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8

새로운 오피스에서 맞이한 새 학년의 첫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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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로 들어가는 문 옆에는 내 명패와 이번 학기 스케줄이 붙어있다.

래드포드 대학교에 임용되고 첫 2년 동안은 가장 막내 교수라서 연구실로 창문 조차 없는 작은 방을 사용했다. 그 이후 15년 동안은 큰 창문이 두 개나 있어서 밝고 넓은 방으로 옮겨서 지냈는데, 내 방으로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은 큰 창문이 부럽다거나 창 밖의 전망이 멋지다는 칭찬을 했다. 그런데 같은 방을 15년 씩이나 사용하자니 조금은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부채꼴 모양의 방은 보기에도, 실제로도, 넓기는 했지만 직사각형의 책상과 책꽂이를 배치하기에 애매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학과 사무실로 들어오면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라서 방문을 열어두면 시끄럽거나 불편하고, 방문을 닫으면 갇혀 있는 느낌이 드는 점도 불편했다.

그러던 차에 은퇴하거나 이직하는 교수가 생기면서 옆옆방이 비게 되었다. 이 방은 학과 사무실로 들어오면 오른쪽으로 꺾어서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방문을 열어놓아도 문앞에 사람이 다닐 일이 거의 없고, 무엇보다도 방이 정사각형 모양이다. 창문이 하나 밖에 없고 크기가 약간 작은 것이 단점인데, 그걸 감내하고도 남을 장점이 더 많아서 여름 방학 동안에 이사를 했다.

창문이 하나지만 바깥 풍경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창문은 한 개이지만 충분히 커서 햇빛이 들어오고 바깥 풍경 구경하는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창문 옆에 큰 벽이 있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이전 방에는 이 크기의 창문 두 개가 한 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어서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은 있지만 다소 산만한 느낌이기도 했었다.

이전 방에는 이 벽면이 창문 두 개로 꽉 찼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장면이 이렇다.

예전에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못하는 날이면 연구실로 데리고 와서 함께 지내야 해서 조금이라도 큰 방이 좋았지만,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내 연구실에 와서 하루 종일 지낼 일이 없으니, 방의 크기는 나혼자 쓰기에만 충분하면 된다. 게다가 문 밖이 한산해서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면 바깥 공간조차 내 공간인 것처럼 느껴져서 좁다는 느낌도 없다.

기역자 모양의 책상에서 왼쪽으로 돌면 이런 모습이다.

컴퓨터 모니터가 안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화면의 보안 유지도 되고, 책상 위의 잡다한 사무용품도 가려진다. 왼쪽으로 회전의자를 돌리면 기역자로 꺾인 책상이 연장되어 있어서 학생과 면담을 하거나 할 때 편리하다. 그 건너편에는 냉장고와 전자렌지를 두고 점심을 먹을 때 사용하고 있다. 코너에는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얻은 안마의자를 두었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짧은 낮잠을 자거나 책을 편안하게 읽을 때 사용한다.

동료들의 방을 보면 벽면에 한가득 그림을 걸어놓거나 포스터를 붙여서 장식을 해두었는데, 나는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벽이 좋다. 갱년기 증상인지 요즘들어 기억력이 흐려지거나 머릿속이 복잡하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경험을 자주 하는데, 이렇게 휑하고 깨끗한 벽면을 보면 내 머릿속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 월요일에는 교생실습 세미나 수업과 저녁 수업이 있어서 개강을 했고, 화수요일은 실습 지도나 강의 준비를 하는 날, 목요일과 금요일은 각기 수업이 있다. 이번 학년도 역시 신입생 모집이 저조해서 가르치는 과목의 학생 수가 매우 적다. 교수 입장에서는 가르치는 학생의 수가 적으니 강의도 알차게 하고, 학생과 일대일 면담을 할 기회가 많아지고, 채점도 빨리 끝나는 등 좋은 점이 많지만, 대학 본부에서는 학장과 학과장을 쥐어 짜고 있는 것 같다. 그 부담은 평교수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학생 모집에 힘쓰라는 지시를 받거나, 강의를 추가적으로 더 해야 할 일이 생긴다. 그것도 미리미리 정해지는 것이 아니어서, 이번 학기 시작 직전에 원래 가르치기로 했던 과목은 취소가 되고 (강의 준비를 많이 해두었건만… ㅠ.ㅠ), 개강 첫 날에 새로운 과목을 가르치라는 결정이 내려져서 어제와 오늘 부리나케 개강 준비를 하고 있다. 신임 교수 시절이라면 아예 불가능했을 일이지만, 이제 교수 생활 18년차라 그 정도 급한 불 끄기는 충분히 할 수 있다. 테뉴어 받고 정교수로 승진도 다 마쳐서, ‘완벽하게 준비 못하면 어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처지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또한,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의 손길이 덜 필요하니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2022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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