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눈폭풍이 시작하기 바로 전날 저녁에 이화여대 후배이자, 래드포드 대학교 후배교수인 성악과 케이 교수의 독창회가 있었다. 단독 리싸이틀이기는 하지만, 반주를 피아노 뿐만 아니라 트럼펫, 기타, 클라리넷 등으로 다양하게 넣고, 그 반주를 하는 사람들도 역시나 우리 학교 음대 교수들이기에, 독창회의 제목을 “음악 모임” 이라고 지었던가보다.
이 날도 코난군은 집에서 노는 게 더 좋다며 음악회 참석을 거부했고, 그래서 코난 아빠는 집에서 코난군을 돌보고, 나는 둘리양을 데리고 음악회에 갔었다. 둘리양은 음악회에 가서 얌전히 행동을 할 뿐만 아니라,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보여서, 나혼자라도 굳이 늦은 저녁 시간에 참석한 것이었다.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놀다가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난 뒤라, 둘리양도 많이 피곤했는지 음악회가 열리는 우리 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 깊이 잠이 들었었다. 주차장에서 아직 잠이 덜 깬 둘리양을 들쳐 안고 강당으로 들어갔는데, 5분 정도 늦게 도착한지라 이미 음악회가 시작된 다음이었다. 나혼자였다면 살짜기 문을 열고 객석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겠지만, 복도에서 지금 연주하는 곡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음대 학생으로 보이는) 관객이 몇 명 있어서, 나도 둘리양을 안고 복도에서 함께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맨 처음 부른 노래는 무려 4악장으로 이루어진 바하의 칸타타 곡이었고, 그 노래가 끝나자 바로 인터미션 시간이 되었다. 공연장 문 안쪽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노래 소리를 둘리양은 가만히 듣고 있었고, 인터미션 시간에 객석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을 때에는 잠이 완전히 깨었다.
낯이 익은 음대 교수들과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 음악회 후반부가 시작되었다.
위의 프로그램에서 보이듯, 후반부에는 카치니, 한, 그리고 슈베르트의 노래를 불렀는데, 클래식 음악을 제법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생소한 노래들이었다.
클래식 음악은 이젠 그 명맥이 끊어져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좋은 곡들이 많은듯 하다. 하기는 가곡의 왕이라는 슈베르트가 작곡한 노래만 해도 600곡이 넘는다고 하니, 그 노래를 다 듣고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프로그램에는 각 노래의 가사가 원어와 영어번역으로 실려 있었는데, 그 모든 번역을 케이 교수가 다 했다고 적혀 있었다. 노래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능력과 문장력까지 갖춘 대단한 실력자인 것을 알았다.
케이 교수는 아담한 체구에 얌전한 인상이지만, 무대에 오르면 표정과 몸짓이 청중을 사로잡는 힘이 있고, 슬픈 노래를 부를 때는 처연한 표정으로, 즐거운 노래를 부를 때는 함박꽃 같은 미소와 함께 부르는, 그야말로 무대체질 인 듯 해보였다.
마지막으로 클라리넷 반주에 맞추어 불렀던 슈베르트의 가곡은 외로운 양치기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인데, 클라리넷과 소프라노 가수가 메아리처럼 화답하며 연주하는 부분이 있었다. 청아한 케이교수의 목소리는 클라리넷 소리와 매우 비슷하게 들려서 신기했는데, 나중에 프로그램의 곡 해석을 보니, 메아리 효과를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클라리넷을 사용하도록 슈베르트가 의도했던 것 같다.
유튜브에 다른 사람이 부른 같은 노래가 있어서 올려놓는다.
둘리양은 정말이지, 음악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음악회에 가서도 그렇고, 집에서 평상시에도 음악이 흘러나오면 눈빛을 반짝이며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듣는다. 요즘은 내 아이폰에 있는 피아노 어플을 열어서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엘모송”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노래하는 음정과 박자가 제법 정확하다. 앞으로도 음악회에 자주 데리고 다녀서 음악에 대한 조예를 더욱 깊게 다듬을 기회를 주어야겠다.
2014년 2월 17일