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 홀 박사님은 코난아범이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일할 때 보스인데,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이며, 궁금한 것은 당장 찾아서 공부해서 알아야하고, 그러다보니 다방면으로 아는게 많은 성품이 코난아범과 많이 비슷해서 2년간 함께 일하는 동안에 친하게 지냈던 것은 물론이고, 연구소를 떠나온지 십 년이 되어가도록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낸다.
십 년만에 보는 홀 박사님은 흰머리가 좀 더 늘었다.
집에서 직접 커피를 로스팅하고 손으로 갈아서 커피를 만드는 취미까지도 남편과 똑같으니 두 사람이 서로 잘 통할밖에…
우리가 도착하던 날, 옛적에 어머님으로부터 무려받은 레서피를 참조해서 닭고기 바베큐 요리와 복숭아 케익을 손수 만들어 주셨다.
레서피에 적힌 글씨를 보니, 홀 박사님의 어머님도 상당히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이셨을 것 같다. 지금 여든이 넘으신 연세로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계신다고 한다.
홀 박사님이 대학을 가느라 집을 떠나면서 어머님이 적어주신 레서피를 수십 년 동안 잘 간직하고, 또 직접 만들어본 다음 수정해서 자신만의 버전으로 만들어냈다고 한다. 원래 어머님이 적어주시기로는 설탕을 1과 2분의 1컵을 넣으라고 했지만, 여러 번 만들어 먹다보니 설탕을 한 컵만 넣어도 맛있게 되더라며 2분의 1 부분을 펜으로 그어놓은 것이 보인다.
이 복숭아 케익을 코난군이 어찌나 맛있게 잘 먹던지, 나도 집에 돌아와서 만들어주어야겠다 싶어서 레서피를 사진을 찍어왔다.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 오후에는 시어즈 박사님 댁에서 바베큐 파티가 있어서 전채요리를 홀 박사님이 준비해가기로 하셨다고 한다. 이 댁은 사모님보다 홀 박사님이 부엌에서 주도권을 잡고 계신 듯 하다. 남편이 무슨 요리를 할지 정하고, 요리를 시작하면 사모님은 필요한 재료를 꺼내는 것을 돕는 정도만 하고 모든 요리의 과정을 홀 박사님이 혼자서 다 맡아서 하셨다.
시어즈 박사님 댁에 가지고갈 요리를 할 때에는 내가 조수가 되어서 칼질을 하고, 페니 사모님은 우리 아이들을 마당으로 데리고 나가서 놀아주셨다. 페니 사모님은 도서관 사서학을 공부하시고 인근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데, 정말 어린이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쉽게 연상될 정도로 유쾌하고 친절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시는 분이다.
이 댁에는 펠레 라고 하는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지금은 장성해서 미시간에서 박사과정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십년 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중학생이던 펠레가 비올라를, 홀 막사님은 리코더를, 내가 피아노를 함께 연주했었는데, 그 청소년 펠레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라니, 참 세월이 빠르다 싶었다.
펠레가 쓰던 장난감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지고 놀라며 꺼내주셨는데, 그래서 코난군과 둘리양은 이번 여행 중에서 여기가 가장 좋은 곳이라며 행복해 했다.
집안 곳곳엔 이렇게 진귀하고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아서 나도 아래윗층을 오르내릴때 마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윗층에 게스트룸과 펠레가 쓰던 방까지 두 개를 내주셔서 전용 화장실과 더불어, 아이들과 아주 편하게 내 집에서 머무는 것만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장거리 여행애서 다소 지쳤던 아이들도 이 집에서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지냈다.
참 신기했던 것은, 우리 아이들은 원래 처음 보는 사람이나 처음 간 장소에서는 긴장하고 수줍어서 말도 안하는 성격인데, 이상하게도 이 댁에는 들어선 순간부터 페니 사모님이나 홀 박사님이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고, 음식도 잘 먹고, 웃고 떠들며 마치 아주 친한 친척집에 온듯이 행동을 했다. 여기서 한 번 더, 사람과 사람간의 마음과 감정은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과 자신의 부모가 인사하고 대화하는 공기 속에서 ‘아, 이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구나, 안심해도 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홀 박사님과 함께 만든 요리를 들고 찾아간 곳은 트레버 시어즈 박사님 댁이었다. 시어즈 박사님은 홀 박사님과 공동으로 연구그룹을 이끌고 계신다. 즉, 이분도 코난아범의 보스였던 것이다. 이 댁에도 청소년이던 아이들이 다 자라서 대학으로 가고 두 부부만 남았다. 흰 머리도 많이 보이고…
시어즈 박사님의 사모님은 아직도 영국 액센트가 많이 남아있어서, 영국드라마 닥터후를 즐겨본 코난군이 재미있어 했다 🙂
홀 박사님과 시어즈 박사님의 전직, 현직, 포스닥 연구원들이 함께했던 파티는 즐거웠다.
아이들은 이 집에서도 이 댁 아이들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2015년 8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