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나는 집을 떠나 학교 홍보 행사에 참석했다. 2박3일 이라고 하니 제법 긴 시간 같지만, 목요일 아침에 모두를 출근/등교시킨 후에 집을 떠났고 토요일 낮에 돌아왔으니 아이들이 나없이 지낸 것은 목요일 저녁과 금요일 하루종일 (그것도 학교 간 시간 동안은 어차피 엄마가 없으니, 아침 등교시간과 저녁 시간에만 엄마가 없었던 셈), 그리고 토요일 반나절이었다. 엄마가 없어도 아빠와 잘 지내고 있어서 다시 한 번 아이들이 많이 컸다는 것을 기쁘게 실감했다.
최근들어 우리 학교는 신입생 등록이 저조해서 학과의 지속 여부가 위태로울 지경이다. 그래서 학교 홍보를 할 기회가 있으면 열심히 참석하도록 권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무려 다섯 시간이나 운전해서 가면 대서양 연안의 도시인 버지니아 비치가 있는데 거기에서 고등학생들이 참석하는 큰 모임이 있어서 우리 학교를 홍보하는 부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호텔 숙박비와 식사, 차량유지비, 행사 등록비 등은 모두 학과에서 내주는 것이어서, 나는 시간과 노동력을 봉사하기만 하면 된다.
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으로 아동발달, 요리, 패션디자인 등의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모두 모이는 행사인데, 아동발달 과목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 학교 사범대를 홍보하는 것이 출장의 목적이었다. 우리 학교 말고도 대여섯군데 대학교에서 홍보 부스를 차렸는데, 우리 학교 부스는 쌍둥이칼 회사의 홍보 부스 옆에 자리잡게 되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쌍둥이칼의 신제품도 자세히 구경하고 또 다른 부스도 돌아보고 싶었지만, 나혼자 부스를 하루 종일 지켜야 해서 다른 곳 구경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수많은 고등학생들을 만나고, 우리 학교를 소개하고, 기념품을 나눠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혼자 머무는 호텔 객실은 바다로 향하고 있어서 아침에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를 구경할 수 있었고, 혼자서 조용히 실컷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다. 원래는 호텔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에 여름 학기 강의 준비를 하려고 계획했었지만, 다섯 시간 운전을 한 뒤라 너무 피곤해서 그냥 쉬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에서 주는 아침밥을 먹고나니 달리 더 할 일도 없고 해서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다섯 시간 운전 거리 중에서 네 시간을 달려오니 남편의 학교가 있는 로아녹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 날 남편의 학교는 STEM Day 스템 데이 라는 행사를 열어서 남편은 하루 종일 그 행사에 참석해야 했다. 아이들만 집에 두고 와도 되지만, 행사의 대상이 아동이어서 우리 아이들이 와서 참석하면 유익하기도 하고, 행사가 끝나면 아빠와 함께 로아녹의 올유캔잇 스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어서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하기로 했다. 둘리양의 동네 친구 매디도 함께 데리고 갔다. 아빠가 행사 진행으로 바쁜 동안에 아이들끼리 다니며 행사 구경을 하려면 친한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스템 데이는 지역사회의 아동과 청소년들을 초대해서 여러 가지 과학 실험과 장비를 보여주는 행사인데, 남편은 자기가 가르치는 실험실에서 몇 가지 장비를 시연하며 간단한 물리 작용을 설명해주었다. 다른 학과 실험실에서도 여러 가지 재미난 실험이 있었고 건물 바깥에도 갖가지 구경거리와 공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실험실 한 곳을 방문할 때마다 확인 도장을 받아가게 했는데, 남편의 실험실 확인 도장은 코난군과 둘리양이 한 시간씩 교대를 하면서 찍어주었다고 한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행사가 한창 진행중이어서 내가 남편과 아이들 사진을 찍어줄 수 있었다. 아빠의 실험을 지켜보고, 어린 아이들에게 도장을 찍어주는 코난군은 마치 이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처럼 성숙해 보였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코난군이 대학생이나 조교쯤 되는 줄 알았는지 무언가 질문을 하기도 했다.
아침 아홉시에 집을 떠나와서 오후 세 시까지 아빠의 오피스와 실험실을 오가며 긴 하루를 보낸 아이들은 엄마의 깜짝 등장을 반가워했다. 내가 도착하고 두 시간쯤 후에 행사가 끝났고 스시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온가족이 저녁을 먹었으니 집에 도착해서 식사 준비를 할 필요없이 바로 쉴 수 있어서 좋았다.
남편의 학교는 최근에 여러 동의 새 건물을 지었는데 남편이 속한 스템 빌딩도 아주 최신식으로 지은 새 건물이다. 강의실과 실험실의 가구와 장비도 최신식이고, 교수 연구실도 아주 깔끔하다. 하지만…
남편의 연구실은 남편의 라이프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다 ㅎㅎㅎ 반드시 필요한 물건 외에 장식을 위한 그 어떤 물건도 없다. 박스나 책장을 조금이나마 더 반듯하고 예쁘게 둘 수도 있을텐데,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모습이 역력하다. 창 밖의 풍경도 신록으로 예쁜데 그저 햇빛을 가리기 위해 블라인드를 다 내려서 가려두었다.
2023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