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대소동
우리들이 어릴적, 막내 철민이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 그러니까 철림이가 아직 젖먹이 아기였던 어느날, 엄마는 아이들을 집에 두고 혼자 공중 목욕탕엘 가셨다고 한다. 아이 둘을 씻기고 갈아 입히고나면 진이 다 빠져 정작 당신의 몸은 씻기도 전에 지쳐버리곤 하셨을테니… 그 날은 철림이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얼른 혼자 다녀오리라 계획하셨던 모양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서너 살쯤 된 내게 동생이 깨지 않도록 조용조용히 옆에서 혼자 잘 놀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으리라. 옆채에 살고 계시던 외할머니께도 우리들을 부탁해놓고, 버스타면 5분 거리를 동전 몇 개 아끼려 잰 걸음을 재촉하셨으리라. (삼 십여 년 전 부산엔 공중 목욕탕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나씩 있는 게 보통이었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옷을 벗고 정신없이 때를 미는 동안에 엄마의 머릿속에선 계속해서 철림이가 잠에서 깨어나 엄마를 찾으며 우는 모습이 떠오르셨다고 한다. 처음엔 칭얼거리는 모습이, 잠시 후엔 눈을 뜨고 엄마를 찾는 모습이, 나중엔 집이 떠나가도록 울어제끼는 모습과 그 옆에서 쩔쩔매는 내 모습이 환영처럼 보이시더란다. 그래서 푸근히 탕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때를 밀고, 헹구고, 머리를 감고, 드디어 마지막 단계로 세수를 하는데…
거품낸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다가 엄마의 새ㄱㄱㅣ 손가락이 사춘기 청소년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지, 갈 길 몰라 방황하다가 그만 엄마 얼굴 중앙에 있는 쌍터널로 진입을 해버린 것이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음을 알았다면 뒤돌아 나가 제대로 된 길을 찾으면 되련만, 머릿속에 아이들 울음소리만 가득한 젊은 아줌마는 방황하는 새ㄱㄱㅣ 손가락을 제대로 선도할 여유가 없는지라, 계속 진행 방향으로 힘을 주어 결국 ‘피’를 보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만 난리법석을 부리던 엄마는 – 누가 엄마를 지켜봤다면 그저 열심히 목욕하는 모습으로만 보였을테니 – 어찌어찌 코피를 수습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철림이가 잠에서 깼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암튼 우리들은 별 탈 없이 잘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울고있을 어린애들도 없고, 목욕탕 시설도 훌륭해진 세상을 살고 계신 엄마… 세상만사 다 잊으시고 푸근히 즐기며 목욕하시길 바란다.
2006년 7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