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삶은 깊은 물속에서 부지런히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의 노동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잠수는 커녕 수영도 능숙하지 않은 내가 해녀의 노동을 실제로 알 수는 없지만,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그렇지 않을까 짐작하는 것이다. 해녀는 공기 탱크와 마스크 같은 장비 없이 그저 숨을 참고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다가 필요할 때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밀린 숨을 쉰다. 1-2분간 밀린 숨을 쉬면서 호흡을 고르기 위해서 호오이~ 호오이~ 하고 휘파람을 분다고 한다. 그러면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빨리 배출하고 몸에 필요한 산소를 효율적으로 들이마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휘파람 소리를 숨비소리 라고 부른다.
내 정신의 호흡을 위해 일요일 아침 모처럼 숨비소리를 내어본다 ㅎㅎㅎ

최근 우리 학교 학생 등록이 저조해서 대학교 전체가 학생 모집, 예산 삭감, 등의 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 수도 줄어서 그동안은 남몰래 줄어든 업무를 좋아하고 있었다. 30명이 제출한 과제를 채점하는 것에 비해 대여섯명이 제출한 과제는 훨씬 적은 시간을 들이고도 꼼꼼한 코멘트를 달아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이 비밀스런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했으니…
원래는 한 학기에 가르치기로 한 과목 수보다 더 가르치게 되면 추가 수당을 받게 되어 있으나, 예산 부족 문제로 수당 없이 추가로 강의를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학과에서는 등록이 저조한 과목을 폐강하거나 다른 비슷한 과목과 통합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 학과는 주정부에서 발행하는 교사자격증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학생 수가 적어도 폐강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대신 추가로 다른 과목을 더 가르치라고 하는 것이다.
교수 생활 19년차. 어지간한 과목은 다 가르쳐봤고 학생을 다루는 법이라든가 학사 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쥐꼬리만한 수당을 받지 못해도 추가로 가르치는 일이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다…고 생각을 해서, 심지어 추추가로 한 과목을 더 가르치겠다고 자원을 했었다. 요즘 숨도 못쉬도록 바쁜 일정을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 하나? 하고 잠시 자문할 때도 있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적은 수의 학생이 수강하는 전공 과목 두 개는 여전히 학생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즐겁게 가르치고 있다. 다만, 그 중 한 과목은 온라인과 대면 강의 두 형태를 동시에 진행하는 하이브리드 과목이어서 온라인 학생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법을 늘 모색해야 하고, 카메라와 마이크 등의 장비가 문제를 일으키면 수업 진행이 곤란해지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아직 저학년 학생들이 수강하는 과목은 교사자격증을 위해서 모두가 수강해야 하는 필수과목이어서 학생 수가 제법 많다. 거기에 더해서 이 과목은 한 번에 50분씩 나누어 일주일에 세 번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두번 가르치는 고학년 과목에 비해 아주 번거롭다. 출석 체크도 세 배로 더 해야 하고, 강의 자료를 온라인상에 업로드 하는 것도 세 배, 저학년 학생들이다보니 지각하지 말아라, 결석하지 말아라, 수업 시간 중에 핸드폰으로 딴짓하지 말아라 하는 등의 생활지도까지 해야 하고, 학생 수가 많으니 각각의 사정이 있는 학생도 많아서, 오래도록 키우던 개가 죽어서 그 개를 묻어줄 사람이 자기밖에 없어서 수업에 빠진다는 학생에게 위로를 해야할지 그래도 수업이 중요하다는 훈계를 해야할지, 캠퍼스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넘어져 팔이 부러진 학생의 수술과 내 수업 시험이 겹치니 시험 일정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등등 내 머릿속을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수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실습 지도를 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나만의 준비와 실행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어서 신경써야 할 일이 무척 많다. 심지어 한 그룹은 아홉 명의 대학원생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가 현직 교사이자 우리 학교에서 서너시간 이상 떨어진 도시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오직 온라인으로만 실습 지도를 할 수 있다. 이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다른 그룹의 실습생들은 인근 학교에서 실습을 하고 있어서 비교적 지도가 쉽지만 그 중에 한 명은 세 시간 멀리 있는 도시에서 실습을 하고 있어서 역시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온라인 실습 지도를 하고 있다.
추가 강의로 바쁘지만 학생 모집을 위한 각종 행사에도 참여해야 하니, 강의가 비는 시간에 교내 행사 참석, 강의와 겹치면 강의를 취소하고서라도 참석하는 외부 행사, 재학생들을 위한 면담, 대학 본부에서 진행하는 각종 웍샵 참석 등의 일이 계속 있다. 그리고 명색이 교수이니 연구 활동역시 하는 척 시늉이라도 해야 해서 다른 도시에서 하는 학회 발표 참석, 그 출장을 위한 서류 작업, 그 서류 작업 중에 월급 도둑들이 제대로 제 때 하지 않는 일로 인한 신경쓰임… (주: 월급 도둑이란, 자기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주제에 철밥통을 끼고 앉아 월급만 따박따박 받아가는 무능력하고 게으른 직원을 말함)

아이들이 학교와 음악 레슨을 혼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알아서 찾아먹을 정도로 자란데다, 우리 학교로 출퇴근 거리가 가까워진 집에 살고, 남편이 집안일을 나누어 하고 있어서 그나마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니 애기 돌보기 일은 안해도 되지만 진로지도를 위한 일이나 학교의 여러 가지 행사를 챙겨주는 일이 늘어나서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일로 바쁘다.
예를 들면 코난군은 지난 주에 SAT (미국 수능시험)의 연습 버전인 PSAT 시험을 봤는데, 그 시험 응시료를 온라인으로 기한에 맞추어 지불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AP 수업 시험 응시 등록을 하고 응시료를 지불해야 했는데, 도저히 내 바쁜 일정 중에 안내문을 읽고 할 수가 없어서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AP란 Advanced Placement 의 약자인데, 고등학교 수업을 대학 수준의 높은 레벨로 듣고, 일정 정도 이상의 성적을 받으면 따로 시험을 봐서 나중에 대학에 갔을 때 같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도록 면제해주는 제도이다. 대학에 가서 다른 수업을 더 들을 시간을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 지원할 때 AP수업을 많이 들었다고 하면 입학 심사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테니스 클리닉과 아트 레슨은 여전히 라이드가 필요해서 남편과 내가 서로의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그 와중에 클리닉이 취소되거나 아트 선생님의 사정으로 레슨이 취소 또는 변경되기도 해서 그럴 때는 더욱 각별한 일정 확인이 필요하다. 갑상선 수술을 받을 아트 선생님에게 힘내시라고 카드와 작은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봄에 뽑은 어금니 자리에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것은 지난 주의 일이다. 크라운을 씌우는 일만 남았는데 내 의료보험 한도가 다 차서 그것은 새 보험 연도가 시작하는 내년 7월 이후에 시술받기로 했다. 이런 일상의 사소한 일은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한창 바쁠 때에는 두뇌가동에 부담을 주어서, 자칫하면 빠뜨리거나 착오를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가끔은 주말에도 학생자치기구의 자문 교수 역할로 회의나 행사에 참석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런 일요일이다. 아침 일찍 둘리양을 테니스 클리닉에 데려다주고,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은 음악이나 가벼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차 안에서 뜨개질을 하는 것이 나의 숨비소리이다. 오늘은 코난군의 오케스트라 연습이 없어서 대신에 테니스 대회에 나갔다. 그래서 가족 식사를 준비할 부담이 적은 덕분에 오랜만에 글쓰기로 숨비소리를 내보았다.
2023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