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윤석화가 이대를 중퇴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며 인터넷이 시끌버끌하다. 신정아를 필두로 심형래, 정덕희, 이창하, 등등 사회 저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가 하나둘씩 드러나던 터에, 윤석화의 거짓말은 아주 제대로 불난 곳에 휘발유를 끼얹고 있는 것 같다.
윤석화가 다니지도 않은 이화여대를 사칭했다고 사람들은 비난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또, 이화여대를 나온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이화여대가 무슨 명문대냐”
“이대 나온 여자들은 허영심이 많다”
“이대생은 서울대 연고대 남학생 아니면 데이트도 안한다”
… … …
윤석화를 비난할 때는 한갖 고졸출신이 명문대를 사칭했다고 침을 튀기는데, 그럴 때 보면 이화여대는 잘난 사람들이나 다니는 곳인 것 같다. 그러나 후자의 비판가들에게 이화여대는 골빈 여자들의 집합소에 불과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니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내게도 비슷한 일화가 하나 있다.
1989년 12월 대입 학력고사를 보기위해 서울로 상경한 나는, 큰어머니의 강력한 권고로 도곡동 13평 좁은 아파트에서 며칠을 머물게 되었다.
큰집에는 나와 동갑이지만 생일이 한 달 늦어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인 사촌이 있었는데, 큰어머니의 지론은 그 사촌이 내가 입시를 치루는 걸 가까이에서 보면서 간접경험을 하게 하고싶다는 것이었다.
큰집 사촌 여동생 셋은 그 당시 모두 강남 8학군을 국민학교 1학년부터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이대나 숙대 정도는 무난히 입학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해 입시에서 나는 낙방의 쓴 잔을 마셔야만 했다.
그 때 큰어머니의 논평, “이대는 아무나 가나?”
그리고 그 다음 해에 나는 같은 학교 같은 전공에 다시 지원을 했고, 재수를 하는 동안 성적이 향상했던 덕으로 합격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큰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은…
“요즘은 개나 소나 이대를 다 가지”
불과 일 년 사이에 “아무나 갈 수 없는 학교”가 “아무나 다 가는 학교”로 바뀐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그 해에 나와 동갑이던 그 사촌은 이대에 지원하기엔 약간 위험하다며 서울교대에 안정지원을 했더랬는데, 행운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시험을 평소보다 훨씬 잘 봐서 전체 차석으로 합격을 하게 되었다. 조카는 가는 이대를 당신 딸이 못가는 것이 속상했던 큰어머니는 사촌을 따라 다니며, 재수를 해서 이대에 원서 한 번 넣어보자고 조르셨으나, 사촌은 더이상의 입시 공부는 하고싶지 않다며 강력히 거절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큰어머니에게 이화여대는 이솝우화 <여우와 신 포도> 에 나오는 높은 나무에 달린 포도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아뭏든, 나는 그렇게 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화여대를 입학하고 졸업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이름, “이대출신”
나역시 어떨 땐 그 간판이 자랑스럽고, 또 어떨 땐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껄끄럽기도 하다.
35년 살면서 단 4년간 다닌 학교
그러나 6년 동안 다닌 좌천국민학교 보다도 내 인생에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학교
다니는 동안에, 머릿속은 비었어도 주머니는 넉넉한 친구들, 그 반대인 친구들, 모두를 볼 수 있었던 요지경과도 같았던 곳
그 곳을 사람들은 오늘도 열심히들 씹어댄다.
“이거 왜 이래? 나 이대나온 여자야. 내가 이런 데 (유치장) 들어갈 사람으로 보여?”
–영화 <타짜> 중에서 정마담 역의 김혜수의 대사 —
완전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