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방학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비대면 비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하기 때문에 강의준비와 과제채점 등의 일을 유연성있게 하고 있다. 반면에 남편은 대면으로 강의를 하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아침 도시락을 들고 로아녹으로 출근한다. 강의가 없는 금요일에는 둘리양과 친구들 두 명을 모아놓고 로봇 코딩을 가르치기로 했다. 둘리양과 늘 마음이 잘 맞고 엄마들끼리도 친한 주주와, 또다른 친구 메이브가 합세했다. 메이브의 엄마는 나와 같은 학교의 경영학과 교수이고, 메이브의 오빠는 코난군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녀서 가족끼리 서로 잘 아는 사이이다. 하지만 그동안 친하게 지낼 기회는 없었는데 메이브가 주주와 친하게 지내고 여름방학마다 서로의 집에서 번갈아가며 함께 공부를 한다길래 그러면 코딩 공부도 같이 하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이 코딩 수업을 위해서 남편은 몇 주일 전부터 직접 로봇을 만들어보고 코딩을 확인하는 등 준비를 많이 했다. 코난군도 친구 조나스와 함께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코딩을 아빠로부터 배우기로 했다. 소녀들의 코딩은 일주일에 한 번 수업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며 화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수업을 한 번 더 하기로 해서, 일주일에 화, 금요일은 소녀반, 목요일은 소년반 코딩을 가르치기로 했다. 물론 레슨비 같은 것은 전혀 받지 않는다. 동네 복지관 같은 곳에서 여름 방학을 맞아 코딩 캠프 같은 것을 많이 하는데, 그런 곳에서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로봇 한 대를 함께 만들고 프로그래밍을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코딩의 원리를 배우기가 어렵다. 그래서 남편이 우리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로 했는데 친한 친구가 함께 배우면 동기부여도 되고 레슨 전후로 친구와 놀 수 있어서 더욱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코딩을 배울 수 있다. 친구들은 공짜로 양질의 수업을 받고 우리집에서 어울려 놀 수도 있으니 꿩먹고 알먹고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친구의 부모들도 그걸 잘 알아서 남편에게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주주 엄마와 메이브의 엄마는 입을 모아, 우리 동네에서 최고의 아빠가 바로 둘리 아범이라며 칭송했다. ㅎㅎㅎ 두 사람 다 중국에서 이민온 사람들이라 교육열 높기로 소문난 중국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그 사람들 보다도 둘리아범이 훨씬 더 아이들 교육에 적극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소위 타이거맘 이라고 하는 극성 부모들은 많은 돈을 써서 자녀에게 비싼 과외를 여러 가지 시키는 것으로 자신이 좋은 교육을 베풀고 있다고 여기는데 반해, 코난둘리 아범은 자신이 늘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마다하지 않고, 자기가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직접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남편의 전공은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전혀 상관이 없는 물리학박사이지만, 자기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아서 늘 코딩 공부를 하더니 이제는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다. 테니스나 클래식 음악, 수학, 등도 비슷한 방식이다. 기계적으로 학원에 보내거나 공부하라며 책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연습하도록 이끌고, 막히는 부분은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틈날 때마다 함께 토론한다. 테니스 공을 칠 때 공을 끝까지 쳐다보는 훈련을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저녁밥을 먹으면서 코난군과 이야기 한다거나, 둘리양이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를 사물을 이용해서 원리를 설명해준다든지 하는 것이다.
아빠가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니, 비싼 과외비를 들이지 않아도 되어서 금전적 이익이 크고,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자주 대화를 나누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너는 어떤 테니스 코치에게 배웠길래 그리 테니스를 잘 치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아빠한테 배웠어’ 라고 말하며 으쓱한 기분을 누릴 수도 있다. 메이브의 오빠 루카스는 나름 수학을 잘하는 (한 때 수학신동이라는 말을 들었음) 편인데, 번번이 수학 시험을 치고나면 코난군에게 몇 점을 받았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 때 마다 코난군이 늘 자기보다 높은 성적을 받는 것에 대해 경쟁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 역시 아빠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코난군에게 수학 공부를 시킨 덕분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엄마일까? ㅎㅎㅎ 그런 남편 덕을 톡톡히 보는 사람이다. 아이들 공부와 운동은 남편이 알아서 잘 가르치니, 나는 그저 밥이나 차려주고 잘한다 잘한다 응원이나 해주면 된다. 하지만 이런 내가 부끄럽다거나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엄마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남편이 아이들을 밀어붙이고 도전하도록 하는 편이라면, 나는 허용적으로 받아주는 너그러운 성향이어서 결국 우리 두 사람의 성향을 합하면 아이들에게 균형잡힌 –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또한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가 되지 않도록 하는 – 가정교육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학이라 아이들이 집에서 밥을 먹게 되고 나도 여유 시간이 많으니, 해달라는 음식은 다 만들어준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세상 모든 음식의 조리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무엇이든 다 요리할 수가 있다. 계란 노른자와 생크림을 섞어서 오븐에 찐 다음 설탕을 녹여 부어 만드는 크림브륄레는 디즈니 크루즈 여행을 가서 처음 먹어본 디저트인데, 둘리양이 먹고 싶다고 지난 봄부터 말했던 것을 마침내 여름방학이 되어서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코난군도 한 입 먹어보더니 ‘이건 디즈니 크루즈에서 먹었던 그 음식이다’ 라고 금새 알아차렸다.
참, 여담이지만 메이브네 가족도 우리와 같은 디즈니 크루즈 여행을 가기로 예약했다. 다음 글에서 그 이야기를 자세히 써보려고 한다.
어느날 우연히 매운 음식이 먹고 싶어서 불닭볶음면을 만드려고 하는데 그 이름에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볶음”면이니까 후라이팬에서 볶으면 어떨까? 계란 후라이 두어개를 할 때 쓰는 작은 후라이팬에 물을 반쯤 채우고 면을 삶으니 적은 양의 물에도 면이 잘 익고 또 수증기로 증발이 되어서 번거롭게 면을 삶고 남은 물을 따라 버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짜장라면도 조리를 해봤는데 아주 간편하고 맛은 더 좋았다. 냄비보다 후라이팬이 뚜껑이 없고 얕아서 설거지도 더 편했다. 우연히 터득한 좋은 조리법이었다.
지난 목요일은 둘리양의 마지막 피아노 레슨이 있었다. 이번 한 주간을 쉬고난 다음에는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다른 장소에서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이 이야기도 다음 글에서 자세하게 쓰려고 한다) 둘리양보다 한 타임 먼저 레슨을 받는 둘리양의 친구 콜비는 레슨을 마치면 항상 엄마와 함께 이 카페에 가서 저녁을 사먹는다고 했다. 둘리양이 자기도 그 카페에서 음식을 사먹고 싶다—–라고 말할 리가 없다 둘리양의 성격상… ㅎㅎㅎ “우리는 언제 카페에 가나요?” 라고 끊임없이 묻기만 했다. (그냥 속시원하게 나도 거기 가서 사먹고 싶다고 말하면 될 것을, 이 아이는 늘 이런 식이다) 마침내 마지막 피아노 레슨을 받던 날, 코난군과 코난아범을 위한 저녁상을 차려놓고 나와서 레슨을 마친 다음에 카페에 갔다. 숩과 샌드위치 셋트 메뉴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맛보다도 엄마와 단둘이 카페에 앉아 있는 시간이 즐거웠고, 예쁘게 만들어 담은 음식을 구경하는 것이 즐거웠지 않았나 싶다.
2022년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