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아갈 사람으로 준비시키는 것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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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틀린 철자가 있거나 약어를 사용해서 쓰긴 했지만, 코난군이 내게 건네준 쪽지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널프 건 (장난감 총의 이름)을 개조해도 되나요?”

“널프 건에 페인트를 칠해도 되나요?”

널프 건이라는 물건은 남자 아이들이라면 누구가 좋아하는 장난감 총인데, 스폰지 총알을 제법 멀리까지 쏠 수 있고, 권총이나 기관총 등의 다양한 모양으로 나와있고 제법 정교한 디자인이라 어른들 중에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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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양도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널프 건이 나와있다.)

아직 방학중인 코난군이 출근하는 엄마를 따라와서 아이패드로 여러 가지 동영상을 혼자 한참 찾아보더니 누군가가 널프 건을 개조하는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널프 건을 무척 좋아하는 오타쿠가 그런 짓을 하면서 동영상까지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나보다 으이구~)

자기도 그걸 따라서 해보고 싶다며 엄마의 허락을 구하는 제안서를 써서 제출한 것을 보니, 혼자서 원하는 동영상도 찾아보고, 그걸 자기가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 생각도 해보고, 엄마한테 허락을 구하는 것을 글로 쓰기까지 하고… 코난군이 부쩍 자란것을 알겠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오케이 하고 허락을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코난군은 아주 구체적으로 무슨 물감을 꺼내서 어떤 붓으로 칠할건지를 계획하려고 했다. 플라스틱 표면에 어린이용 물감을 아무리 발라봐야 묻지 않을거라고 말해주었더니 무척 실망 – 을 넘어서 좌절과 분노까지 – 하면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역시나 별 성의없이, 플라스틱에 묻는 특별한 페인트를 사다가 써야 한다고 대답해주고 집에 와서는 저녁식사 준비로 바쁘게 내 할 일을 하고, 그 이후로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코난군이 또 혼자서 다른 동영상을 더 찾아보고 연구를 했던지, 널프 건에 페인트를 하려면 스프레이 페인트가 필요하고,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요즘 코난군은 혼자서 읽고 쓰기를 제법 잘 하게 되어서 그런지 무언가를 머리속으로 상상하고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즉 과학적인 리서치 (=scientific research)를 자주 하려고 한다.

어제 저녁에 운동을 하면서 우연히 보았던 티브이 프로그램이, 로봇이 많은 인력을 대체하는 요즘 세상에서 어떤 직종이 유망하고 어떤 직종이 사양길인지, 그에 발맞추어 어떤 방향으로 아이들을 교육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다.

그 프로그램에 의하면, 예전에는 학교에서 시키는대로 말 잘 듣고, 중요한 사실을 이해한 후 그것을 잘 기억하는 학생들이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가 되었다면, 요즘은 인터넷으로 모든 지식을 쉽게 누구나 찾아볼 수 있고, 수많은 일은 로봇이 대신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암기를 잘 하고 시험 문제를 잘 푸는 아이보다는, 창의력이 있고 비판적 사고능력을 바탕으로 문제해결 (이건 정답이 있는 문제에 맞는 답을 골라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말한다)을 잘 하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코난군의 논리적인 상상과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무척 가상히 여겨졌고, 단순히 쓸데없는 짓이라며 원하는 작업을 못하게 하는 것은 미래를 살아갈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는 결론이 나왔다. 남편과도 상의를 해보니 어릴때 고장난 시계 같은 걸 다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는 등의 놀이를 하고 놀았고, 실험물리를 전공한 사람이라 그런지 나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코난군의 리서치를 지지해주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코난군과 함께 마당에 나가서 함께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하겠다며 흔쾌히 허락을 한 것이다. 평소에 쓸데없는데 돈을 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런 일은 쓸데없는 일이 아니라 아들의 교육에 투자하는 중요한 일이라 판단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해봐도 스프레이 페인트가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니, 햄버거 한 번 사먹은 셈 치고 사주고, 날씨 좋은 주말에 아이들과 마당에 나가서 놀아주기에 좋은 일이기도 하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은 일이다.

그래서 코난군의 연구제안서에 “봄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 해보자” 하는 답변을 적어서 식탁 유리에 끼워놓았다. (맨 위 사진)

2015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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