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선생님께 재능기부

아트 선생님께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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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ㅎㅎㅎ

어느 평온한 방학 중 평일 아침, 아트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별 일 없으면 점심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남편은 출근하고 코난군은 친구 만나러 나가고, 둘리양은 혼자 집에서 있는 것을 좋아하니, 그러기로 했다.

아트 선생님이 손수 요리한 야채죽

얼마전에 한국에 다녀온 아트 선생님은 한국에서 자주 사먹었던 본죽 음식이 떠올라서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동전 육수로 맛을 내고 찹쌀을 불려 끓인 야채죽은 건강하고 담백한 맛이 좋았다.
에이치 마트에서 구입한 종갓집 김치도 알맞게 익어서 죽과 함께 먹으니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죽과 어울리는 김치반찬 3종 셋트
(종갓집 김치)

아트 선생님의 남편은 레스토랑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일을 하는데, 가끔 여분이 생긴다고 한다. 깨끗이 손질한 냉동 오징어가 생겨서 그것으로 부침개를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아트 선생님이 요리한 오징어 김치 부침개

이렇게 한 끼 식사를 잘 얻어 먹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또 남편이 가지고 온 여러가지 반조리 음식을 잔뜩 싸주셨다.
감자구이, 크림치즈 스프링롤, 홍합, 오징어, 서대, 매운맛 피클, 케익, 등등…
끝도 없이 냉동고에서 뭘 꺼내서 잔뜩 챙겨주었다.
어차피 다 못먹을 양이어서 내게 나눠준다고 하는데, 선생님이 주는 음식은 모두 반조리 상태여서 오븐이나 전자렌지에 데우면 되기 때문에 가족의 식사를 담당하는 내게는 무척이나 편리하고 고마운 아이템이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이 알고 보면 이렇게 반조리 상태로 납품 받아서 가볍게 조리해서 서빙하는 것이었다.

서대 까스(?)
글루텐 프리 제품

두 손 가득 받아온 음식을 냉동고에 넣기 전에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중에서 Alaskan Sole 의 맛이 가장 궁금하다는 코난군을 위해 생선까스를 튀김기에 튀겼다. 알래스카에서 잡은 솔 이라는 물고기는 한국말로 서대 라고 한다. 가자미나 광어와 비슷한 식감인데 뼈를 발라내고 포를 떠서 겉면에 곡물 가루를 입혀둔 것이다. 글루텐 프리 라고 써있었는데, 그래서 빵가루가 아닌 다른 여러 가지 곡물 가루를 입힌 것이다.

코난군이 맛있게 먹었다.

다음 날은 냉동 오징어와 홍합으로 해물 파스타를 만들어 먹였다. 버터에 양파와 마늘을 볶다가 해물을 넣고 토마토 소스와 함께 끓이다가 삶은 면을 넣어 만들었다. 토마토 소스 대신에 고춧가루 물을 넣으면 짬뽕이 될 것 같다.

익혀서 냉동한 홍합

아이들이 방학이어서 매일 집에서 밥을 먹는데 이렇게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이 많아서 아주 좋다.
특히나 미국 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 입맛에는 미국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과 같은 맛을 내는 아트 선생님이 주시는 음식이 매우 환영받고 있다.

해물 파스타

맛있는 음식을 얻어 먹으며 이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지난 학기 내내 아이들이 운동 팀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아트 레슨을 받지 못했고, 지금도 곧 시작할 테니스 캠프나 마칭밴드 캠프 때문에 (둘리양의 경우), 그리고 매일 테니스 연습과 매주말 토너먼트를 나가야 해서 (코난군) 아트 레슨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아마 방학이 끝나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게 다정하고 친절한 아트 선생님은 참 좋은 친구이다.

아트 선생님의 로고

얼마전에 디즈니 크루즈 셔츠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블로그를 보여주니 아트 선생님이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트 선생님이 신입생 모집을 위해 제작한 전단지에서 새를 닮은 로고를 본 것도 생각이 났다. 크리컷으로 로고 스티커를 제작하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래 아트 선생님은 한국에서 기업의 로고를 제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여서, 자신의 아트 스튜디오 로고도 직접 만들었다. 별 아래에서 날개짓을 하는 새 모양 같기도 하고, 별을 향해 손을 뻗은 사람의 모습 같기도 한 로고는 원래 파스텔 톤의 색상이 들어간 것이지만 내가 가진 기술과 장비로는 역부족이어서 색상을 빼고 아웃라인만 스티커로 만들었다.

스티커로 만든 로고

집에 남아 있던 스티커 용지를 사용해서 만든거라 재료비는 한 푼도 들지 않았는데, 아트 선생님은 무척 기뻐하며 내 선물을 받았다. 아트쇼에서 그림이나 소품을 구입하는 사람에게 작품을 담아주려고 준비한 종이 가방에 스티커를 붙여서 사용해야겠다고 했다.
맨 처음 도안을 그리는 것이 힘들지, 일단 크리컷 파일로 만들어 두기만 하면 스티커로 오려내는 것은 아주 쉽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일이니 더 필요하면 말하라고 해두었다.

종이 가방에 붙이니 로고 스티커가 더 근사해 보인다.

전직 그래픽 디자이너, 현직 아트 선생님에게 이런 것을 만들어 선물을 하는 것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

2024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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