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 앉아서 고3 입시생 놀이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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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새 학년이 시작되기 직전이면 교수들은 연간업적보고서 라는 것을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강의, 연구, 서비스 세 분야에 걸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그래서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 그 성과가 가지는 의미… 등등을 시시콜콜히 그러나 잘 정리해서 제출하면 학과장이 그걸 평가해서 점수를 매긴다. 이 점수를 꾸준히 잘 받으면 테뉴어 심사를 받거나 부교수로, 정교수로 진급하는데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게 가장 하기 싫은 일 혹은 가장 끝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막판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벼락치기로 해야하는 일이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인 (혹은 다른 나라 사람 🙂 동료 교수들 모두가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이 학과장으로 취임한 제니퍼가 지난 월요일과 수요일인 오늘 이틀은 보고서 작성의 날로 지정해서 강의실을 한 개 잡아놓고 간식거리를 준비해놓은 다음, 50분마다 종을 쳐서 10분간 휴식시간을 알리고, 다시 보고서 작성하라는 종을 치는, 즉 자습감독 선생님의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옆사람과 대화도 금지하고 질문이 있으면 강단 앞에 칠판에 써놓았다가 10분간 휴식시간에 토의하도록 하는 것이 규칙이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렇게 하루종일 앉아서 열심히 보고서 작성만 하는 것인데, 나는 지난 월요일은 아이들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오늘 하루동안에 보고서 작성이 잘되든 못되든 끝마치려는 것이 목표이다. 테뉴어는 이미 받았고 부교수로 승진도 했고, 다음 마지막 관문인 정교수 진급 심사를 위한 업적도 그럭저럭 이루어놓았으니 연간보고서 작성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데다, 방학동안 손놓고 있던 개강준비를 얼른 시작해야 해서 이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을 지내고 돌아온 동료교수들이 그 동안 잘 지냈어? 하면서 수다를 떨고 있노라니 꼭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시작한 기분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다른 모든 일은 잊고 보고서를 완성하는데에만 집중할거라 생각하니 심지어 기쁘기까지 하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고3과 재수생 시절에는 미처 몰랐다…

2015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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