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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신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주중에는 내가 매일 출근을 하니, 아침 출근준비 할 때나 저녁시간에나 얼굴을 볼 수 있고, 주말에도 아이들 관련한 행사가 있거나 하는 날에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는 과묵한 경상도 사나이가 아니신가. ㅎㅎㅎ

그래도 잠시 잠깐 동안의 대화를 통해서나마, 전에는 내가 어려서 잘 몰랐던 아버지에 관한 사실을새로이 배우고 있다.

지난 3주간 새로이 배운 것을 나열하자면:

 

1. 농촌 출신이지만 농사일은 잘 모르심 🙂

2. 월남전에 해군 전함을 타고서 참전하신 적이 있음

3. 상사맨으로 일하셨음

 

앞으로도 아버지에 대해 새로이 알게될 것이 생기겠지만, 흥미로운 점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두려 한다.

 

먼저 1. 농사일에는 허당인 아버지 ㅎㅎㅎ

 

남편의 동료 부인이 열무며 부추같은 채소를 직접 기르는데, 얼마전에는 마늘을 심어보라며 우리에게 씨종자 마늘을 한 줌 나눠주었다.

나는 바쁘기도 하고, 씨앗을 심는 것은 봄철에나 하는 일인줄 알고 있다가, 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셔서 낮으로 심심하실 때 소일거리 삼아 뒷마당에 있는 텃밭 정리를 부탁드렸고, 그 김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마늘은 가을에 심어서 겨울을 지나고 늦봄이나 초여름에 수확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버지께 마늘을 좀 심어달라고 했더니, 며칠동안 네이버 검색을 하며 열공을 하시더니 마늘 마흔 알을 심어놓고 과연 잘 자랄지 노심초사 하신다.

마늘을 가을에 심는다는 사실조차 이번에 처음 아셨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바닷가와 가까운 농촌 마을 출신이지만, 국민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도시에 나가서 학교를 다니느라 직접 농삿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향이, 혹은 본적지가 도시가 아니라 무슨 군 무슨 면 이런 시골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시골 생활을 다 잘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

 

다음, 2. 월남전 파병

 

우리 아버지가 월남전 기간 동안에 해군으로 복무하셨던 것은 알았지만, 참전까지 하신 줄은 몰랐다. 

내가 딸이라서 아버지의 군대생활에 관심이 없었다가, 이번에 코난군이 할아버지가 군인이었다는사실을 알고는 실제로 전쟁에 참여하신 적이 있으신지 여쭤보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직접 총을 쏘며 전투를 한 것은 아니고, 수송선으로 군사물자 보급하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구축함 (영어로는 destryer 라고 부른다는 것도 이번에 배웠다)의 포병 장교가 군생활의 주요 경력이라고 하신다. 

코난군은 장차 장래희망이 해군이 되는 것이고, 총이나 칼, 수류탄, 전투기 등등 각종 무기에 관심이 지대하다. 이번에 할아버지가 오셔서 해군이었던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하니 코난군에게는 참 좋은 기회이다.

 

3. 아버지는 천우사의 상사원

 

낮으로 혼자 조용히 계시는 동안에 아버지는 우리집 책꽂이에 있는 만화책 미생을 다 읽으셨다고 한다.

얼마전에 티비에서 방영한 드라마 미생 이야기도 하다가, 아버지가 예전에 다니셨던 천우사 라는 회사가 상사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해군 중위로 제대하신 다음 외항선을 타다가,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즈음에는 부산 중앙동에 사무실을 둔 천우사 라는 회사에 다니셨더랬다.

그 때 아버지 회사에서 직원 가족들과 야유회도 다녀오고, 아빠 회사에 전화해서 "박과장님 바꿔주세요" 한 다음에 "아빠, 퇴근하고 오실 때 투게더 아이스크림 사오세요" 하고 부탁도 하고, 그랬지만 정확하게 그 회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몰랐었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1960년대와 70년대 동안에는 삼성이나 현대는 구멍가게 수준의 회사에 불과했고, 전택보 사장이 운영하던 천우사가 국내 최대규모의 종합상사였고, 한국에서 최초로 티비를 생산한 적이 있고 (필립스 사에서 부품을 가져와서 조립만 국내에서 했다고 함), 보세가공 이라는 시스템을 처음으로 개발해서 시행한 회사라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천우사 선박부에서 과장으로 일하셨는데, 그러고보니,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우리집 거실 창문으로 큰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이 보이면 "오늘은 아빠가 야근하시는 날이다" 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큰 배가 들어오면 바빠지는 회사… 어릴 때 그렇게만 기억했던 회사가 알고보니 박정희의 독재만 아니었다면 지금의 어느 대기업 못지않게 큰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연합해운과 같은 몇 안되는 자회사로 명맥을 이어가는 기업이었다.

그러고보니 그 당시 우리 아버지는 일어회화 학원 새벽반을 출근전에 다니시기도 했고, 외국에서 오는 텔렉스를 받을 일이 있다며 주말에 출근하시기도 했고… 여러 모로 미생에서 오과장이나 김대리가 일하는 모습과 비슷했던 것 같다.

1980년대 초반, 천우사는 결국 독재정권의 자금압박 (은행권 거래가 금지되어서 사채를 썼다고 함)과 창업주가 작고하면서 사업수완이 뛰어나지 못한 아들의 기업승계로 인한 경영난 악화로 문을 닫게 되었다.

그 때 우리 아버지와 함께 근무하시던 우리 고모부는 연합해운 부회장으로 발령나서 서울로 이사를 하셨고, 우리 아버지는 다시 외항선을 타게 되셨다.

 

아… 그랬었구나…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가 제법 즐겁다 🙂

 

2015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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