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영 일기 2월 26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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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레 2월 28일은 우리 아빠 생신이다.
자칭 “생일없는 소년” 이신 우리 아빠…

내 어린 시절 기억의 한 자락…

아빠가 육상 근무를 하시던 시절엔 아빠 회사 동료분들이 우리집에 오셔서 생일상을 근사하게 받으셨던 적도 있는데…

넓다란 교잣상엔 하얀 모조지를 깔고, 그 당시엔 비싸고 귀했던 하얀 버터크림 등뿍 발린 케익과 엄마가 정성들여 만든 각종 음식들… 동생과 나는 손님들이 오시기 전에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손님들이 오시면 예의바르게 인사한 뒤 우리들 방으로 조용히 사라져 가는 것으로 시나리오 구성을 다 마치고… 아 맞다, 손님들이 주시는 돈은 몽땅 엄마에게 환원하는 것도 시나리오에 들어있었던 것 같다…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쨍그렁 하고 잔을 부딪히는 소리, 이야기소리 등등이 아련히 멀어지며 잠이 들었다가… 어수선한 분위기와 열린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아직은 코시린 바람 내음에 선잠을 깨어 나와보면 어느새 어른들은 마당으로 나가셨고 안방엔 빈 접시와 빈 양주잔과 빈 커피잔…

“얼른 들어가 도로 자라”는 말씀을 등 뒤로 들으며 다시 곤히 자는 동안에 아마도 엄마는 그 많은 빈 그릇 설겆이를 밤늦도록 하셨으리라… 아빠는 엄마에게 수고했단 말 한 마디를 입밖으로 하셨을까…? 아니면 경상도 사나이 방식으로 마음속으로만 하셨을까…?

아빠가 다시 외항선을 타시게 된 이후로, 우리들이 커서 외지로 나와 공부하게 된 이후로, 점점 아빠의 생신은 잊혀지게 되었다. 축하받을 사람이 없는 그 누군가의 생일이란 참 공허하기 때문이리라…

1944년 2월 28일의 나고야의 날씨는 오늘처럼 포근했을까? 아니면 꽃샘바람으로 추웠을까? 지금까지 예순 두 번의 생일날 중에서 가장 아빠의 기억에 남았던 건 몇 번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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