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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밀려오는 업무와 빛처럼 날아가버리는 시간

둘리양 생일 계획

둘리양의 사전 준비 선호 성향

 

2017년 2월 3일 금요일 흐림

 

금요일 아침이다.

아침에 학과장 평가와 재임용에 관한 학과내 인사위원회 회의가 있고, 그 다음은 제법 덩어리 자유시간이 있고, 오후 두 시에 아너스 디렉터와 회의, 바로 이어서 우리 전공 내에 새로운 트랙을 만들기 위한 서류 작업을 하는 회의가 있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어제 저녁에 퇴근할 때 이런 일정을 확인하고, 회의 중간 비는 시간에 다음 주 강의 준비를 하거나 다음세대에 기고할 원고를 쓰면 되겠다 하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아침 회의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앗싸, 시간이 더 많아졌다~ 하고 좋아하며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았는데…

간단할거라 생각했던 학생들의 과제와 서류 점검이 여기저기 손보고 조언을 해주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메일로 더 해야 할 일들이 들어오고 있다.

날마다 해야할 일 목록 (영어로는 To Do List 라고 한다 🙂 을 적는데, 목록에 열 가지 쯤 업무를 적어놓았다고 치면, 그 중에 완성한 일은 고작 두 세 개 뿐인데, 거기에 새롭게 더해지는 업무는 열개쯤 되는 것이 매일 매일의 내 형편이다.

학교의 일 뿐만 아니라, 둘리양 친구 생일 파티에 가지고갈 선물을 사야 한다거나, 구멍난 둘리양의 신발과, 나도 정장 차림에 마땅히 신을 구두가 없어서, 참으로 내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패션 아이템 쇼핑도 해야만 한다.

냉장고에 빵과 우유와 햄, 치즈, 과일, 등등도 전반적으로 다 동이 나서 식료품 쇼핑도 해야 하는데, 그건 아예 남편에게 코난군을 태권도장에 데려다준 다음 비는 시간에 가게에 가서 뭐든지 닥치는대로 눈에 띄는대로 다 사오라고 부탁을 해두었다.

뭘 사서 뭘 해먹을지 미리 정해서 쇼핑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에 치어서 그런 사소한 것까지 생각하고 계획할 겨를이 없다.

 

어느덧 시간은 날아서 2월이 되었고, 그걸 깨닫고 달력을 새로 넘긴 오늘이 벌써 2월의 세 번째 날이다 🙂

둘리양과 함께 달력을 보며 생일까지 몇일이 남았나 세어보았다.

생일 파티를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오래도록 여러 가지 옵션을 생각해보다가, 그냥 예년처럼 어린이집에 컵케익을 구워서 보내기로 했다.

이번에는 둘리양의 가장 친한 친구 윌리엄도 먹을 수 있는 글루텐 프리 케익을 만들기로 하고 필요한 재료를 아마존 닷 컴에 주문해두었다.

그리고 생일인 23일 목요일에 시간을 내서 어린이집에 가서 둘리양 사진도 찍어주고, 친구들과 함께 미술 만들기 활동을 해서 각자 생일 기념품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할 계획을 세웠다.

숨쉬기도 바쁜 시절이지만, 그래도 어린이집 친구들과 함께할 마지막 생일이고, 다른 아이들의 부모가 그리 하는 걸 지켜본 둘리양이 엄마도 우리 교실에 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세워서 시간을 내보기로 했다.

코난군이 어릴 때는 아빠 엄마 모두 참석해서 생일축하를 해주었는데, 둘리양은 둘째로 태어나서 아빠는 오빠 뒷바라지로 보내야 하니, 엄마만이라도 시간을 짜내어 봐야한다.

 

지난 번 둘리양 선생님과 면담에서, 둘리양이 미리 언질을 해주면 성질을 부리지 않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는 점에 주목을 했었다.

그리고 그 실천 방안으로 선생님이 한 며칠간 둘리양에게 미리 무언가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고 그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의논하고, 만약에 변동사항이 있으면 미리 알게 하는 등의 노력을 해봤더니 확실한 효과가 있더라고 했다.

예를 들면, 해도 없는 흐린 날씨에 썬글래스를 쓰고 바깥놀이에 나가고 싶다고 해서, 그러기로 허락을 했는데, 그걸 들은 반 아이들 모두가 썬글래스를 쓰겠다고 조르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아이들에게 다 허락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 둘리양에게 사정이 이러해서 너도 썬글래스를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러면 속상하겠지? 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단다.

이 모든 대화는 아침 등원 시간에 있었고, 오후 바깥 놀이 시간이 다가오자 둘리양이 먼저 선생님에게 다가와서 나 썬글래스 안써도 괜찮아요! 하고 유쾌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다같이 모여 앉은 시간에 노래도 함께 부르고 활발하게 발표도 하는 등, 최상의 기분 상태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뭐든지 미리미리 자기 마음속으로 어떤 일에 관해 계획을 세워두는데, 그게 갑작스럽게 변경이 되는 걸 무지하게 기분나빠 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주 일찍 그 변경 사항을 알게 되면, 자기 마음의 준비를 다시 세울 수 있고, 그러면 그 변동이 더이상 "내가 따라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 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고 준비하던 상황" 이 되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것이다.

참…

어렵다…

ㅎㅎㅎ

그런데 이게 아무래도 나를 닮아서 이런 것 같다 🙂

가만히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기분 나쁜 때는, 내가 하려던 일을 못하게 될 때, 내가 계획했던 것과일이 다르게 흘러갈 때이다.

날마다 다 해치울 수도 없는 일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밑줄치고 별표시 해가며 확인하는 것도 그렇고…

이게 다~~~~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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