔라와 약간의 교집합을 형성하는 듯 했다.
일곱살 코난군은 이 만화영화를 아주 제대로 이해하며 감상했고, 둘리양은 낮잠 시간이 되어 그런지 조금 짜증을 내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극장에서의 매너를 잘 지켰다.
월요일엔 인터스텔라, 토요일엔 빅 히어로 식스.
대상 관객의 연령층이나 수준은 극과 극으로 달랐지만, 둘 다 과학과 공학을 적절히 버무려서 잘 만든 영화였고, 우리 가족은 즐겁게 관람했다.
2014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