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방학 생활 계획표에는 매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엄마와 재미난 시간 순서가 들어있다.
올해 여름 방학에 남편이 여름 학기 강의가 있고, 또 여름 연구 활동까지 잡혀있어서 7월 말까지 거의 매일 출근을 해야 하니 아무래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나의 몫이다.
하지만 매일 무엇을 하고 놀아줄지를 미리 정할 수 없으니, [재미난 시간] 이라고 이름만 붙여두고, 그날그날의 재미난 놀이는 그때그때 정하기로 했다.
가끔은 아이들이 "엄마, 오늘 재미난 시간에는 이걸 해요!" 하고 청하기도 하고, 티비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 생각나는 활동이 있으면 내일 이걸 해볼까? 하고 함께 의논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엄마가 내리는 것으로 규칙을 정해두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두 시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녀야 하거나 재미도 없는 숨바꼭질 같은것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리 정한 것이다.
간편하지만 돈이 많이 들었던 활동으로는 극장에 가서 영화보기가 있었고 (팝콘 값이 영화 값보다 더 들었음), 실속있고 좋았던 것으로는 코난군에게 라면 끓이는 법 가르쳐주기가 있었다 🙂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 것도 재미난 시간의 일환이었는데 그 때 빌려온 책 중에 하나가 비누 만들기였다.
나는 폐식용유를 이용해서 직접 비누를 만드는 법에 대한 책인 줄 알았는데 막상 펼쳐보니 그건 아니고 (양잿물을 다루어야 하니 어린이들과 직접 해보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다) 비누 베이스를녹여서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으로 굳혀내는 과정을 소개한 책이었다.
아마존 닷 컴에서 검색해보니 여러 가지 색을 내는 안료와 다양한 향을 가진 오일을 따로 팔기도 하는데, 일단 한 번 만들어보고 아이들이 흥미를 보이면 본격적으로 다양한 재료를 구입하기로 하고, 간단한 킷트를 구입했다.
20달러 짜리 킷트에는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 안료와 전형적인 비누향이 나는 오일, 투명한 것과불투명한 비누 베이스, 기본 도형의 틀 정도가 들어있었다.
코난군에게 설명서를 읽으라고 시키고 만들기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를 두 아이들에게 찾아오라고시키니 아이들은 즐겁고 나는 편했다.
가장 먼저 만든 것은 쿠키 틀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보라색 비누였다.
킷트에 들어있는 틀은 네모, 동그라미 등 너무 단순한 모양이라, 집에 있는 쿠키틀을 사용한 것이다.
내일은 (이젠 오늘이구만) 코난군의 친구 젯의 가족을 초대했는데, 젯의 부모님에게 이 비누를 선물하자고 코난군이 제안했다.
함께 축구팀에서 경기를 하고 연습을 하는 동안 라이드를 해주기도 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젯의 부모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부부도 그 부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갚으려고 식사 초대를 한 것이니, 이런 작은 선물을 하는 것이 더욱 우리 마음의 표현이 될 것 같아서 포장을 하고 카드를 쓰는 것을 도와주었다.
다음으로 만든 것은 하드 모양 비누이다.
한 입 베어먹은 하드 모양을 만들어서 속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겉에는 초코렛이 발린 모양을 보여주도록 했는데, 빨강 파랑 노랑을 모두 섞어서 초코렛의 갈색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두 아이들이 번갈아 안료를 짜넣으면서 섞어보고 무슨 색을 더 넣어야 할지 의논하는 과정이 곧 놀이였다.
이 디자인은 책이나 인터넷에서 찾은 것이 아니고 순수하게 아이들과 내가 생각해내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우리집 찬장에서 물고기 모양 얼음틀을 찾아낸 코난군이 물고기 모양 비누를 만들다가 마침내 이런 생각을 해냈다.
역대 키웠던 베타피쉬들을 기리는 작품이다.
우리집 뒷마당 어드메쯤 묻혀있다가 지금쯤은 미생물에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갔을 링고, 스탬피, 플래쉬…
각각의 색깔을 기억했던 코난군이 안료를 섞었고, 나는 파란 투명 비누와 초록 투명 비누 베이스로물과 물풀을 만들어주었다.
내일은 젯의 가족이 놀러올 예정이니 엄마와 재미난 시간은 생략할 예정이다.
그 다음 날은 오랜만에 또 도서관엘 가봐야겠다.
날마다 재미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궁리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2017년 6월 10일
위의 사진도 코난군이 내 아이폰으로 찍어서 내 이메일 어카운트로 보내준 것을 컴퓨터에서 편집해 올린 것이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하나씩 가르치는 것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