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 다른 느낌: 너도 꼭 너같은 딸 낳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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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군의 동생이 3월에 태어난다는 소식을 양가부모님께 알려드렸더니, 네 분 모두 두 팔 들어 환영해주셨다. (그러면 팔의 합은 여덟 🙂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내가 힘들까봐 그동안 말씀을 못하셔서 그렇지, 손주 하나가 더 생겼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하셨단다. 하기야, 코난군이 양쪽 집안에서 아직까지 유일한 손주이고, 또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홀딱 반하도록 이쁜 녀석이니, 저런 녀석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하고 바래시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어제는 엄마 (코난군의 외할머니) 와 화상채팅을 하다가 둘째 아이가 아들일지 딸일지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들을 낳으면 코난군의 옷과 장난감을 완벽재활용 할 수가 있어서 좋고, 형과 방을 함께 쓰게 될테니 공간 절약도 되고, 또 둘이 동성이라서 함께 놀기가 더 좋을 것 같다 는 것이 나의 생각인데 반해, 엄마는 이번에는 예쁜 딸을 낳아서 딸 키우는 재미를 느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엄마는 나를 낳고 키우시는 동안에 그 “딸 키우는 재미” 라는 것을 아주 행복하게 누리셨다고 한다. 글쎄…? 내가 과연 그렇게나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딸이었던가? 

두 남동생들에 비하면 내가 비교적 심부름도 잘 하고 집안일도 돕고, 이래저래 조금은 키우기가 수월했을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역시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 기질이 다분하고, 사춘기를 거쳐서 어른이 될 때까지 부모님께 고분고분하거나 애교가 잘잘 흐르는 착한 딸은 절대로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고집이 세서 매를 벌기도 하고, 국립대를 졸업한 두 동생들에 비해 비싼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오고 결혼까지 한 이 마당에도 부모님의 원조를 부끄럼없이 마구 받고 있는 ‘돈 많이 드는’ 자식이다.

그런 나에게 “너도 꼭 너같은 딸을 낳아라” 하는 말은, 하시는 입장에서는 덕담이나, 듣는 입장에서는 다소 겁나는 말씀이다.

한편으로 또 생각해보면,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이면, 고작 나같은 자식을 두고서 “너를 키우는 것이 그토록 행복하고 즐거웠다” 라고 말씀하실 정도일까 싶다. 그러니까, 기껏 운이 좋아봤자 나 같은 자식이고, 아니면 그만 못할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말이다.

혹자는 전생에 채무자와 채권자가 다음 생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만난다는 말을 하니, 자식을 잘 키워서 재미를 보고, 이득을 얻고, 남는 장사를 하는 부모는 세상에 드물다고 믿고 사는 것이 마음편할 듯 하다.

그렇다면 굳이 태어날 아이의 성별이 아들인지 딸인지가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닌 듯 하다.

2011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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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공원

어제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결과 딸이라는 말을 들었다.

딸이면…

우리 가족 성별이 남자 둘, 여자 둘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니 좋고, 내 자신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보다 폭넓어지니 좋고, 그래서 유아교육 강의할 때 예로 들 수 있는 일화도 더 많이 생길 것이고… 

그 밖에도 내가 지금은 미처 알지 못하는 여러가지 즐거움이 많으리라 기대한다.

딸이라는 소식보다도, 현재까지 아무탈없이 잘 크고 있다는 소식이 몇 배로 더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