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향기, 엄마의 향기
우리 엄마는 음력 칠월 칠일 저녁에 태어나셨다. 사주를 조금 아는 어떤 분이 엄마의 생일에 대해 말하기를, 아주 특이한 팔자인데, 평범한 사람으로 살기는 어렵고, 스님이 되었어야 한다고 했다.
일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먹고 살기 위해 아웅다웅하지 않고, 도를 닦으며 보다 높은 이념과 철학으로 무장하고 고독하게 살아야 하는 그런 팔자를 가져서인지, 엄마는 결혼해서 아이들 셋을 낳아 기르시면서도 늘 몸가짐이 남다르셨다. 화장은 안해도 단정히 머리를 빗고, 집안에서도 구김없이 깨끗한 옷을 입고 계신다.
어린 우리들을 대할 때에도, 이쁘다고 우악스럽게 끌어안거나, 밉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야단치시지 않으셨다. 특히, 또래보다 덩치가 크고 성숙해 보이던 남동생이 어리광을 부리며 엄마 젖가슴이라도 만지려하면 기겁을 하며 밀쳐내셨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 친구이자 외동딸인 나역시 엄마에게 안기거나, 팔짱을 끼거나 하는 적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그렇게 드문 스킨쉽의 기억속에서도 엄마의 체취는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것은 생활의 흔적이 묻어나는 김치 냄새도 아니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화장품 냄새도 아니었다. 머리 안감은 냄새나 땀냄새는 더더욱 아니었고, 비누 냄새도 향수 냄새도 아닌… 무어라 서술할 수 없는 그저 ‘엄마의 냄새’ 라고나 할까… 따뜻한 온기와 무향에 가까운 깔끔한 향기… 그것이 바로 내가 느끼는 엄마의 내음이다.
가끔 엄마는 그 무향의 체취에 염색을 하듯 향수를 쓰시곤 한다. 수돗물도 아끼고, 반찬값도 아끼던 빠듯한 살림살이와 상당히 어울리지 않게도, 아빠는 오랫만에 집에 오실때면, 우리들 선물 꾸러미 속에 엄마를 위한 작은 향수병 하나씩을 꼭 넣어 오시곤 했다. 샤넬 파이브, 피에르 가르뎅, 그리고 기억 안나는 여러 가지 외제 향수들을 거치면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게 된 크리스챤 디올의 뿌아종… 그 향은 너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달콤하다. 그리고 여린 듯 하면서 강인한 엄마의 성격과, 무향인 듯 하면서 따뜻한 엄마의 체취에 참 잘 어울린다.
우리 엄마가 원래 타고난 팔자대로 스님이 되었다면 어떤 모습일까…? 시를 쓰는 일엽 스님의 이미지에 가깝지 않았을까…? 아니면 박사 고깔 아래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슬퍼보이는 승무를 추는 모습…? 그 무엇이 되었건, 엄마가 스님이 아니되신 덕에 오늘의 내가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2006년 7월 22일
*향수를 사던 날 적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