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담긴 물건 처분하는 방법: 아이들 작아진 옷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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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부터는 밤과 새벽 기온이 아주 많이 내려가는 가을 날씨를 보이고 있다. 밤에는 라디에터를 약하게 틀어놓고 젖은 수건을
그 위에 올려놓고 자야만 다음날 아침에 아이들이 그르릉거리는 가래 기침이 덜하다. 이제 여름 옷은 들어가고 가을 옷과 곧 이어서
다가올 겨울 옷을 꺼내입기 쉬운 곳으로 옮겨둘 때가 되었다.

지난 목요일은 아침에 교생실습 참관을 다녀오기만 하면
다른 일이 없는 일정이라, 집에 일찍 돌아와서 아이들 옷 정리를 했다. 지난번 아울렛 몰에서 대거 구입한 가을옷과 겨울옷을
꺼내놓고, 짧은 소매 셔츠와 반바지를 집어넣으려고 보니, 벌써부터 코난군에게 작아지기 시작한 옷이 내년 여름이면 아예 못입게 될
것이 뻔해보였다. 둘리양에게 물려주자니, 최소한 3년은 옷장 구석에 보관하고 있어야 하고, 또 너무나 남자 옷임이 분명한 바지와
셔츠를 만 네 살이 된 둘리양이 입지 않으려고 할 것 역시 자명했다. 지금도 벌써 오빠가 입던 아기옷은 집에서 잠옷으로만 입히고,
어린이집에 갈 때와 외출할 때는 여자 아기옷을 사입히고 있으니 말이다.

많이 낡은 옷은 그냥 버려도 아깝지 않지만, 몇
벌은 아직도 깨끗해서 누군가가 한 철 잘 입을 수 있을듯 했다. 이걸 누구에게 주면 좋을까… 한참 생각하다보니, 코난군의
레드룸 선생님 바니에게 코난군보다 한 살 어린 남자아이, 키퍼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키퍼는 세 살 위의 누나가 있을 뿐이어서
누나의 옷을 물려입지 못하고 남자아이 옷을 새로 사입혀야 할 것이다. 바니의 평소 성품을 생각해보면, 코난군이 입었던 옷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 거부감 따위를 가질 리도 없다.

나에게 더이상 필요없는 물건이라고해서 대충 둘둘 말아 봉투에 담아서 툭 던져주기에는 코난군의 옷 한 벌 한 벌에 담겨있는 추억이 너무 애틋하다.

맨 처음 입던 날에는 길이가 길어서 발에 밟히던 바지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발목위로 올라오게된 것을 보며 흐뭇했던 마음…

학급 단체 사진을 찍던 날 머리에 젤을 바르고 한껏 멋을 내기위해 입혔던 남방셔츠…

백화점에 가서 코난군이 직접 골라서 구입했던 스파이더맨 셔츠…

입고서 때로는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구르기도 하고, 그러다가 데리러 온 엄마를 보며 깡총깡총 뛰어 내게로 달려오던 모습과, 피곤한 아침에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입기를 거부하기도 하던…

그렇게 아이가 자라온 역사와 우리 가족만의 예쁜 이야기가 담긴 옷이다.


벌 한 벌 펼쳐보고, 다시 곱게 개어서 차곡차곡 종류별로 쌓아서 테이프로 감아서 레이블을 붙이고 메모도 적었다. 긴 바지 8벌,
싸이즈는 4, 짧은 소매 셔츠 9벌, 싸이즈는 4 내지 5, 이런 식으로… 예전에 한국에 갔을 때 선물받았던 아래위 한 벌
짜리 옷은 서로 뒤섞이지 않도록 한 벌씩 포장을 했다.

깨끗한 쇼핑백에 담으니 무려 세 가방이나 된다. 이 가방에 가득 담긴 코난군의 옷과, 그 옷마다 담긴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운과 행복과 추억까지 키퍼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써서, 바니가 퇴근하고 없는 교실에 두고 왔다. 

나는 미신 같은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하지만, 아들을 낳으려면 아들 많이 낳은 여자의 속옷을 얻어다 입어야 한다든지, 상가집에 다녀오는 길에는 소금을 몸에 뿌린 후에야 집안에 들어간다든지, 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다’ 하고 공감은 한다.

즉, 좋은 기운, 나쁜 기운 같은 것이 존재하며, 그것이 우리가 사는데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것을 절대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수긍한다는 뜻이다.

중고물품을 판매하는 야드세일에서 주인의 인상이 좋으면 선뜻 아이들 장난감이며 중고옷을 사는 것이 그런 이유이고, 내 아이가 입던 옷을 아무에게나 버리듯이 줘버리기가 아까운 이유가 그러하다.


제 엄마와 화상채팅을 하다가, 엄마가 20년 동안 쓰던 커피메이커가 못쓰게 되어서 새 것으로 구입하셨는데, 예전 것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잘 가지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냐하면 그 오랜 커피메이커는 바로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용돈을 모아서
엄마에게 선물해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필립스 커피메이커가 많은 돈을 주고 사야하는 고가의 물품은 아니다. 대학생이
용돈을 모아서 살 수 있는 정도이니 기껏해야 몇 만원 짜리이다. 그러나 엄마는 20년 동안 그것을 사용하면서 내 마음을 느끼고,
거기서 행복을 누렸기에, 손잡이가 떨어져나가서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쓰레기통에 내다버리기에는 함께했던 추억을 함께
버리게 되는 느낌이 들어서 아직도 가지고 계신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서 비슷한 것인지, 코난군의 옷을 받은 바니가 다음날 아침에 나를 보며 얼굴가득 미소와 마음까지 따뜻해지도록 길게 허그를
해주었다. 자신도 아이들이 입다가 작아진 옷을 버리지않고 잘 손질해서 친한 사람들에게 물려준다고 하면서, 내 마음이 담긴 옷을
고맙게 잘 입히겠다고 인사했다.

쌀쌀한 가을 날씨에 더이상 옆구리가 시린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두 아이로 더욱 풍성해진 가족과, 그로 인해 맺어진 다른 소중한 인연들 덕분인듯 하다.

2012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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