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사회 시간에 자유의 여신상에 대해 배운 코난군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뉴욕에 가서 자유의 여신상을 직접 구경하고 오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이러브뉴욕 셔츠도 사입고 빅 씨티에 있다는 고층빌딩 구경도 하고, 유람선도 타자는 등의 다양한 소원을 들어줄 겸, 아이들이 자라서 이젠 조금 더 먼 거리로 여행도 해볼 겸, 해서 여행 계획을 세워보았다.
7월 21일 화요일 여행 시작, 워싱턴 디씨 근교 항공우주박물관 구경하고 저녁에 펜실베니아 도착
7월 22일 수요일 허쉬 초코렛 월드 구경 및 저녁에 뉴욕주 스탠튼 아일랜드 도착
7월 23일과 24일 버스로 뉴욕 맨하탄과 자유의 여신상 관광하고 24일 저녁에는 롱아일랜드 홀 박사님 댁에 도착
7월 25일 트레버 박사님 댁에서 피크닉
7월 26일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견학하고 귀가
우리집에서 뉴욕까지 쉬지않고 운전하면 뉴욕 근교의 교통사정에 따라 조금 차이가 나겠지만 대략 여덟-아홉 시간이 걸린다.여행 초반에는 체력 안배를 잘 해야 하므로 하루만에 뉴욕까지 올라가지 말고 중간 지점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코난군의 발가락 부상때문에 가려다 못갔던 항공우주박물관이 통과하는 길에 있어서 거기부터 들르고, 그 날 밤은 펜실베니아에서 묵기로 했다.
펜실베니아에는 허쉬 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는데 허쉬 초코렛 회사를 창립한 밀튼 허쉬가 초코렛 공장은 물론이고 주민을 위해 세운 학교, 놀이공원 등등의 볼거리가 있어서, 초코렛을 무척 좋아하는 코난군에게 적합한 여행지였다. 마을을 돌아보는 트롤리 안에서 허쉬제품 초코렛을 여러 가지 맛볼 수도 있었고, 뉴욕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예약한 호텔에서 수영도 하며 즐거웠다.
뉴욕 관광 일정은 숙소를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맨하탄에 있는 호텔은 숙박비도 엄청나게 비싸지만, 자동차를 가지고 가서는 주차문제 때문에 즐거운 여행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뉴욕시 외곽에 호텔을 잡기로 했는데, 가능한 선택지는 뉴저지, 롱아일랜드, 퀸즈나 브롱스, 아니면 스탠튼 아일랜드였다.
퀸즈나 브롱스는 맨하탄 바깥쪽이라고는 하나, 맨하탄 못지않게 붐비고 비좁은 곳이라 주차문제며 합리적인 가격에 깨끗한 호텔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가장 먼저 아웃.
그 다음으로 물망에 오른 곳은 롱아일랜드였는데, 어차피 뉴욕 관광을 마친 다음에는 롱아일랜드의 국립연구소도 방문하고 홀 박사님 댁도 방문할 예정이 있었다. 그리고 롱아일랜드에서 맨하탄까지 가는 기차를 타면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도 되고 주차 걱정없이 맨하탄 구경을 할 수도 있어서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의외로 롱아일랜드에 호텔이 많지가 않았고, 또 기차를 타고 맨하탄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이 기차요금도 많이 들고 시간도 꽤 많이 지체될 것 같아서 이 옵션도 배제했다.
다음은 뉴저지의 에지워터 근방을 생각해보았는데, 지하철로 바로 맨하탄으로 연결되고, 물 건너 맨하탄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으나 호텔숙박비가 너무 비싸서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의 최종선택은 (뉴욕 여행 일정은 나더러 세워보라고 남편이 일임시켰더랬다 🙂 스탠튼 아일랜드에 호텔을 잡고 맨하탄까지 무료 페리를 타고 드나들기로 했다. 뉴저지나 롱아일랜드에 비하면 무척 저렴한 값으로 깨끗한 호텔을 잡을 수 있었고, 이른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무료로 운항하는 페리보트를 타면 자유의 여신상을 비롯해서 맨하탄의 전경을 멋지게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약간의 패착이 있었는데, 지도상으로는 가까워보였던 호텔과 페리 선착장 간의 거리가 교통체증 때문에 30분 가까이 소요되었고, 페리 터미널 안의 주차장은 출퇴근 하는 사람들의 차로 금방 차버렸기 때문에 사설 주차장을 이용해야만 했다. 사설 주차장은 터미널 주차장과 요금은 같았으나 한 블럭 정도 걸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차 안에 열쇠를 남겨놓고 나와야 해서 (이중주차를 해놓고 주차장 직원이 그때그때 차를 빼고 넣고 해야 하기 때문) 보안문제가 조금 꺼림직하게 여겨졌다. 호텔에서 페리터미널까지 운행하는 무료 셔틀이 있었는데, 그걸 이용하면 주차문제는 해결되지만, 나가고 들어오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셔틀 시간에 맞추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암튼 그래서 숙소는 스탠튼 아일랜드에 잡고 뉴욕 시내 관광은 빅버스투어 라고 하는 회사의 버스투어 상품을 이용하기로 했다. 십 년 전에 남편과 단둘이 맨하탄 구경을 할 때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많이 걸어다녔지만 이번에는 어린 두 아이들에다가 그 중에 한 녀석은 발가락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라서, 가정 적게 걸을 수 있고, 또 길찾는 일로 헤메일 걱정이 없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버스 투어는 가이드가 도시 곳곳의 건물이나 특징같은 것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코난군의 사회 과목 복습에도 도움이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30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오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리고싶은 곳에 내려서 돌아보고 그 자리에서 다음 버스를 타고 계속 관광을 하는 방식이다.
맨하탄 관광은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박물관을 돌아보거나 뮤지컬 공연을 보는 것은 하지 않았다. 센트럴 파크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엠엔엠즈 초코렛 가게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기념품을 사고,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아일랜드로 배를 타고 들어가서 돌아본 것이 버스에서 내려서 한 관광의 대부분이었다. 이 다음에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그 때 연령에 맞는 또다른 뉴욕 관광을 하게 될테니 공연히 어린 아이들을 지루하게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맨하탄 관광을 마친 다음에는 롱아일랜드 깊숙히 안쪽에 있는 그렉 홀 박사님 댁으로 갔다. 홀 박사님은 코난아범이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포스닥으로 일할 때의 상관이었는데, 부지런하고 철두철미한 성격과 사고방식, 생활방식이 코난아범과 매우 닮아서 그런지 연구소를 떠나온 이후에도 서로 꾸준히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이다. 이번에 우리 가족이 뉴욕 여행을 간다고 알렸더니 그러면 자기집에도 꼭 놀러오라고 초대를 해주어서 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더랬다. 홀 박사님의 사모님인 페니도 우리 아이들을 무척 귀여워해주셨다. 신기한 것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무척 조심스럽고 부끄러워하는 우리 아이들이 홀 박사님 댁에서는 마치 자기집에 온 사람들 마냥 재잘재잘 말도 잘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들이 아빠 엄마와 무척 좋은 사이이고 그래서 자기들을 예뻐해주는 마음이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렉 홀 박사님과 함께 연구그룹을 이끌고 있는 트레버 박사님 또한 코난아범과 함께 일했고 가끔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였는데 마침 우리가 방문한 주말에 연구그룹내의 모든 포스닥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하게 되어서 우리도 함께 가서 즐겁게 먹고 마시고 놀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를 방문해서 예전에 코난아범이 일하던 실험실을 코난군에게 보여주었고, 지난 십 년 사이에 새로 지은 건물과 시설도 돌아보고, 또 마침 여름방학이라 지역사회 어린이들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과학과 마술을 결합한 쇼를 재미있게 구경하고 롱아일랜드를 빠져나오기 전에 미나도 라고하는 일식 뷔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예전에 코난아범이 국립연구소에서 일할 때 한 두 번 와서 먹어본 적이 있는 미나도 뷔페에는 다양한 생선초밥과 김밥과 디저트가 무척 맛있다. 버지니아로 이사오고 나서는 그만큼 맛있는 일식집을 가보지 못해서 항상 그리워하던 곳이었는데 마침내 거기서 밥을 먹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미나도에서 또 한가지 생각지 못한 즐거운 일이 있었는데, 바로 82쿡 키친토크 게시판에서 좋은 글을 올려서 인기가 많은 부관훼리 님의 가족을 만난 것이었다. 아들 딸 쌍둥이들의 모습이라든지, 바다낚시, 아내의 훌륭한 요리솜씨를 재치있는 글과 함께 자주 올리는 부관훼리 님이 롱아일랜드에 살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음식점에서 마주칠 줄은 정말 몰랐다. 코난군을 앞세우고 음식을 접시에 담고있는데 건너편 디저트 음식대 앞에서 무척 낯익은 어린이 남매가 음식을 담고 있는 것이 보였다. 82쿡에서 자주 보던 사월이와 찐빵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거의 어린이 연예인 수준으로 유명하다 🙂 쌍둥이 남매가 음식을 담아서 테이블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가보니 부관훼리님이 거기에 있었다. 사실, 아직도 서로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래도 인터넷 게시판에서 무얼 먹고 사는지 가족이 누가 있는지는 잘 아는, 그래서 낯선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도 아닌 애매한 사이이지만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두 가족이 단체로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점심을 먹고 오후 세 시부터 장장 아홉시간에 걸친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까 중간에 쉬지말고 피곤하더라도 집에 돌아가서 쉬자고 남편과 의논을 모았다 – 스마트폰으로 82쿡에 접속을 해보니 부관훼리 님이 오늘 있었던 깜짝 조우에 대한 글을 재미나게 올려두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코난아범에게도 읽어주고, 나도 반가웠노라는 댓글도 달고 하면서 내려왔다.
중간에 코난군이 차멀미를 해서 조금 토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아이들은 장거리 여행을 잘 해내었고, 코난아범도 많이 피곤했을텐데도 불구하고 아홉시간의 운전을 무사히 마쳤다. 집에 돌아오니 밤 열두시 삼십 분이 넘었다. 차 안에서 자던 아이들은 집에 오니 몸과 마음이 푸근해졌는지 잠을 깨서 아빠 엄마가 짐을 푸는 동안에 그리웠던 장난감을 꺼내서 놀기도 하고, 이를 닦고 샤워를 하고, 새벽 두 시가 다 되어서 새로 잠이 들었다.
이제부터 틈나는대로 여행지별로 기억나는 즐거운 이야기와 사진을 올릴 계획이다.
모두들 기대해 주시길…
2015년 7월 27일
정말 깔끔한 여행후기 입니다.
전 수년전 다녀온 여행기도 아직 손도 못대고 있는데 ..소년공원님의 부지런함에 칭찬드립니다.
이번 여행은 즐거운 사람들과의 만남과 아이들 학습에 도움되는 여행이었네요.
찐빵이 사월이 만난 대목은 정말…..정말 다시 읽어봐도 신기하네요..^^
제 블로그에 댓글 달기가 조금 번거로우셨을텐데도 불구하고 격려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