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4

이웃 돕기 품앗이, 밀 트레인, 음식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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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남편은 테니스공을 자동으로 쏘아주는 기계를 한 대 마련했다. 20년이 넘게 사용해오던 기계가 있지만, 코난군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다보니 보다 다양한 기능이 있는 기계가 필요해져서 중고로 마련한 것이다. 이번에 장만한 기계는 공을 다양한 방향이나 회전 속도로 쏘아주어서 더 좋은 연습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손수레에 기계와 공을 싣고 우리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 고등학교 테니스코트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에서 어떤 아저씨를 만났다. 이 아저씨는 우리 킵스팜 커뮤니티에 살고 있고,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남매를 키우는지라 아이들 학교 버스 정거장에서 자주 만나기도 한다.

아저씨의 아들은 (코난군보다 두 살 어리다) 유전질병을 가지고 태어나서 뼈가 잘 부러지거나 손상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조금씩 걸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병도 함께 진행되어 지금은 휠체어로만 이동할 수 있다. (편의상 이 소년의 이름을 데니라고 하자) 하지만 데니는 무척 활동적이고 활발한 성격이어서 휠체어를 타면서도 여러 가지 운동을 열심히 한다. 예전에는 휠체어 농구를 열심히 했었는데 얼마전 부터는 휠체어 테니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휠체어 농구 경기 장면
휠체어 테니스 경기 장면

데니의 아빠도 예전에 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적이 있어서 아들의 모든 운동에 적극 응원과 지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비슷한 또래의 부자가 테니스 코트에 멋있어보이는 기계를 들고 나와서 공을 치는 것을 보고 말을 걸며 기계에 관해 문의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어느날은 산책을 하다가 우리집 차고 앞에서 기계를 손보고 있던 남편과 그 옆에서 있던 나에게 다가와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데니에게 테니스 공 쏴주는 기계를 사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 동네 주민들이 가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식이 하나 올라왔다. 데니가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어 학년 마지막 날에 결석을 했고, 일주일 쯤 지난 오는 주말에 퇴원을 하니, 데니를 위한 환영 이벤트를 준비하자는 제안이었다. 아줌마 몇 명은 풍선과 분필로 드라이브웨이에 데니를 응원하는 문구를 장식하겠다고 했고, 또 어떤 아줌마들은 병수발 하느라 힘들 데니의 엄마를 돕기위해 밀 트레인을 하자고 했다. 밀 트레인? 그게 뭘까? 궁금했지만 암튼 음식으로 이웃을 돕는 일이라면 방학이라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 나도 참가하기로 했다.

밀 트레인 화면의 스크린 캡쳐

아줌마 한 명이 밀 트레인 페이지를 열었다며 링크를 보내주었는데, 팟럭 파티나 피크닉을 준비할 때 이용하는 온라인 페이지와 비슷한 구성이었다. 누가 언제 무엇을 준비할 지를 싸인업해서 모든 참가자들이 중복되거나 빠지는 일 없이 준비할 수 있어서 편리한데, 밀 트레인 이라는 페이지도 이름과 구성이 조금 다를 뿐 비슷한 형태의 플랫폼이었다. 아~ 이런 거구나! 하고 얼른 싸인업 했다. 기차처럼 줄줄이 누가 이 가족에게 음식을 제공할지 기록된다. 음식을 가져다줄 곳의 주소와, 어른 두 명 아이 두명이 먹을 분량, 저녁 5시 30분까지 배달해주면 좋겠고, 이 가족이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나 먹을 수 없는 음식 등의 사항도 적어놓았다. 데니는 그 나이 활발한 남자아이들처럼 무엇이든 잘 먹고 못먹는 음식은 없다고 했다. 이 가족을 돕고 싶지만 요리를 할 시간이 없거나 솜씨가 없는 사람들은 그럽헙 상품권을 온라인으로 구매해서 선물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럽헙은 한국의 배민이나 그런 앱처럼,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배달시킬 수 있다.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음식 배달이 한국에서처럼 쉽지 않다. 음식점에 가서 사먹는 것도, 세금과 팁이 별도로 부과되어서 무척 많은 돈이 든다. 한국에서라면 가족이 수술을 해서 집에서 음식을 해먹을 경황이 없을 경우 여러 가지 음식을 배달시키거나 가까운 분식집에 가서 사먹는 것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우리 동네는 그렇지 못하다. 대도시가 아닌 미국의 대부분 마을이 비슷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웃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음식을 해다주는 일이 흔하다. 주로 같은 교회를 다니거나 같은 직장 사람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음식을 해다주거나 필요한 물건과 식재료를 대신 사다주는 것으로 돕고 산다.

밀 트레인의 내 차례

나는 평소에 자신있게 만드는 튀김만두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 끼 식사로 만두만 먹으면 느끼하거나 지루할 것 같아서, 또다른 대중적인 한국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베이컨과 김치를 달달하고 짭조름하게 볶다가 밥을 넣고 만든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요즘 김치가 뭔지 모르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베이컨이나 볶음밥은 그 어떤 미국촌놈이라도 좋아하거나 먹어본 적이 있는 익숙한 음식이고, 최근에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덕분에 프로바이오틱 음식이라며 김치도 널리 알려졌다. 내가 만든 김치는 우리 아이들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이 맵지 않고 젓갈도 덜 들어가서 미국인들이 먹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게다가 밥솥에 있는 밥을 김치와 베이컨과 함께 섞어서 볶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요리라서 튀김만두를 만들고도 추가로 요리하기에 힘들지 않다.

덮어놓은 포장 아래로 겨우 찍은 만두 사진 🙂

음식을 배달할 데니의 집은 우리집에서 가까운 거리이긴 하지만 집 네 채를 거쳐 가야 하는 길이 족히 100미터는 되고, 또 오르막길이어서 음식을 들고 걸어가면 힘들 것 같았다. 이 날의 날씨도 무척 더워서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음식이 흔들려서 쏟아지지 않도록 잘 싸서 가지고 갔다. 데니의 집은 사실상 고등학교 테니스 코트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뒷마당에서 약간의 풀숲을 헤치고 테니스 코트까지 단 10초만에 걸어갈 수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풀숲을 헤쳐 갈 수는 없으니 지척에 있는 코트를 가기 위해 차를 몰고 빙 돌아서 가야 한다. 나는 휠체어에 의지할 일은 없었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유모차에 태우고 출근을 하면, 고작 눈앞의 계단 대여섯 칸을 오를 수 없어서 큰 건물을 반바퀴 돌아서 램프가 있는 출입구로 들어가야 했던 경험이 있다. 그 불편하고 억울했던 심정이란…

데니는 두어달 후에 또다른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동네 아줌마들은 그 때도 또 밀 트레인을 준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웃의 응원에 힘입어 데니와 가족들이 모두 힘을 내길 바란다.

2022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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