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퇴근길에 남편과 통화하면서,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픽업하고, 남편은 마트에서 스테이크 부위 고기를 사와서 구워먹기로 했다.
집에 와서 아이들을 차례대로 씻기고, 남편이 사온 야채를 씻고, 쌈장을 꺼내 담는 등…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데, 이날따라
유난히도 둘리양이 엄마를 찾으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인지, 아빠가 안아주는 것은 싫고 오직 엄마만 찾으며
울길래, 이건 나더러 저녁을 굶고 날씬해지라는 신의 계시다, 하고 생각하며 남편과 코난군 둘이서 고기를 구워먹게 해주고 나는
둘리양을 재우러 올라갔다.
삼십 분이나 지났을까? 둘리양에게 젖을 물리고 누워있는데 코난군이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와
귓속말로 “엄마, 저기 엄마를 위한 푸드가 있어. 빨리 내려와서 먹어봐” 하고 속삭이고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이번에는 코난
아범이 살그머니 들어와서 둘리양 잠들었으면 얼른 내려가서 저녁을 먹으라고 일러준다.
살 빼라는 신의 계시가 아니었나?
하면서 아랫층으로 내려가니, 코난군이 자기 젓가락 옆에 있는 접시에 담긴 고기를 먼저 먹으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전기 후라이팬
위에도 잘 구워진 고기가 있었지만, 아들이 권하는대로 접시에 담긴 것을 먼저 한입 먹어보니 고기가 연하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이 아주 맛이 좋았다.
“음, 맛있어” 하니 코난군이 “See? (거봐요)” 하면서 덩달아 흐뭇해했다.
나
중에 남편으로부터 들은 얘기로, 고기를 두 가지 다른 종류를 사왔는데, 따로 남겨둔 그 고기는 한 근에 무려 이만 원 돈이나 하는
비싼 부위로, 도대체 어떤 맛인가 궁금해서 사와서 구워보니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어서, 아빠와 아들이 맛있게
먹고, 엄마를 위해서 따로 남겨두고, “있다가 이건 엄마 먹으라고 하자” 하고 의논이 있었다는 것이다.
행복이란…
맛있는 음식을 서로에게 권하고 나눠먹는 것… 처럼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에서 비롯하지 싶다. 저녁 굶기 다이어트는
못했지만, 그 맛있는 걸, 양이 많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둘이서 홀라당 먹어치우지 않고, 나를 위해서 남겨두고, 번갈아 올라와서
먹어보라고 권해주는 두 남자 덕분에 참 행복한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남편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부엌을 정리하다보니, 그 “사소한 일상의 행복” 이란 것이 사실은 이면에 참으로 다양한 조건이 뒷받침되어서 비로소 가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조건 1: 그렇게 비싸고 맛있는 부위의 고기를 한 번쯤 사먹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벌이가 된다는 점
조건 2: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 자리에 없는 가족을 생각할만큼, 식탐보다는 사랑이 더 큰 가족구성원
조건 3: 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아빠
조건 4: 아빠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고 따르는 아들
조건 5: 채식주의자가 아닌 나
조건 6: 식은 고기 몇 점에 감동받을 줄 아는 나
조건 7: 때마침 쿨쿨 잘 자던 둘리양
조건 8: 간편하게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전기 후라이팬
조건 9: 기타등등…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 또 다르게 보면 가지가지 조건이 다 구비되어야만 가능한 일…
행복이란 그런 것인가보다.
2013년 4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