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수감사절 방학에도 어김없이 김장을 했다. 남편이 금요일 강의를 마치자마자 바로 디씨 근교 한국마트로 가면 우리집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강의를 마친 피곤한 상태이지만 왕복 일곱시간을 운전해서 배추 두 박스와 무 한 박스를 사왔다. 그 날 나는 아이들 아트 레슨 라이드와 코난군 생일 파티로 바빴다. 하지만 다음날인 토요일에 배추를 절이면서 바로 김장을 시작했다. 추수감사절 방학 일주일 동안에 김치를 나눠먹으려면 하루라도 먼저 김장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뿐만 아니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배추를 절이는 것은 차고 바깥에서 시작했지만 다음날 배추를 헹구는 일은 바깥에서 하기가 어려웠다. 밤사이 절인 배추가 얼까봐 김장봉지를 대야에 담아서 차고 안으로 옮겨두어야 할 정도였다. 세탁실 싱크에서 배추를 헹굴까 하다가 안방 샤워부스에 김장 비닐을 깔고 배추를 헹군 다음 걸쳐두니 손목이 아프도록 배추를 짜지 않아도 물기가 잘 빠졌다. 주교수님네서 얻어온 큰 비닐봉지가 있었는데 그 안에다 배추를 절이고, 샤워부스 안에 걸터 앉을 수 있는 턱이 있는데 거기에 그 비닐봉지를 깔아놓고 샤워기로 배추를 헹궈서 죽죽 걸쳐놓기만 하니 손목이 아프지 않고도 물기는 더 잘 빠졌다. 배추 두 박스에 스무포기 정도 되는 분량인데 샤워부스 턱에 쌓아놓기 알맞은 분량이었다. 날씨와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되니 앞으로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해야겠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버무릴 때도 작년에는 세탁실 바닥에 앉아서 했는데 (김치 냉장고 바로 옆이어서 위치선정한 것임), 이번에는 쿡탑 위에 후드를 켜놓고 버무렸더니 김치 양념 냄새가 바로 바깥으로 빠져서 실내 공기가 쾌적했다. 큰 대야에 절인 배추를 넘치지 않을 정도만 담아와서 그 대야에서 버무리고, 또 배추를 더 가지고 와서 버무리고, 그렇게 세 번을 했다. 그리고 큰 대야에 아직도 묻어있는 양념은 갓김치나 총각김치를 버무리니까 버려지는 양념도 없고 큰 대야 설거지도 편해졌다. 김장 경력 어언 십오년이 되어가니 일이 손에 익어서 좋다.
그렇게 김장을 일찌감치 일요일에 마치고, 내 추수감사절 방학이 시작되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남편과 아이들이 출근 등교를 해서 나혼자 오붓한 방학을 즐겼다. 월요일에 주교수님이 와서 김치를 나눠주고 사우나를 함께 했다. 화요일은 우리 학교 싱글 여교수 몇 명을 불러서 김치를 나누어 주었다. 한국에서라면 이집저집에서 김장 김치를 얻어먹을 기회가 많겠지만, 명왕성과도 같은 우리 동네에서 홈메이드 김장김치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이건 나혼자만 생각하고 비밀스럽게 즐기는 감정인데 (그런데 여기에 쓰는 것으로, 더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ㅎㅎㅎ), 김장 김치를 누구에게 나눠줄까…? 하고 생각하면서 한 명 한 명을 떠올려본다. 우리 부부와 정치적 성향이나 생활철학이 거의 일치하는 주교수님… 우리 아이들에게도 늘 친절하시지… 얼마전에 힘든 일이 있었던 우리 학교 이땡땡 선생… 힘내라고 김치 한 포기 나눠줘야지… 그런데 김땡땡, 당신은 아웃이야, 흥, 칫, 뿡! 이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나는 남편과는 달리, 평소에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도 가식적인 태도를 곧잘 유지한다. 남편은 좋고 싫은 것이 아주 분명해서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성격인데 반해, 나는 싫어하는 사람과도 안부인사를 주고받거나 표면적인 관계유지를 잘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럴 때 아주 분명하게 경계를 정해서 구분을 하는 것으로 정신건강을 유지한다.
내가 손수 만든 소중한 김치를 나눠줄 사람 목록에서 아주 상위에 위치한 사람이 주주 엄마이다. 한족이지만 연변지역에서 자란 덕분에 조선족 친구들로부터 김치와 다른 한국음식을 많이 얻어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치 맛을 잘 알고, 또 김치를 무척 좋아한다. 직접 만들어 먹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또 만만하게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어서 오아시스 마트에서 김치를 사다 먹는다. 내가 가끔 직접 만든 김치를 나눠주면 무척 고마워하며 잘 먹는다. 그런데 단지 주주 엄마가 김치를 좋아하기 때문에 김치를 나눠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메리카노 커피라면 주주 엄마는 에스프레소, 내가 순한맛이라면 주주 엄마는 매운맛 진라면이다 ㅎㅎㅎ 무슨 일이든 한 번 해야겠다 결심하면 미루지 않고 단칼에 해치우는 성격에다, 인심이 좋아서 무엇이든 넉넉하게 나눠주고 베푸는 성격이 나보다 더 심하다는 뜻이다. 주주와 둘리양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에게 가장 절친인데, 그 덕분에 둘리양은 주주 엄마한테서 무척 많은 대접을 받는다. 동물원이나 박물관 같은 곳에 데리고 가서 하루 종일 맛있는 것을 사먹이고 놀게 하는가 하면, 두 아이에게 똑같은 옷을 사입히고, 둘리양이 맛있게 먹었던 간식을 대용량으로 사다주기도 한다. 명절도 생일도 아닌 날에도, 먹어보니 맛있더라며 과일을 박스째 사다 주기도 한다. 그 보답으로 나도 주주가 좋아하는 튀김만두를 만들어 주거나, 김치를 나눠주지만, 언제나 그녀의 물량공세에 내가 지고만다.
나는 적당히 게으르고 편안하게 살지만, 무언가 기회가 오면 그걸 놓치지는 않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석박사 공부를 할 때 남보다 월등히 우수한 논문을 쓰려고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지도교수님이 ‘이번에 이런 논문 한 번 써볼래?’ 하고 권하면 사절하지 않았다. 잘되든 못되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시키는 일, 아니면 내 앞에 다가온 일은 다 했더니 학위도 받고 임용도 되고 승진도 했다. 즉, 일부러 먹이를 찾아 태평양을 헤매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미끼는 덥썩 물어버리는 성향이다. 주주엄마도 기회가 왔을 때 덥썩 물어서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이루어내는 점이 나와 비슷한데, 그 스케일은 남다르다.
김치를 나눠줄테니 잠시 들르라고 했더니 주주 엄마는 집에서 로스팅한 견과류를 한 봉지 들고 왔다. 바쁘지 않으면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라하니, 거절하지 않아서 크리스마스 테이블보를 깐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내가 이런 말 하면 아마 크레이지 라고 할거야” 하면서 전한 그녀의 근황을 쓰기 전에 먼저 그녀의 직업 변천사를 써야겠다.
원래 대학원까지 전공했던 문화인류학을 버리고, 돈벌이가 되는 실용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갓난쟁이 주주를 데리고 주경야독해서 간호사 자격증을 딴 것은 내가 주주 엄마를 알기 전이었다. 학비는 언니한테 빌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요양원 간호조무사 일을 하면서 간호대학을 마친 것이다. 그리고 주주와 둘리양이 절친이 되어 자주 왕래했던 지난 5년 동안 주주 엄마는 간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급여가 높은 야간이나 주말 근무를 하면서 널스 프랙티셔너 (Nurse Practitioner, NP) 공부를 했다. NP 라는 직업은 우리 나라에는 아직 없는 직종인데, 의료서비스가 열악한 미국에서는 피지션스 어시스턴트 (Physician’s Assistant, PA, 의료조무사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와 더불어 각광받는 일이다. 학비가 비싸고 수련도 오래 걸리는 의사 (Medical Doctor, MD) 를 대신해서 환자를 보고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는데, 각 주별 법에 따라 단독으로 자기 병원을 개원할 수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주에서는 의사와 협업만 할 수 있기도 하다. NP 직업만 가져도 간호사보다 월등히 많은 월급을 받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주주 엄마가 NP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나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주었다.
NP로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시작했는데, 이왕이면 다른 의료진들이 기피하고 그래서 급료가 훨씬 더 많은 주말 당직을 도맡아서 했다. 거기에 더해서 정신과 과장이 부탁해서 세부 진료 전공 자격증을 추가로 더 따기도 했다. 정신과 진료의 세부 전공은 잘 모르지만, 암튼 주주 엄마가 추가로 그 자격증을 더 취득한 덕분에 이 병원의 정신과는 더 많은 환자를 받을 수 있게 되어 과장 및 병원 임원들로부터 감사와 신뢰를 받게 된 것 같다.
주주 엄마의 성공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NP가 단독으로 병원을 열려면 MD의 감독을 받는다는 증명을 매년 갱신해야 하고, 그 댓가로 MD에게 해마다 9천달러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주주 엄마를 좋게 본 종합병원 정신과 과장은 아무런 댓가도 받지 않고 흔쾌히 매년 증명서에 싸인을 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려하지 않는 일을 도맡아 하고, 성실하고 환자로부터 평가도 좋게 받는 주주 엄마라서 그런 서포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신과 진료는 특별한 시설이 필요하지 않고 심지어 온라인으로 환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개원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았다. 복잡한 서류 작업만을 대행사에 맡기고 주주 엄마는 자기집 서재에 컴퓨터와 팩스기 정도만 갖추어 놓고 개원을 했다. 주말에는 종합병원에 나가서 진료를 보고, 주중에는 자기집에서 온라인으로 환자를 보는 일을 하고 있다. 대학타운인 우리 동네에는 대학을 오면서 고향집에서 부모님의 의료보험 아래 다니던 병원을 옮기려는 학생 환자가 많다. 게다가 혼자 독립해서 대학 공부를 하는 일이 스트레스가 되다 보니 정신과 의사를 만날 일도 자주 생긴다. 그런 상황을 파악한 후에 주주 엄마가 개원할 결심을 한 것이었다. 신중하게 정보를 모으고 결정을 내렸다면 지체없이 바로 시작하는 것이 주주 엄마의 스타일이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러하다 ㅎㅎㅎ)
지난 여름 방학에 개원을 하려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은 이미 성업중이어서 월 평균 2만 달러의 소득을 얻고 있다고 한다. 종합병원 NP 월급만 해도 교수 월급보다 훨씬 더 많을텐데 월 2만 달러를 추가로 벌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대단하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내게 전해준 크레이지한 뉴스는… 오는 1월 부터 2년간 간호학 박사 과정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단다. 환자들이 자기를 자꾸만 닥터왕 이라고 부르는데 박사 학위가 없으니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매번 부탁하기가 번거로웠다고 한다. 아니 그렇다고 박사과정 공부를 해? 하고 물으니, 박사 학위가 있으면 환자가 더 많이 올 수도 있고, 또 진료 일이 벅차게 여겨지는 날이 오면 대학에서 교수로 일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니, 이래저래 좋은 일이라 생각한 것이 지난 주였고 그 자리에서 온라인 학위과정이 가능한 학교를 알아보고 지원해서 이번 주에 입학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내년 5월에 주주 엄마와 같이 디즈니 크루즈를 타게 되면 그 흥미진진하고 대단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
2022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