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세계화를 어떤 여사님이 대대적으로 하려다가 돈만 떼먹고 흐지부지 되었던 일이 몇 년 전에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82쿡 자유게시판에서 한국 음식이 세계화 되기에는 너무나 빈약하고 조악한 수준이라는 장문의 글을 읽었다.
그 글의 요점은 한국 음식은 조리법이 다양하지 못하고 너무 짜고 뭐 그런 이유로 외국인에게 어필하기 어렵다는 비판이었다. 그리고 김치와 된장이 과학적이고 건강식품이라고 우기면서 외국인들에게 억지로 먹어보라고 들이대는 것은 한국 음식에 대한 반감을 오히려 키울 뿐이라는 주장도 했다.
외국에 오래 살면서 여러 나라 출신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먹여본 경험상, 어느 정도는 그 글에 동의하지만 – 조리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손쉽게 만들기가 어렵다는 점 – 어느 나라 요리는 월등하고 어느 나라 요리는 열등해서 감히 세계화를 꿈꿀 수 없다는, 음식조차도 우열을 가리며 줄세우기를 하는 그 논지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나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사람들은 위계적인 사고의 틀이 무척 강하다.
위계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혹은 위상이 높아질수록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려는 성향이 있다.
예를 들면, 도지사나 서울 시장보다는 대통령이 더 높은 직위이고 (이건 사실이기는 하다), 온 세계를 다 모아놓은 그룹의 리더 즉, 유엔 사무총장은 그보다 더 높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반기문이 섣불리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그의 직위에서 나온 후광때문인데, 유엔사무총장은 전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다. 그래서 직위의 이름도 president 나 chairman 같은 것이 아니라 secretary 라고 붙였다. secretary 는 우리말로 비서라고 흔하게 통역되는 말이다. 세계 각국이 모여서 그들 모두를 이끌 수 있는 리더로 정한 자리가 아니라, 친목 모임에서 연락을 취하고 회비를 관리하는 총무 혹은 회계 처럼, 평등한 각국의 입장을 아우르고 조정하도록 정한 것이 유엔 사무총장의 직위라고 생각한다.
위의 82쿡에 글을 썼던 사람의 논리도 내가 보기에는, 훌륭하지 못한 음식은 세계화가 될 수도 없고, 감히 도전해서도 안된다는, 위계질서에 지배받는 생각에서 나온 글이었다.
세계화라는 게 반드시 훌륭하고 대단한 것만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별로 예쁜 줄 모르겠던 스모키 화장법이 여러 나라에서 유행한 것은 그 당시 시대 풍조에 따른 것이지 그게 우수한 화장법이어서가 아니다.
세계인이 먹고 있는 패스트푸드 햄버거가 훌륭한 음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널리 퍼진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한식의 세계화란, 특정 기관이나 단체에서 주도해서 거창한 사업으로 할 일이 아니고, 그렇게 해서 될 일도 아니다.
그저 주변의 한국음식을 먹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한국음식의 맛과 조리법을 소개하고, 이왕이면 낯선 맛과 향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도록 재료의 선정이나 조리법, 양념의 정도를 조절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한국음식을 먹어보고, 그 맛을 못잊어서 다시 찾도록 하는 것이 "세계화" 라는 단어가 의미하고 지향하는 것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설이 거창했던 것에 비하면 참 평범한 음식으로, 그러나 내 나름대로는 참신한 발상으로 도모했던 "한식의 세계화 사업"의 일환이었던 한국식 카나페를 만들어 보았다.
흔하게 먹는 콩나물 무침이다.
오아시스 마트에서 목요일 오후마다 들어오는 콩나물은 금요일 아침까지도 남아 있기 힘들 정도로 들어오자마자 금새 팔리는 품목이라 외국인에게가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그래서 미국인 친구들에게는 생소한 음식이다.
다음은 오이와 게맛살 무침인데, 식초 설탕 소금 와사비를 넣고 무친 것이다.
이 두 가지 한국식 반찬을 미국인 손님들 (코난군과 같이 태권도를 배우는 친구네 가족과,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범님 – 미국인이다 – 가족을 초대했다) 에게 소개하기로 했다.
미국 마트에서 파는 카나페용 크래커 중에서 쌀로 만든 것이 있어서 구입해서 그 위에 반찬을 얹었다.
손님들이 도착하면 와인도 마시고 담소를 나누다가 식사는 나중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와인 안주도 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개씩 집어먹게 되는 전채요리 몇 가지를 준비했는데, 반찬 카나페가 그 중의 하나였다.
큰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아두니, 먹어본 미국인들이 모두 맛도 좋고 채소로 만든 건강식이라며 좋아했다.
딸기와 키위를 함께 담으니 선명한 색상이 화려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한식 카나페가 입에 안맞을지도 모를 손님을 위해서 준비한 평범한 전채요리인 페퍼로니와 치즈이다.
아, 그리고 해물이 들어간 부추부침개도 외국인 손님을 초대할 때 꼭 준비하는 전채요리이다.
해산물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건 씨푸드 팬케익이라며 즐겨 먹곤 하는데, 마침 코난군의 태권도 사범님도 해물은 전혀 안먹는데 이건 잘 먹는다며 사모님이 어떤 해산물이 들어갔는지 내게 따로 물어보기까지 했다.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친구따라 강남간다던 식으로 친구덕분에 우연히 배우기 시작한 태권도로 마침내 도장까지 운영하게 된 루퍼트 사범님은 김치를 비롯해서 내가 만든 한국 음식을 모두 잘 먹었다.
2016년 6월 12일
한식 세계화..저도 기억나요. 석사 때 지도교수한테 그거 관련 브로셔인지 뭔지 번역 할 학생 하나 구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 적이 있거든요. 근데 그게 번역도 아니고 뭐 그냥 책 한권을 써야–그러니까 그 여사님 이름으로 하는 대필 원고를 작성해야–하는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지도교수한테 이런 걸 학생한테 맡기겠다는 건 대충 하다 돈도 안 주고 입 씻겠단 얘기 아니냐, 이런거 교수님이 의뢰를 받으시는 거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했다가 면박만 당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ㅡㅡ
교수님께 과감한 항의를 하실 정도로 용감하셨군요 🙂
ㅋㅋㅋ 아아니요~ 저렇게 써 놔서 그렇지 실제 저 당시에 했던 말은 전혀 과감한 항의가 아니었어요. 기껏해야 “교수님 이러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였을 거예요. 돌이켜보면 대자보 쓸거리들이 정말 많았는데 말이죠. 이제와서 생각해봐야 부질없는 일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