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7일 화요일
지난 주에 둘리양 어린이집 아이들 중에 열 다섯 명이 장염에 걸렸다는 이메일을 받았었다. 게다가우리 교생들로부터는 이 지역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수족구염이 돌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들었다.
우리 가족 중에는 둘리양이 그 바이러스를 피해가지 못하고 전염이 되었던가보다.
일요일 낮부터 고열이 나는데 화씨 105.3도를 기록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재어본 체온 중에 가장 높은 체온이니 신기록 달성이 맞다 ㅎㅎㅎ
그런데 열이 나면 응당 해열제를 먹여야 하건만, 이 녀석은 해열제 시럽을 안먹겠다고 뿌리치다가 약을 쏟는가 하면, 달콤한 캔디같은 씹어먹는 알약을 주니 일단 입안에 받아먹기는 했으나 삼키지 않고 무려 한 시간 가량을 물고 있다가 마침내 뱉어버리기도 했다.
어찌어찌 (아빠가 아이 입을 강제로 벌리고 내가 약을 부어넣고 해서) 약을 먹여도 열이 잘 내려가지 않는데 이렇게 반항을 하니 해열제를 먹일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열이 오를 때는 힘들어서 얌전히 소파에 기대어 티비만 보고 있다가도, 조금 괜찮아지면 오렌지 쥬스를 달라, 누룽지 밥을 먹겠다, 하며 의사표현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월요일에 세미나는 동료 캐롤 선생님께 대신 진행해달라 부탁드리고 만나기로 했던 학생들에게는모두 이메일을 보내어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이메일만 근근이 확인하며 하루를 놀았다.
전날 밤에 약을 잘 먹으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꼬셨더니 그래도 안먹겠다고 입을 앙다물던 녀석이 아빠 엄마가 레슬링을 해서 약을 강제로 먹이다시피 했건만 뻔뻔하고 당당하게도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가잔다.
우리집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 말고, 예쁜 개구리 캐릭터가 광고하는 프로즌 요거트 집으로 가잔다… 기가 막혀…
지난 주에 둘리양 담임 선생님과 연례 면담을 했는데, "내가 한국에서 유치원 교사 생활 5년 하면서 고집 센 아이들 많이 만났지만 둘리양 만큼 심하게 고집을 부리고 거세게 반항하는 아이는 본 적이 없다. 케이티 선생님은 혹시 이런 아이 예전에 겪어본적 있으시냐" 하고 물어보았다.
언제나 둘리양을 아주 많이 예뻐하시는 케이티 선생님은 둘리양의 고집셈을 하나의 큰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계시기까지 하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케이티 선생님도 둘리양보다 더 고집 센 아이를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ㅎㅎㅎ
'역시나, 내가 부족해서 힘든 게 아니었어'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으로 분류할 수 있는 대답이기도 했지만, '어쩌다 이리 고집센 아이가 내 자식이 되었누' 하는 생각을 하면 불행스러운 대답이다 ㅋㅋㅋ
내가 요만한 나이였을 때, 우리 엄마의 증언에 의하면 나도 똥고집 깨나 부리고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엄마가 나를 죽자고 뜯어고치셨다고 한다.
그 때의 죗값을 내가 지금 치르고 있는 건가…싶다.
(그렇다면… 요 녀석아, 너도 몇 십 년 후에 한 번 된통 당해봐라 ㅋㅋㅋ)
(7달러 주고 쓰레빠 한 켤레를 사주었다. 어린이집 갈 때는 안신고 집앞이나 동네 나들이 갈 때만 신기로 굳은 다짐을 받고 사준 것이다. 둘리양이 고집이 세기는 해도 이렇게 사전 계약을 한 것은 잘 지킨다 🙂
엊그제 나의 셋째 고모님이 말기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직 60대 중반의 젊다면 젊은 나이인데…
카카오톡 화상통화로 상주를 만나니 꼬맹이 어릴적에 봤던 그 얼굴이 아직도 보인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크겠지만 이제 더이상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되셨으니 홀가분한 마음도 들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릴 때 이 고모의 성격을 닮아서 괄괄하고 고집세고 왈패 기질을 보였다고 한다.
하긴 다른 고모들과 비교하면 제일 쎈 언니의 기질이 있으셨지…
아주 어릴 때 뵈었던 것 말고는 마주할 기회조차 없어서 고모와 조카의 다사로운 정 같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내 유전자 속의 어떤 기질을 공유했던 분이라 명복을 빈다.
오늘은 기온은 낮아졌지만 해가 짱짱하게 빛난다.
어제 저녁에 비가 심하게 내려서 오늘 해가 더 눈부시게 느껴지나보다.
우울증을 유발하려던 대뇌피질의 호르몬이 눈부신 가을 햇살에 소멸되어 가고 있나보다.
다행히 둘리양의 열도 많이 내려서 내일부터는 등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하루 집에 있으면서 내일 강의 준비를 해놓고 내일은 정상 출근해서 강의를 할 수 있겠다.
히익, 105도가 넘었다구요? 엄청 고생하셨네요 아이도 엄마도. 산이는 다리에 열이 있지 전체적으론 평균치보다 좀 낮은 체온을 유지하는 애라 감기 걸려서 좀 뜨겁다 싶은 때에도 여간해선 100도를 안 넘어요. 105도라니, 상상이 안 되는 체온이에요.;; 요즘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아이까지 아프고 그럼 정말 힘드시겠어요. ㅠㅠ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들 다니는 어린이집과 학교에서는 100도가 넘으면 등교를 못하게 하고 있어요. 열이 내려도 약의 도움없이 정상 체온을 24시간 유지해야만 등교할 수 있죠.
그래서 100도가 넘으면 아픈거다! 이렇게 생각하는게 일반적이고,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열이 좀 심하다 싶으면 103도까지 올라가기도 해봤지만 이번이 최고기록이었어요 ㅎㅎㅎ
섭씨로 환산해보니 40.7도라고 나오는군요.
그런데 요 독한 녀석이, 그렇게 열이 나도 정신은 멀쩡하더라구요.
약도 제대로 안먹고 생으로 버티면서 결국은 혼자 힘으로 바이러스와 싸워서 이긴거죠.
순하고 물러터진 아이가 아니라서 이럴 때 덕을 보기는 하는 것 같아요 ㅠ.ㅠ
저는 요즘 바빠서라기 보다는 가을을 타나봐요.
그냥 막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그러다 괜찮아지기도 하고 그래요.
애들이 좀 더 자라고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생기면 좋아질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슬님도 아이 키우며 공부하며 힘드시겠지만 우리 함께 응원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