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0

그냥 일기 4-15-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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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끽하는 여유

코난군의 놀라운 글쓰기 실력

요즘 많이 똘똘해진 둘리양의 여름방학 계획

토요타 캠리를 닮은 내 남편

 

2016년 4월 15일 금요일

 

오늘도 회의가 있어서 출근을 하긴 했지만, 비록 아직도 해야 할 일을 몇 가지 남겨 두고 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물리적 정신적으로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예전에 박사과정 공부할 때 지도교수님이던 프릿쳇 선생님이 대학교수의 생활은 ebb & flow 와도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 늘 생각난다. 밀물과 썰물이 번갈아 들고 나가듯 바쁠 땐 정신없이 일이 몰아닥치지만, 또 가끔은 홀가분한 시간이 생겨서 (프릿쳇 선생님은 그런 시간이 있어서 연구활동을 하기에 좋다는 취지로 든 비유였음 🙂 무언가 창의적인 일과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직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하셨다.

종강을 불과 2-3주 앞둔 금요일의 학교는 무척이나 고즈넉하다.

이제 학생들은 기말시험 준비로 바빠지고, 학교의 행사도 별로 남아있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가보다.

학생들이 제 할 일로 바쁘다보니 교수인 나를 귀찮게 만들 일도 없나보다. 학기초나 수강신청 기간 중에는 넘쳐나는 이메일로 내 시간을 뺏아가던 학생들이 요즘은 아주 조용하다.

그러고보면 지난 한 달여 동안에 내가 그렇게 바빴던 일 대부분이 학생들과 관련된 일로 인해서였다.

다섯 그룹이나 되는 학생들의 수강신청을 위한 집단 면담을 해야 했었고, 우리 프로그램으로 전공을 바꾸고 싶다는 학생들을 여러 명 만나서 수강신청을 지도해야 했고, 반대로 우리 전공이 적성에안맞는 듯해서 다른 전공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학생, 아니면 다른 여러 이유로 우리 전공에 (혹은 우리 학교에) 더이상 남아있지 못하게 된 학생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하느라 번번이 강의 준비할 시간이 모자랐고, 과제물 채점이 늦어졌던 것이다.

교생실습 과정에서 능력이 부족하거나 노력이 부족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학생은 잘 하고 있지만 학교의 담임 선생님과의 의사소통의 문제, 또는 학교 전체의 사정 등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만나고, 관련된 사람 모두의 입장과 이야기를 듣고, 그 모든 의견을 조합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무척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정신적인 중노동이었다.

동료 교수들과도 장단기적으로 의논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모두 마무리짓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학년이 끝나가고 있으니 더이상 새로운 일거리가 생기지는 않고 있다.

다만, 학생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이 조용한 기간에 무언가 결정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2007년에 버지니아 공대에서 있었던 총기 사건도 꼭 이 무렵이었고, 우리 학교 학생들 중에서도 이맘때 자살을 한 학생도 있었고, 자살 시도, 불법 음주, 또는 갑작스런 자퇴 등의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그저 모두 무사히 한 학년을 잘 마치기를…

 

요즘 코난군은 학교에 갈 때 글쓰기 전용 공책을 꼭 챙겨간다.

학교에서 지정한 학습분량을 다 마쳤을 때 조용히 책을 읽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휴식시간이 허용되는데, 한동안은 종이에 만화를 열심히 그리더니 요즘은 공책에 소설을 쓰고 있다.

제목은 좀비 스토리?? 이던가?

공책 표지에 책표지처럼 제목을 쓰고 멋지게 꾸미더니, 페이지 번호를 붙여가며 지어내는 이야기는 제법 소설의 틀거리를 갖추고 있다. 연필로 쓴 글씨도 훌륭하다.

아직은 세 페이지밖에 안되는 분량이지만 구스범스 (어린이 괴기소설) 책의 한 페이지를 읽는 것처럼 독자의 흥미를 자아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옛날에~ 하고 서사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뜬금없이 어떤 아이가 학교 건물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복도에서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서 이야기가 조금 더 발전하고, 뭐 그런 식이다. 조금 더 분량이 많아지면 여기에 다시 소개할까 한다.

 

코난군은 혼자서 샤워도 하고, 숙제도 혼자 잘 하고, 잠도 혼자 자고, 간단한 냉동 음식을 직접 데워 먹을 수도 있고, 태권도는 파란띠…

그야말로 다 컸다.

그런데 요즘은 둘리양도 사람 구실을 제법 하고 있다 🙂

맨날 품에 끼고 들여다보는 아이패드에서 배우는게 많아서 가끔은 엄마 아빠를 놀래킨다.

물론 오빠한테서 배우는 것도 많고 오빠가 배우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는 일이 많은 것도 둘리양의학습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을게다.

요즘 둘리양은 덧셈에 재미를 붙여서 일상 생활 속에서 숫자를 찾아서 더하는 걸 즐겨한다.

오빠가 캔디 한 개, 자기가 두 개를 먹었으니 모두 해서 세 개의 캔디를 먹었다… 이런 식이다.

그리고 내 차를 타고 등하원을 할 때 우회전 좌회원 신호를 보고 우리가 어느쪽으로 턴하는지를 안다. 

요 녀석의 방향감각은 제법 뛰어나서, 자기 중심으로 오른쪽 왼쪽을 구분하는 것은 물론이고,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나에게 "엄마, 엄마 왼쪽에 있는 걸 좀 보세요" 하고 정확하게 방향을 구별할 줄도 안다. 탈자아중심성 을 발현하는 동시에 타자조망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쭉쭉 빨아들이듯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기에 마침 여름 방학이 다가오니 잘 되었다.

무언가 재미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수학교육 교수 레이아가 내 방문을 노크했다.

5월이 되면 코난군의 머니스터디 후속 인터뷰를 하겠다는 의논을 하면서, 코난군이 올 여름 방학에도 작년에 했던 것과 비슷하거나 다른 수학 관련 프로젝트를 하게 하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약간의 강박관념인지는 모르겠으나, 방학처럼 제법 긴 자유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그 기간 동안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만 기분이 좋아진다. 이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흘러보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남편은 코난군을 스쿨버스에 태워보내고 출근하기 위해 먼저 집을 나서고, 나는 출근하는 길에 둘리양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려고 나중에 집을 나섰는데, 코난군의 스쿨버스가 늦게 도착해서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내가 바로 뒤따라 가게 되었다.

2002년식 은색 토요타 캠리…

우리가 결혼하고 얼마 안되어 처음으로 장만했던 새 차이다.

그 전에는 나도 남편도 중고차를 구입해서 타고 다녔는데, 남편이 타던 마즈다 차가 수명을 다 해서 과감하게 새 차를 구입했던 것이다.

그 당시 가난한 유학생 부부이던 우리에게 토요타 캠리 새 차는 무척이나 큰 재산이었다.

지금까지 20만 마일을 탔으니 환산하면 32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하지만  자기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관리하는 남편 덕에 15년째 아직도 말끔하고 잘 굴러간다.

그래도 언젠가는 새 차를 사야겠지.

남편은 다음에도 또 토요타 캠리를 사겠다고 한다.

새로 나온 테슬라 전기 자동차가 잠시 물망에 올랐으나 아직도 품질관리에 개선점이 많아서 사지 않기로 했다.

토요타 캠리를 보면 남편과 꼭 닮았다.

무척이나 수수하고 소박해서 지루하기까지 한 느낌…

그렇지만 성실하고 믿음직스런 느낌…

남편과 결혼한지 15년이 다 되어가고, 남편과 캠리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플로리다 키웨스트까지 다녀봤으니, 이 차를 처분하고 새 차를 사게 된다면 그 이별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시간의 여유가 많으니 글도 무한정 길어졌다 🙂

금요일 오후 네 시다.

오랜만에 타겟이나 티제이맥스에 가서 쇼핑을 좀 해볼까 한다.

여섯 시 전까지 코난군을 픽업하려면 얼른 퇴근해야지.

날씨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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