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1

그냥 일기 9-2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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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양 레드룸 적응기

코난군의 애완물고기 사랑

 

2015년 9월 24일

 

이번 학기에 나는 월요일마다 저녁 강의가 있고, 남편은 화요일은 새벽같이 출근해야 하고 수요일에는 퇴근이 늦어서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퇴근해야 하는 스케줄이다. 게다가 코난군은 집앞에서 8시 15분에 오는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기 때문에, 둘리양은 지난 한 달간 거의 매일 아빠와 함께 아침일찍 등원을 했다.

부모의 스케줄 때문에 둘리양은 아빠와 등하원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게 아이 입장에서 보자면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아침에 미처 잠에서 완전히 깨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뚝뚝한 아빠와 함께 어린이집을 가면 담임 선생님은 아직 출근전이라 옆반 교실에서 낯선 선생님과 놀아야 하고, 또 고속도로 운전을 해야 해서 갈 길이 먼 아빠는 다정하고 알뜰한 작별 인사를 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저녁에도 아빠가 퇴근하는 길에 둘리양을 데리고 집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월요일이면 심지어 집에 가서도 엄마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이런 가정형편에 더해서, 새로 올라간 레드룸에는 이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하나 없고, 모두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 뿐이라, 둘리양은 레드룸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주에 레드룸 선생님 및 심지어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 넘게 면담을 하고 의논을 한 결과, 내 아침 시간을 희생하더라도 내가 둘리양을 데려다주고, 선생님들은 우리집으로 가정방문을 오기로 했고, 레드룸 친구들을 우리집으로 초대해서 파티를 하기로 했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행동 교정을 전공한 동료교수의 자문을 얻어 행동지도 동화책을 만들기도 했다.

몇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둘리양이 어린이집에서 말을 안하거나, 식사를 거부하거나 낮잠을 거부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린이집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유아교육 전문가이다보니 (그래서 선생님들 보기에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걱정을 하기보다는 적절한 대책 마련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등이 있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둘리양은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거나 대화하지는 않지만 교실 구석에 앉아서 모든 아이들을 관찰하고 다른 아이들과 교사가 대화하는 모습을 열심히 보고 있다. 저녁에 집에 오면 그 날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다 기억해서 내게 말해주기도 한다. 또한 월요일 아침이 가장 힘들다면, 목요일이나 금요일 즈음이면 거의 다른 아이들과 차이없이 선생님 말도 잘 듣고 하루 종일 즐겁게 지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둘리양은 시간이 지나면 완벽하게 레드룸 생활에 적응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티비 프로그램에 나오는 보통의 엄마들은 자녀에게 이런 행동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전문가의 조언을 얻으면 그대로 시행하는 과정에서 조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도 있고, 조언대로 노력해도 문제행동이 좋아지지 않아서 좌절하고 더욱 혼란에 빠지는 것을 자주 보았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나자신을 포함해서 주변에 전문가들이 많아서 여러 가지 방법을 올바르게 시도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언젠가는 좋아지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절망적이지 않다. 다만 둘리양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한다.

다음 주에 아이들의 외할아버지가 오시면 겨울방학이 될 때까지 머무르시면서 바쁜 아빠와 엄마의 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주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아침에 코난군을 스쿨버스에 태우는 것만 도와주셔도, 내가 둘리양을 데리고 일찍 집을 나설 수 있으니, 눈물바람인 둘리양을 어린이집에 억지로 떼어놓고 허둥지둥 출근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코난군도 아빠 엄마가 바쁘거나 피곤해서 함께 못해주는 숨바꼭질 놀이나 총싸움 놀이를 할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어 좋겠지.

이번에 외할아버지가 미국에 다녀가시게 된 데에는 코난군의 여린 감수성이 한 몫을 했다. 학교에서 과제로 어르신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 과제 말고도 전체 학교 차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초청 행사가 있었고, 여기저기서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듣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이 여의치 않아서 스카이프로 조차도 얼굴 보기가 힘든 외할아버지가 생각나서 코난군은 눈시울을 적셨다. 코난군이 아기였을 때 우리집에 오셔서 함께 놀아주시던 추억이 떠올라서 더욱 그랬나보다.

코난군은 키우던 물고기가 죽었을 때에도 아주 많이 울었다. 지금 키우는 베타피쉬는 무려 세 번째 녀석인데, 매일 밥을 주고 들여다보면서 애정을 쏟고 있다.

어제 있었던 재미난 일화를 기록해둔다 🙂

저녁 메뉴로 뭘 만들까 생각하다가 간고등어를 구워주면 밥과 함께 잘 먹던 것이 생각나서 퇴근하자마자 쌀밥을 앉히고 고등어를 굽고 있는데 코난군은 고등어 말고 다른 것을 먹겠다고 했다. 눈치를 보니, 다른 먹고 싶은 음식이 따로 있어서가 아니라, 고등어가 먹고싶지 않은 것이었다. 원래 좋아하고 잘 먹던 고등어를 왜 안먹으려하는지 물었더니, 자기가 생선을 먹으면 플래쉬 (애완 물고기 이름 :-)가 너무 놀라서 충격을 받을까봐서란다. ㅎㅎㅎ 플래쉬의 어항은 현관에 있고, 우리는 벽으로 가려진 반대편 식탁에서 밥을 먹을거라 괜찮다고 했더니, 코난군이 어항 옆을 지나다가 자신도 모르게 "아, 생선 반찬이 맛있었어!" 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 여전히 안된단다.

이게 지금 반찬투정을 하는건지… 애완동물 생명존중을 하는건지… 잠시 헷갈렸지만, 자신의 행동이 타인 (혹은 타동물? ㅎㅎㅎ)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고려하고 주의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하여, 코난군이 원하는대로 라면을 끓여주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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