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금요일, 학생들은 이미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방학을 시작했지만 교수들은 그 때 부터 채점과 성적 보고 일로 바쁜 시기이다. 바쁜 시기이지만 그래도 학기의 마지막 회의를 하는 날이니 각자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와서 나눠 먹는 팟럭 파티를 했다. 음식의 종류가 겹치거나 편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온라인 문서로 전채요리, 샐러드, 매인 요리, 후식, 음료 등의 카테고리를 나누고 누가 어떤 음식을 가져올지 미리 정했다. 나는 샐러드 카테고리 안에서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김치를 가지고 오겠다고 적어두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날김치는 그저 김치는 이렇게 생겼으니 구경해라 하는 뜻으로 조금 담아놓고, 실제로 동료들이 먹을 수 있도록 김치 볶음밥이나 부침개 같은 음식을 맵지 않게 미국음식과 비슷한 맛이 나도록 만들어 왔는데, 요즘은 한국의 김치가 잘 알려져 있어서 따로 시간을 더 들여 요리하지 않고 그냥 김장김치만 한 통 담아왔다.

내 입맛에도 제법 칼칼하게 매운 김치를 백인 흑인 동료들이 잘도 먹었다 🙂 한국 문화의 위상이 온세계에 알려지니 김치도 인기음식이 된 것이다. 작년에 추수감사절 방학 동안에 만든 김치를 학생들에게 아주 조금씩 맛보라고 나누어 주었었다. 그랬더니 올해에는 추수감사절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학생들이 먼저 올해에도 김치를 만들거냐고, 우리에게 또 나눠줄거냐고 물었다. 나눠주려면 이왕이면 올해에는 조금 더 많이 달라고 부탁도 했다. 너무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다는 것이다. 힘들게 만든 소중한 김치이지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역시 내게는 소중한 사람들이니 작년보다 조금 더 양을 늘여서 김치를 나눠주었다.

작년에 새로 구입한 김치 냉장고는 이전에 쓰던 것보다 용량이 조금 더 커서 배추 두 박스와 무 한 박스로 만든 김치가 다 들어가고도 자리가 넉넉하다. 배추 김치 한 통은 이미 나눠주고 먹고 해서 비었는데 남아있는 김치국물을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어떻게 활용할까 하다가 남아있던 무를 납작하게 썰어서 담궈두었다. 이틀을 상온에 두었다가 김치냉장고에 넣었는데 꺼내서 맛을 보니 동치미 처럼 시원한 무와 김치국물 맛이 일품이다. 무를 따로 소금에 절이지 않았기 때문에 짜지도 않아서 밥반찬이 아니라 무만 꺼내먹어도 맛이 좋았다.

다시 팟럭 음식으로 돌아가서, 기말 채점으로 바쁜 와중에도 다들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해왔다.





이 날은 동료 교수 두 명이 은퇴를 하는 날이기도 해서 즐겁지만 동시에 섭섭하기도 한 파티였다. 두 명 모두 나와는 친한 편이어서 나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아기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유모차에 태워 출근하면 내가 강의와 회의에 들어간 동안에 아기를 봐주던 레슬리와, 조지아 대학교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제니퍼가 교수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다. 레슬리는 아들과 딸이 각기 손주를 낳아서 그렇게 좋아하는 아기들을 실컷 보살펴 주기로 했고, 제니퍼는 주경야독으로 신학교를 졸업하더니 내년 1월 부터 켄터키주 어느 시골 마을 교회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교수로 일할 때도 동료와 학생들에게 끝없는 사랑과 헌신을 하더니 적성에 아주 잘 맞는 새로운 직업을 찾은 것 같다.


팟럭을 마친 다음에는 레슬리와 함께 하는 마지막 바나나그램 게임을 했다. 내 연구실이 있는 스위트 안에는 우리 학과 교수 열 명 정도가 연구실을 가지고 있는데 점심 시간이면 이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알파벳 타일로 단어를 만드는 바나나그램 게임을 하기도 한다. 레슬리는 어휘력이 풍부해서 섀런과 막상막하로 바나나그램의 우승자 자리를 차지하곤 했는데 이제 은퇴하면 이렇게 다같이 게임을 하던 시간을 그리워할 것 같다. 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서 우승은 자주 하지 못하지만 어휘력 공부가 되어서 즐겁게 참여하는 편이다. 레슬리가 없는 스위트는 그 큰 웃음소리가 없어서 적막할 것 같다.
2022년 1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