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1

행복한 척(?)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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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 가서 기말 페이퍼 자료를 찾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앗차, 그런데 오늘 저녁에 꼭 해야하는 일거리를 학교 오피스에 두고 온 것이었다.
김박사는 실험이 늦게 끝난다고하니, 저녁밥 짓는 것보다 먼저 학교에 후딱 다녀오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차를 몰고 나갔다.
낮 시간에는 학교에 차를 가지고 갈 수가 없지만 저녁에는 주차장이 열리니까 잠바는 벗어두고 가벼운 티셔츠 차림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사범대 건물로 들어서다가 퇴근하시는 교수님 한 분을 만났다.

언제나 그러하듯, 웃으며 “하이” 했는데 선생님 말씀 “너 오늘 아주 많이 행복해 보인다. 지금 입고 있는 노란 셔츠와 너의 미소가 밝아보여서 좋구나”

띠용~~~~
제가요…
오늘 중간 시험 결과가 나왔는데 아주 마음에 안드는 점수를 받았구요…
그거 어떻게 기말 페이퍼 잘 써서 만회해 볼라구 도서관에서 열심히 자료를 찾았지만 아직 갈피를 잘 못잡겠구요…
아까 낮에 만난 학과장 선생님께서는 다다음 주 안으로 영어 시험 봐서 합격안하면 다음 학기 강사 자리 안준다고 그러셨구요…
제 논문 연구를 돕는 학부 학생들은 맨날 뭐가 잘 안된다고 불평불만이구요…
다음 주 부터는 지도 교수님 연구 보조 때문에 날마다 장거리 출장 다녀야 하구요…
우리집 냉장고엔 사흘째 먹고 있는 된장찌개가 들어 앉아 있구요…
오늘 저녁밥은 딱 한 사람 먹을 만큼 남아 있어서 새 밥을 지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구요…
내년에 우리 남편 어디 좋은 직장 잡을 수 있을런지 미국 경제가 걱정이구요…
제 자신은 졸업하면 뭐해먹고 살지 걱정되구요…
그리고 사실, 이 옷도 벌써 며칠째 입고 다니던 거예요… 빨래 자주 하기 싫어서요…

물론 위와 같이 말하지 않았다. “활짝 웃고 다니면 기분이 좀 더 나아질까 하고 일부러 웃는 거예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했더니 선생님 말씀, “글쎄, 나두 맨날 바쁘고 힘들지만, 아무 것도 아닌 일상적인 일에 감사하려고 노력하지.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거든.”

아아… 이렇게 우리는 행복한 척, 밝은 미소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래… 힘들다고 우거지상을 하고 다니면 뭐가 달라지겠누… 억지로라도 웃고 다니니까 선생님한테서 좋은 얘기, 힘내란 얘기도 듣고 좋지 뭘…

가을이라 그런지… 요며칠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런지… 그냥 가끔 우울하다…

  2002/10/25 08:42:30 에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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