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10월의 시작, 서비스 개 미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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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월이다. 9월 한 달은 빠르다면 빨리, 느리다면 지루하게, 그렇게 지나갔다. 짬짬이 쉬는 시간은 많았지만, 블로그를 쓰기 위한 뭉터기 시간은 나지 않아서 – 최소한 두 시간 정도는 있어야 느긋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쓸 수 있다 – 거의 한 달 만에 블로그를 쓴다.

매주 목요일 오후 시간은 온라인으로 오피스 아워를 갖고 있어서 줌을 연결해놓고 일을 한다. 셀프 헤어컷이 마음에 들게 잘 되어서 줌으로 셀카를 찍어보았다. ㅎㅎㅎ 가을이 되면 나뭇잎이 여러 가지 색으로 변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원래 나뭇잎의 색상이라고 한다. 봄에서 여름 동안에는 엽록소가 강하게 작용해서 모든 나뭇잎이 녹색을 유지하다가 가을이 되면 엽록소가 기운을 잃고 원래의 색소가 발현되는 것이다. 어쩌면 폐경을 맞이한 지금의 나도 엽록소가 아닌 내 원래의 색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 들어 내게 피부 관리의 비법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고, 예뻐졌다는 말도 자주 듣기 때문이다 ㅋㅋㅋ 그러니까 내가 원래는 예쁜 인물이었는데 엽록소에 가려졌던 거라는… ㅋㅋㅋ

서비스 개 미미

골든 리트리버 종인 미미는 내 수업을 듣는 뇌성마비 학생과 7년째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의 서비스 개들은 그렇게 하도록 훈련을 받아서, 보살펴야 할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미미는 주인에게 충실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소를 보내고 친근하게 행동한다. 안그래도 미모가 돋보이는데 사람에게 친하게 구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인을 바라보는 충성스러운 눈빛

얼마 전에는 로아녹 캠퍼스에서 물리치료를 가르치는 우리 학교 교수님이 래드포드 본교까지 와주셔서 뇌성마비 유아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특강을 해주셨다. 작년에도 오셨는데 올해에도 50분 운전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또 와주신 것이다. 한국 대학교에서는 이런 특강을 한 번 초빙하려면 수십만 원에 달하는 강의료를 드린다고 하는데, 미국 대학교 – 적어도 내가 경험한 학교들 – 는 그런 거 없이 완전 순수 자원봉사이다.

주인이 겉옷 벗는 것을 도와주는 미미

올해 특강에는 마침 미미의 주인이자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모델을 자원하기까지 해서 작년보다도 훨씬 더 유익한 강의가 되었다. 강의 내용 전부를 비디오로 녹화해서 온라인으로 가르치고 있는 대학원생들도 모두 시청하도록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특강을 해주신 교수님도 이 학생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고 추후에도 따로 더 만나서 같이 연구를 해보자는 의논을 나누기도 했다.

조끼 주머니에는 미미의 신분증도 들어있다. 언제나 주인 곁을 이렇게 지키는 미미
강의가 길어지면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늘어져서 잠을 잔다.

내가 준비하지 않은 수업이지만 학생들의 큰 호응을 얻는 일이 생기면 원님덕에 나발 분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어제 금요일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지 않고 인근 어린이 박물관에 견학을 갔다. 학생들은 지루한 강의실을 벗어나니 즐겁고, 입장료도 내지 않고 무료로 어린이 박물관 구경을 하니 좋고, 그래서 내게 고마워했다. 나역시 강의준비를 따로 할 필요없이 견학을 함께 즐겼으니 고맙다는 말을 들을 입장은 아니었다.

맨 오른쪽의 관장님이 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 동네 블랙스버그에서 작게 시작해서 크리스찬스버그 쇼핑몰 안에 크게 자리잡은 이 어린이 박물관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나 인턴사원을 늘 받고 있기 때문에 내 학생들이 견학을 온 김에 프로그램 소개를 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해서, 서로가 도움이 되는 윈-윈 상황이었다.

실물 트랙터가 전시되어 있고, 어린이 박물관답게 누구나 실제로 타볼 수 있다.
소방차도 실물을 전시해두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이런 어린이 박물관이 가까운 곳에 없어서 두 시간씩 운전을 해서 가곤 했는데, 이제는 다 커버려서 이 박물관에 아이들과 함께 올 일은 없다. 그래도 전공이 유아교육이라 학생들과 이런 활동을 누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

농장에서 생산되는 식품에 대해 배우는 곳
애팔래치아 산맥 지역에 대해 배우는 곳

아이들 어릴 때 생각을 하다보니, 지난 봄에 태어난 동료 교수네 아이가 생각났다. 작년에 처음으로 임용된 여교수 새라는 올해 초에 첫 아기를 낳았는데, 학과 회의 중에 출산을 미리 축하하는 베이비샤워를 했던 모양이다. 그 때 나는 금요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강의가 연속으로 잡혀 있어서 금요일에 열리는 학과 회의에 전혀 참석을 하지 못했다 (사실은 그래서 금요일 강의가 좋았다 ㅎㅎㅎ). 베이비 샤워에도 참석할 수 없으니, 틈틈이 뜨개질을 해서 아기 담요를 만들어 선물했다. 내가 두 아이를 낳을 때 마다 지금은 은퇴하신 교수님 한 분이 퀼트로 아기 이불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 좋았던 추억을 신참 후배 교수에게도 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 학교 상징 색상인 빨간색과 회색으로 학교 이름과 학과 이름을 새겼다. 글자 부분을 뜰 때는 한 코라도 틀리면 안되기 때문에 모눈종이에 미리 디자인을 해놓고 콧수를 일일이 세어가며 실 색상을 바꿔가며 떴다. 출산휴가와 여름 방학이 이어져서 선물을 받고도 감사 인사를 못해서 미안하다며 새라가 감사 카드를 뒤늦게 전해주고 아기 사진도 담요와 함께 찍어서 보내주었다.

에구… 요만한 아기를 키우면 예쁘기는 하지만 얼마나 일이 많을지…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그 모든 일을 엄마가 다 해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어린이 박물관 같은데도 데려가야 하고… 엄마의 스케줄이나 일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울거나 떼쓰거나 아프거나 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런 시절을 무사히 잘 보내고 이제는 고등학생과 초등 졸업반이 된 우리 아이들이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 🙂

2022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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