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종목에 따라 대회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시합이라는 뜻의 매치나 경주라는 뜻의 레이스 같은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수영과 육상 종목의 대회는 밋 (Meet) 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부른다. 블랙스버그 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했던 이 경기는 홈경기, 즉 홈 밋 이었다.
다른 학교에서 하는 어웨이 밋은 학교 버스를 타고 가야 하니 선발된 선수만 참가하고, 홈밋은 등록된 선수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아직 저학년인데다 육상을 처음 해보는 둘리양은 홈밋에만 두 번째 참가했다. 첫번 대회에는 아빠가 참관했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꼭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 날 일정이 빽빽하게 짜여져 있었지만 그 시간을 쪼개어서 갔었다.

육상 대회는 남여 각기 100, 110 미터 허들, 100, 200, 300, 400, 800, 1600미터 달리기, 100, 400, 800미터 이어 달리기 (계주), 높이뛰기, 멀리뛰기, 원반 던지기, 포환 던지기 종목을 포함한다. 그러니 선수의 숫자와 대회의 규모가 무척 크다. 자기 종목의 경기를 마쳤어도 다른 모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대회장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응원을 오는 가족들은 의자와 간식을 챙겨온다. 간이 매점에서 간식을 팔기도 하고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해놓기도 해서 마치 어릴 때 했던 운동회를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다.

토요일인 이 날은 저녁에 코난군의 프롬 파티가 있어서 주문받은 꽃장식을 열 개나 만들어야 하고, 우리 학교에서도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둘리양은 육상 대회에 엄마가 꼭 와서 봐주었으면 하는데다, 저녁에는 친구들을 불러서 슬립오버를 하고싶다고도 했다. 어찌저찌 해서 우리집에서 슬립오버는 안하게 되었지만 동네 친구 매디네 집에 가서 슬립오버를 했고, 그 이전에는 블랙스버그 중학교 드라마 클럽에서 하는 뮤지컬 공연을 둘리양과 함께 보고 오기도 했다. 무척 바쁜 하루였다.

둘리양은 100미터와 200미터 달리기에 출전했는데 다행히도 두 경기 사이에 시간차이가 커서 중간에 우리 학교 행사에도 참석하고 둘리양의 경기도 놓치지 않고 지켜볼 수 있었다.
오전 9시까지 둘리양을 경기장으로 데려다 주었는데, 걸어가도 10분이면 되는 거리지만 물병과 소지품을 들고 아침부터 걷다가 기운을 빼면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으니 내가 차로 데려다 주었다. 선수들은 9시까지 도착해야 하고 응원하는 가족들은 9시 30분 부터 입장할 수 있는데 둘리양의 경기는 10시 이후에 시작한다고 해서, 둘리양을 데려다주러 갈 때 차 안에서 꽃장식 만들 재료를 싣고 갔다. 한 시간 정도 차 안에서 기다리며 꽃장식을 몇 개 만들고, 만든 꽃이 시들면 안되니 차 트렁크 아이스박스에 잘 넣어두고 경기를 보러 들어갔다.

달리기 출발을 할 때 원하는 사람은 스타팅 블럭 이라고 하는 장치를 사용할 수 있는데 둘리양은 연습할 때부터 사용을 해본 모양으로 익숙하게 장치를 가져다가 고정시키고 있었다. 6번 레인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이 예뻤다.
나는 육상 경기를 직접 참관해본 적이 없어서 출발점과 도착점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고 어느 지점에서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남편이 나중에서야 해주는 말이, 도착점에서 촬영을 해야 경기를 잘 기록할 수 있다고 했다. 꽃장식 만들기 처럼 시행착오가 있어서 육상 경기 비디오 촬영도 내년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100미터 달리기가 끝나니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둘리양은 학교 팀 텐트에서 휴식을 하고, 나는 집에 들러서 만든 꽃장식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우리 학교로 출근을 했다. 200미터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 문자로 알려달라고 둘리양에게 말해두었다.

선수들은 학부모들이 자원해서 준비한 간식과 핏자를 먹으며 다른 경기를 응원하고 텐트 그늘 아래서 친한 아이들과 수다를 떨며 놀았다.

이 날 우리 학교 행사는 여름 방학 이후 가을 학기에 교생실습을 하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연수와 안내를 하는 것이었는데 수십 명이 모여서 받는 연수에는 참석하지 않고 가장 마지막 부분에 전공별로 나누어서 안내를 받는 시간에만 참석을 했다.
교생실습은 학생이라기 보다는 준교사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실습 스케줄이나 실습을 위한 사전 준비 같은 것을 안내해주었다.


학교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허겁지겁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둘리양에게서 문자가 왔다. 앞으로 두 종목 후에 200미터 경주가 시작된다고 했다. 먹으려던 밥을 도로 덮어두고 트랙으로 차를 몰고 나갔다.
200미터 경주를 뛰는 선수들이 트랙 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받고 있었다. 선수 이름과 종목과 트랙 번호를 확인하는 사람들은 모두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나는 간식을 기부한 적은 있었지만 실제 경기를 진행하는 자원봉사는 신청하지 않았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는데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였다. 만약에 내년에도 둘리양이 육상팀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그리고 홈밋과 어웨이밋을 모두 참가할 정도로 선발 선수가 된다면 그 때는 자원봉사도 고려해볼 생각이다.

자세히 살펴보고 배운 바, 모든 달리기 경기의 결승점은 한 곳으로 정해져 있었다. 각 선수의 기록을 측정하는 전자장치가 고정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그 결승점으로부터 100미터 떨어진 곳이 100미터 달리기 출발점이고, 200미터 떨어진 곳이 200미터 달리기의 출발점이 되는 식이었다. 트랙을 한바퀴 돌면 400미터가 되는 것 같았고, 800미터와 1600미터 경기는 트랙을 두 바퀴 또는 네 바퀴를 돌며 뛰는 것이었다. 트랙의 안쪽에는 멀리뛰기를 위한 모래밭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원반과 투포환 던지기는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암튼 아이들 덕분에 새로 배우고 알게 되는 것이 있어서 좋다.

학교별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자기 경기를 기다리면서 몸을 풀기도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유난히 까불거리며 말이 많은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자 아이들에게 공연히 싱거운 농담을 던지는 남자아이들도 보였다. 200미터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 트랙에서는 1600미터 달리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농담 따먹기를 하던 트랙 안쪽 아이들이 자기팀 선수가 다가오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응원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놀기도 하고 응원도 하고 경기에서 뛰기도 하며 아이들은 신나는 운동회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200미터 경기를 마치고도 둘리양은 다른 모든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경기장에 머물러야 해서 나만 집으로 돌아왔다. 경기가 끝나는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니, 일단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둘리양의 문자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번에는 차를 몰아서 귀가하지 않고 차를 중고등학교 주차장에서 우리집과 가장 가까운 쪽에 세워두고 걸어왔다. 산책로를 따라 걸어오니 주차한 곳에서 우리집까지 2분이 걸렸다.

다른 아이들은 그냥 출발하는 것을 선택했다.
집에 와서 아까 먹으려다 못먹은 점심을 챙겨 먹고 잠시 후에 둘리양이 경기가 끝났다며 데리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 다시 2분을 걸어가서 중고등학교 주차장에 세운 차를 몰고 100미터쯤 올라가니 육상 필드에서 걸어나오는 둘리양이 보였다.
둘리양을 태우고 이번에는 찻길로 차를 몰아 집으로 오니 아까 걸어서 갔던 것보다 시간이 1분 더 걸렸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집이 아이들 학교와 가까워서 둘리양 경기도 모두 보고, 내 일도 다 해낼 수 있었다.

프롬 파티 꽃장식을 다 만들어서 코난군에게 들려 보내고, 둘리양과 함께 이번에는 중학교 드라마 클럽의 뮤지컬을 보러 갔다. 둘리양이 육상팀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이번에도 무대 연출을 했었을 뮤지컬은 디즈니의 리틀 머메이드, 인어공주 였다. 주인공인 아리엘을 맡은 아이는 예전에 이웃집에 살던 아마리타 였다. 성악 레슨을 꾸준히 받았다고 하는데 타고난 목소리도 좋아서 실제로 디즈니 영화의 노래만큼이나 잘 불렀다.
집에 돌아와서 둘리양은 매디네 집으로 슬립오버하러 갔고, 코난군은 프롬이 끝나고 포스트 프롬 파티까지 갔다가 새벽 1시 30분쯤 귀가했다. 테이아 덕분에 내가 한밤중에 데리러 가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다음날인 일요일은 아침에 코난군은 아빠와 테니스 연습을 한 판 했고, 오후에는 로아녹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었다.
온가족이 오케스트라 공연을 감상하고 로아녹에서 저녁을 사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강을 해서 한가할 줄 알았지만 무척이나 바쁜 주말이었다.
2024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