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을 키우면서
2016년 8월 22일 월요일
오늘부터 남편의 학교가 개강을 했다.
우리동네 버지니아공대도 오늘부터 개강이라서 지난 주 후반부 즈음부터 온동네가 북적북적 하고있다.
평소 5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에 차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15분이 넘게 걸리는 도로정체 현상도 경험한다.
그러다보니 우리 학교는 아직 개강이 일주일 더 남았지만 내 심정은 이미 개강을 한 기분이다.
안그래도 이번 주에는 학생들의 강의만 시작안했다 뿐이지, 거의 매일 회의가 있어서 매일 출근을 해야 하고, 조용하게 나만의 일을 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학과 다른 단과대 교수들이 모두 모이는 회의에 가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새로운 분야 새로운 주제에 대해서 의논을 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오늘 참석한 회의에서는 학생들의 학습을 신장시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강연이 있었는데, 개강 준비를 앞두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앉았던 테이블에는 한국인 교수가 나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어서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서로 안부를 묻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 사람은 아기가 이제 돌을 막 지났고, 또 한 사람은 부인이 두 달 후에 첫 아기를 낳는지라, 아이 키우는 이야기로 수다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는 막연한 추억이 떠오른다.
아이둘을 키우면서 기본적인 생활이나마 겨우겨우 유지하고 사는 것이 때로는 힘들게 여겨지기도했지만, 어찌보면 그 덕분에 오히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감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 때문에 책 한 줄 읽을 시간도 내기 어렵고 어른들만을 위한 오락, 영화나 오페라 감상, 같은것을 해본 적이 몇 해도 더 전의 일이 되었다.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 내면의 목소리…
뭐 그런 주제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유가 전혀 없다.
삶이 무척 단순하다.
아이들을 먹이면서 나도 먹고, 아이들을 재우면서 나도 잠이 든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나도 출근을 하고 나의 퇴근시간과 퇴근이후 행로는 오로지 아이들의 스케줄에 따라 정해진다.
남편과의 대화도 아이들의 성장이나 학습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5분 이상 길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아빠 엄마를 쉬지 않고 찾아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덕분에, 공연히 너무 깊은 사색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내가 왜 사는가?
지금 나의 삶이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
그런 종류의 생각은 자칫하다가 비관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되고, 그러다보면 우울해지기도 하고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현재의 직장생활이 만족스러운가 아닌가에 대한 기준도 단순해져서, 나의 현재 연구과제와 강의의 방법론, 대학 내에서의 행정직에 대한 만족도…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
아이들 태권도와 발레 클래스에 데려다줄 수 있는 시간적 유동성이 허락되고, 밥먹고 살만큼 월급이 나오고, 그것도 내년이나 십 년 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일자리…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직장이다 🙂
어찌 보면 현재의 내 삶은 소크라테스가 비판하던 배부른 돼지의 삶과 닮아보인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도 함께 자라겠지…
아이들이 더이상 내 손길을 필요로하지 않게 되면, 그 때는 배부른 돼지에서 고결하고 배고픈 인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배부른 돼지의 삶이 과히 나쁘지도 않다 ㅎㅎㅎ)
둘리양이 그려준 빨간 하트 속의 엄마와 둘리양의 모습 🙂
제가 이 글을 보고 힘을 얻어서 댓글을 쓰고 싶었는데 전에는 아이디가 있어야 할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바뀌었네요. 저도 선생님 말씀대로 불만만 가지고 있지 않고 좋은 직장이라 생각하고 잘 다니려고 결심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