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4

플레이데이트 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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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사생활이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요시하는 미국 문화 속에 살지만, 친구와 더불어 놀고싶어 하는 아이들의 습성은 인종이나 국적을 막론하고 비슷하기에, 미국 부모들은 플레이데이트 라는 것을 자주 한다. 즉, “엄마, 나 오늘 크렉네 집에 가서 놀래” 하고 아이 마음대로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끼리 미리 시간약속을 정하고 아이들을 함께 놀게 하는 것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심지어 같은 동 다른 층에 사는 친구네 집에 쉽게 놀러가거나,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들과 떼지어 집으로 몰려와서 함께 논다든지 하는 한국의 생활문화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이미 몇 번의 플레이데이트를 경험해보았는데,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특히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나도 꼼짝없이 발이 묶여 아이들이 노는 옆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코난군이 많이 자라서 엄마없이도 잘 놀기 때문에, 플레이데이트를 하는 동안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난 목요일 오후부터 내린 눈때문에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고, 코난아범의 강의도 취소되었다. 나는 아직 개강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음주 개강 준비를 위해 출근해서 해야할 일이 많았으나, 두 아이가 어린이집에 못가고 집에 있게 되었으니, 개강 준비는 월요일 아침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얼렁뚱땅 하기로 미루어두고 나도 집에서 뒹굴어야만 했다.

금요일 하루는 우리 가족끼리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보냈지만, 토요일 아침이 되니 아직도 주말이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왔다. 요즘들어 코난군이 동생때문에 엄마와 실컷 함께 놀지 못하는 것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는데다, 한국 나이로 “미운 일곱살” 이라 청개구리처럼 엄마 말을 일부러 안들어서 엄마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만들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난군과 협상을 타결해냈다.

“코난군, 너 친구랑 우리집에서 플레이데이트 하고싶다고 했지?”

“끄덕끄덕”

“그런데 왜 엄마가 플레이데이트를 안해주는지 알아?”

“도리도리”

“엄마는 너혼자 놀면서 어지른 장난감만 치우려고 해도 너무너무 힘들어. 그런데 만약에 네 친구들까지 우리집에 와서 장난감을 마구 가지고 놀다가 그냥 어질러두면 엄마는 그걸 도저히 치울 수가 없어” 여기까지 이야기했는데 코난군이 먼저 선수를 치고 나온다.

“엄마, 그럼 내가 친구랑 같이 장난감 정리할께. 약속해”

그래서 친구랑 다 놀고난 다음에는 꼭! 반드시! 어김없이! 장난감을 제자리에 정리해두기로 단단히 약속을 한 다음, 친구들 집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남의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물어보는 전화를 당일날 아침에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우리집에 놀러올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은 별 문제될 것이 없다.

코난군의 가장 친한 친구 소렌은 가족이 모두 외출을 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 다음으로 코난군과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인 크렉네 집에 전화를 했더니 크렉의 엄마 헤더가 전화를 받아서 우리의 초대에 반갑게 응해주었다. 내가 입장바꿔 생각해도 무척이나 반갑고 고마운 초대일 것이다. 그 집도 눈 때문에 아이들이 집에만 며칠째 있으니 아이들도 심심해하고 어른은 어른대로 얼마나 시달렸을까.

크렉이 우리집에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코난군은 기대에 부풀어 플레이데이트 싸인을 만들어 현관문에 붙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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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군과 크렉이 스파이더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그린 환영싸인

그 다음으로 나는 코난군과 함께 계약서를 작성했다. 놀이 후에는 장난감을 꼭 정리하겠으며,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놀 것과, 정해진 장소에서만 놀겠다는 것 등의 약속을 정하고, 종이에 적은 다음 코난군과 크렉이 각각 싸인을 할 칸을 마련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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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데이트 계약서

이렇게 약속을 문서화 해두면 아이가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기 쉽고 (설령 아이가 글자를 읽지못하더라도, 각각의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또 부모도 일관성을 가지고 아이의 행동을 지도할 수가 있는 장점이 있다.

꼼꼼한 크렉의 엄마는 혹시라도 바깥에 나가서 놀 경우를 대비해서 크렉의 외투와 모자 장갑 등등을 가방에 챙겨가지고 왔다. 그리고 크렉은 대체로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크렉의 형이 땅콩 앨러지가 있어서 한 번도 땅콩은 먹여본 적이 없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몇 시쯤 다시 데리러오면 좋을지 물어보면서 “한 1시쯤 오면 될까?” 하는데, 내가 걱정말고 저녁 다섯 시쯤 되서 오라고 했다. 크렉의 엄마도 그 동안 휴식을 할 수 있겠지만, 나도 크렉이 있는 동안에는 코난군이 엄마랑 같이 놀자고 조를 일이 없으므로 정신적으로 수월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나게 고마워하며 크렉의 엄마가 돌아갔고, 나는 크렉과 코난군을 앉혀놓고 위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아직 글자를 읽지 못하는 코난군이지만, 엄마랑 함께 정한 약속을 기억하는지라, 크렉에게 계약서의 각각의 항목을 잘 설명해주었다.  실제로, 이 계약서 덕분에 아이들이 영화를 보다말고 볼풀의 공을 던지며 놀려고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제지할 수 있었다. 두 아이 모두, 어른이 그냥 하지말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닌, 자기들이 싸인한 종이를 보여주며, 너희들이 그렇게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일깨워주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반응 없이 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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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점심식사: 우유, 햄앤치즈 샌드위치, 치킨너겟, 옥수수, 당근, 사과, 그리고 후식으로 초코과자

점심을 먹고난 후에는 뒷마당에 나가서 놀았다. 실내에서는 금지했던 칼싸움 놀이도 하고, 트리하우스에도 올라가 놀고, 또 아빠가 끌어주는 눈썰매도 탔다. 코난아범은 베란다와 계단에 쌓인 눈을 치우랴, 아이들 눈썰매도 끌어주랴 무척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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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 코난아범

사람을 좋아하는 둘리양도 오빠가 친구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좋아했다. 게다가 집에서 막내인 크렉은 둘리양을 볼 때마다 마치 자기 동생인양 예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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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렉이 둘리양에게 장난감을 집어주는 모습

아이들끼리 잘 노는 틈을 타서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도 하고, 크렉 엄마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었더니, 다섯시 이전에 언제라도 전화주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면서 고마워했다.

그럭저럭… 이렇게 토요일도 저물어간다… 일요일인 내일은 또 무슨 껀수로 하루를 보낼것인지 생각해봐야겠다.

2013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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