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선생님의 갑작스런 은퇴 결정과, 영민이 돌보랴 학교 일하랴 분주한 생활과, 개강이 슬슬 다가오면서 아직도 끝내지 못한 숙제들이 모두 힘을 합해 내 정신을 공격하려 한다. 바야흐로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요즘의 내 삶을 불평불만 버전으로 써보고, 또 긍정적 버전으로 다시 써보자.
자, 이제 행복 버전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여파며 전쟁이 돈을 퍼붓느라 미국 경제가 요즘 말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은 파리만 날리고, 기업은 하루 아침에 수 천명씩 해고를 한다는 살벌한 소식이 들려오지만, 대학 교수라는 직업은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있다. 경기와 무관하게 – 때로는 경기가 나쁠수록 학생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덕분이다. 남들은 직장에서 해고 당하거나 수입이 줄어 어려움에 처하는 이 때에, 여름 학기 강의해서 번 돈으로 집 융자금을 턱턱 갚아나가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고!
처음 임용될 때부터 내 든든한 후원자였던 바바라 선생님이 은퇴를 하신다니 섭섭하고, 또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지만, 이 참에 능력도 키우고, 과 내에서 내 입지도 더 든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다. 바바라 선생님이 도맡아 하던 행정 업무들을 내가 다 하게 되었는데, 이 쯤 되면 학과장이 내게 테뉴어를 안줄래야 안줄 수가 없을 것이다. 나마저 없으면 유아교육과 문을 닫아야 할테니 말이다.
가을 학기엔 캠퍼스 강의보다도 교생실습 지도 때문에 여기저기 초등학교며 유치원으로 나다닐 일이 많을 것 같다. 시간 따로내서 단풍놀이 안가도, 멋진 버지니아 산골의 단풍을 즐기며 드라이브를 실컷 하겠군.
학생들도, 강사들도, 동료교수들도 뭔가 의논할 일이 있거나 질문이 있으면 내게 물어본다. 이제 4년차로 접어드는 나… 제법 경력 교수가 되어가는 것인가? 예전에 임용 첫 해에 어리버리 뭐가 뭔지 도통 모르고 정신없기만 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은 많이 안정이 되어 있는 내 모습이 뿌듯하다. 그 덕분에 해야할 일도 많지만, 내 스스로도 놀랄만큼 많은 분량의 일을 처리해내고 있는 걸 보면… 아무도 모르게 잠시 나혼자 으쓱해도 될 듯 하다.
머, 나는 바깥 일만 잘 하는게 아니지 싶다.
끼니마다 내 손으로 장만한 음식으로 남편과 아들녀석을 먹이는데, 이 두 사람이 또한 내가 만든 음식을 가장 맛있다고 먹어주니 보람도 크다. 어제는 30분 만에 떡볶이에 계란과 만두 사리까지 넣은 저녁상을 차렸고, 그 전날엔 꽁치 무조림, 그 전엔 오무라이스, 그 전엔 순대볶음, 깻잎조림, 삼계탕… 이 바쁜 와중에 이만하면 화려한 식단 아닌가…
남편이 지하실 공사를 하고 있는 동안 영민이를 돌보며 식사준비와 설겆이, 빨래개기, 청소를 혼자 다 하고, 영민이 목욕이며, 다음날 유치원 준비물 – 여벌 턱받이며 기저귀, 도시락, 등등도 다 챙긴다. 어디 그 뿐이랴? 틈틈이 영민이 사진 찍어서 홈페이지 업데이트도 하고 있지, 이렇게 글도 쓰지, 바느질도 하지, 주말 아침엔 영민이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산책도 하고, 유붕이 자원방래하면 잘 먹이고, 편하게 지내도록 신경쓰고…
나는 아무래도 슈퍼우먼이 틀림없는 것 같다.
어젯밤에도 영민이 때문에 몇 시간 밖에 못잤지만, 그래도 고 귀여운 녀석 저녁에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미소가 떠오르고, 남편과 지하실 천정에 설치할 조명을 고르러 가면 즐거울 예감이 들고, 지하실이 완성되면 시간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으니…
이만하면 행복한 인생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