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인형 하나 장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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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우리 학교 본부에서 모든 교수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료를 구입할 수 있는 기금을 지원한다는 안내였다. 천 달러 한도 내에서, 강의 자료로 사용할 물건 중에서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는 것이라면, 심사를 해서 구입하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종류의 기금이 그러하듯, “제게 이만큼의 돈을 주세요, 그러면 이러저러한데에 쓰겠습니다” 하고 자세하게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어떨 때는 그게 귀찮거나 치사하게 여겨져서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다. 내가 개인적으로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강의 자료로 필요한 것인데 당연하게 사주지는 못할 망정, 몇 십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신청하고, 또 심사를 통과해서 기금을 받아 그 자료를 구입하면 그걸 또 어떻게 사용했고 그래서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보고서까지 써내야 한다. 앓느니 죽지, 그 자료 없다고 강의가 안되는 것도 아니고… 하면서 이메일을 지워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 날 따라 연간보고서 작성이 일찍 끝나기도 했고, 아이들이 다 자라서 내가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남편도 방학중이라 집에 있으니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맞아줄 사람도 있겠다, 여러가지 형편이 받쳐주어서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단 두 시간 만에 기금 신청서를 대충 작성해서 제출하고 퇴근을 했다. 그리고 한 달 쯤 후에 내 신청서가 심사를 통과해서 신청한 자료를 사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물건을 주문하고 영수증을 받아서 서식에 맞추어 제출하는 등의 일은 학과 비서가 다 해주어서 나는 그냥 한 달여를 더 기다리기만 했다. 행정 처리는 뭐가 그리 복잡한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고 한 시점에서 한 달이 더 지나서야 물건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무려 천 달러 짜리 인형이다! 한국 돈으로 백만원도 더 하는 비싼 인형이다 🙂

흔들린 아기 증후군 인형

이 인형은 건전지로 작동하는데, 평균 신생아의 크기와 무게를 갖추고 있으며 전원을 켜면 울음소리를 낸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아기를 안고 흔들어주어도 절대 그치지 않는데, 난폭한 부모로 빙의해서 아이를 거칠게 흔들면 투명한 머릿속에 뇌가 반짝거리다가 더 심해지면 마침내 울음소리가 그친다. 뇌의 각 부분에는 신체의 어떤 기능을 컨트롤하는지를 표시해 두었기 때문에, 지금 이 거친 행동이 아이의 사고능력, 시각, 청각, 언어 등의 발달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의 울음이 그쳤다는 것은, 아이가 의식을 잃었다는 의미이다.

흔들린 아기 증후군 (Shaken Baby Syndrome)은 만 2세 미만의 영아 학대에서 발생하는 뇌손상인데, 우는 아이를 달랜답시고 심하게 흔들어대거나 아이를 던지거나 하는 동안에 뇌가 단단한 두개골에 부딪혀서 그 충격으로 사망까지 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간혹 한국 블로그에서는 이 증후군을 너무 과장되게 설명하면서, 신생아는 차를 태워도 안되고 머리부분을 절대로 흔들리지 않게 보호해야 한다고 쓴 것을 보기도 하는데, 미국 교과서에서는 결코 실수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정의하고 있다. 즉, 정말로 나쁜 마음을 먹고 아이를 심하게 흔들지 않으면 뇌손상까지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 강의자료 (=비싼 인형) 를 사용해서 유아교육 전공 학생들이 직접 아이를 흔들어서 달래는 동안에, 어느 정도로 난폭하게 흔들어야 뇌손상이 일어나는지를 감각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심약한 학생들은 너무 겁먹지 않고 신생아를 안아줄 수 있고, 덜렁대는 학생들은 아기를 안을 때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으니, 큰 영향을 주는 강의자료라고 신청서에 써냈고, 심사를 통과해서 이 인형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걸로 내년 여름에 연간보고서에 쓸 업적 한 개를 더 추가했으니 기쁘다.

2021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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